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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아이 Oct 26. 2023

낮에는 웃고, 밤에는 울고

엉망진창 완벽주의 엄마라서

그래도 낮에는 꼬물이 덕에 웃을 수 있었다. 

웃어야만 했다.


꼬물이는 나를 닮아 손을 꼬물꼬물거리는 것을 좋아했다.

내가 그림 작업을 할 때 종이를 자르고 붙이는 걸 한 번씩 봐서 그런지 말도 못 할 때부터 가위에 관심을 보여서 조그만 가위를 한번 줘 보았다.

꼬물이는 오동통한 고사리 손에 가위를 끼고 이것저것 하루종일 신이 나서 자르고 다녔고 크는 내도록 심심하면 가위질을 했다. 쓰다 남은 색종이도 자르고, 박스도 자르고, 인형 모자도 자르고. 세상에 그 조그만 게 손도 한 번 다치지 않고서 말이다. (가위 권장 엄마)

꼬물이는 아기답게 낙서하는 것도 당연히 좋아했다.

나는 미술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그냥 낙서하고 놀기'라고 생각하기에 낙서할 수 있는 재료들을 많이 가져다주었다. 거품처럼 나오는 물감, 반짝 거리는 물감, 칙칙 뿌리는 물감. (낙서 권장 엄마)

또 뭐든 손으로 쪼물딱거리고 싶어 해서 이것저것 만져보게 해 주었다. 밀가루 반죽, 쌀 알갱이, 밖에 나가면 흙이랑 돌멩이. (부작용-맨날 손톱밑이 꼬질꼬질)


꼬물이는 책도 좋아하는 아기였다. 이것도 나를 닮은 것 같다.

책이 얼마나 재미있는 것인지, 또 살면서 나에게 얼마나 도움을 주는지 잘 알고 있기에 다른 건 몰라도 책 하나만은 원도 한도 없이 실컷 보여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직 글도 모르는 아기 꼬물이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그림책 보기. 둘 중 하나가 지치거나 지루해질 때까지 보고 또 보기, 읽어주고 또 읽어주기. 거의 날마다 그렇게 했다. 다행히 책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라서 내게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내가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에 맞게 목소리를 바꿔 가며 읽어주면 꼬물이는 눈이 동그래져서 그 이야기에 완전히 빠져서 집중하며 그림을 보았다. 책에 나오는 캐릭터 목소리로 꼬물이에게 이것저것 말을 걸면, 아기 꼬물이는 진짜인 줄 알고 책에 있는 캐릭터와 눈을 맞추며 대답하곤 했다. 그 맛에 나는 더 신이 나서 더 열심히 읽어주고 그랬다. (지금도 책 몇 권이랑 간식거리만 있으면 죽이 잘 맞는 우리 모녀, 아기 때부터 그랬네)

나도 그 시간만큼은 현실의 아픔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 같다. 그곳은 알록달록 예쁜 색, 귀여운 캐릭터, 재밌는 이야기가 있는 세상이었다.


낮에는 꼬물이를 데리고 햇빛과 세상을 보러 다녔다.

엄마가 우리 집에 오는 날은 셋이서, 아니면 우리 둘이서 공원도 가고 동네 산책도 하고. 문화센터 아기랑 엄마랑 수업도 들으러 다니고, 산후조리원에서 만난 아기 친구들 집에도 놀러 다니고.

내가 혼자였다면 아마 땅굴 파고 지하로 기어들어가 암흑 속에서 지내고 싶었겠지. (밝게 빛나는 햇빛과 세상 사람들을 저주하면서!!)

하지만 나에게는 세상이 너-무 심하게 궁금하고 재미있는 아기가 있었다. 그 반짝거리는 눈동자를 가진 아기를 데리고 지하세계에 살 수 없으니 내가 지상세계에서 사는 것 밖에 선택지가 없었다.

혹시나 나의 축축한 마음에 젖어 꼬물이 마음도 같이 축축해질까 싶어서 낮에는 최대한 햇빛이 잘 드는 곳을 찾아다녔다. 우리 꼬물이가 보는 첫 세상은 밝고 따뜻한 곳이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그전에는 몰랐는데 아기들에는 마법 같은 힘이 있다. 강력한 '까르르 천사 파워'로 주변 10m 이내 어둠의 세력을 무장해제 시키는 힘. 

우리 아기 덕분에 그래도 낮에는 웃을 수 있었다.


밤에는... 울었다. 꼬물이를 재우고 내 방문을 닫고 혼자서.

이 세상에 지금 나의 슬픔을 아는 사람은 우리 엄마랑 내 동생들 밖에 없는데 다들 각자 나만큼이나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을 테니 서로 건드려서 좋을 게 없다고 생각했다.

누가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고 그런 거지?

내 몫의 슬픔을 한 톨이라도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길고 긴 밤에 나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 방울로는 안 된다, 두 방울도 부족하다

세 방울로도 아직 멀었다

그 짜디짠 눈물이 모이고 모여 바다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 속에서 헤엄칠 수 있을 테니까

깊고 깊은 그곳까지 가서 물어봐야지

우리 아빠 못 봤냐고


한숨으로는 안 된다, 두 숨으로도 부족하다

세 숨 정도로도 한참 멀었다

그 쓰디쓴 숨결이 모이고 모여 바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 속에서 날아다닐 수 있으니까

높고 높은 그곳에서 물어봐야지

우리 아빠 여기 왔냐고


한 밤으로는 안된다, 두 밤으로도 부족하다

세 밤으로도 까마득히 멀었다

그 까만 어둠이 모이고 모여 우주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 속에서 찾아다닐 수 있으니까

캄캄한 그곳에 가서 물어봐야지

우리 아빠 어디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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