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광

"아직 꺼지지 않았노라며"

by 김경민

커패시터는 전기를 담는 일종의 그릇이다

가전제품의 콘센트가 별안간 빠져버려도

바로 꺼져버리는 게 아니라

LED 불빛을 찬찬히 남기는데

그릇에 남은 잔존 전력이

회로의 파손을 막기 위해 뒷정리를 하는 것이다


우리는 크든 작든 누구나 그릇을 가지고 있다

어렸을 때는 이 마음의 그릇에

별빛이 소담하게 담겨 주위를 환하게 하는데

세상에 드리우는 어둠은

우리의 불씨를 앗아가곤 한다


어떤 이들은 그림자에 잡아먹혀

스스로가 그늘이 되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쓰러진 이들에게도

그 어떤 인간에게도

그릇에 남은 잔광이 있다 믿는다


언젠가 나 여기 있었노라며

아직 꺼지지 않았노라며

반짝거릴 잔광


언젠가 우리가 품고 있던 어제의 꿈을 들추고

깊은 터널 속에서도 방향을 잡아주며

속삭이는 잔광


그건 어둠 아래서 파도에 넘실 대는 조각배에게는

그 어떤 빛보다 밝게 비출 희망이 될 등대의 불빛이기도 하다

쓰러지는 이들에게는

성화가 될 여린 씨앗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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