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꺼지지 않았노라며"
커패시터는 전기를 담는 일종의 그릇이다
가전제품의 콘센트가 별안간 빠져버려도
바로 꺼져버리는 게 아니라
LED 불빛을 찬찬히 남기는데
그릇에 남은 잔존 전력이
회로의 파손을 막기 위해 뒷정리를 하는 것이다
우리는 크든 작든 누구나 그릇을 가지고 있다
어렸을 때는 이 마음의 그릇에
별빛이 소담하게 담겨 주위를 환하게 하는데
세상에 드리우는 어둠은
우리의 불씨를 앗아가곤 한다
어떤 이들은 그림자에 잡아먹혀
스스로가 그늘이 되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쓰러진 이들에게도
그 어떤 인간에게도
그릇에 남은 잔광이 있다 믿는다
언젠가 나 여기 있었노라며
아직 꺼지지 않았노라며
반짝거릴 잔광
언젠가 우리가 품고 있던 어제의 꿈을 들추고
깊은 터널 속에서도 방향을 잡아주며
속삭이는 잔광
그건 어둠 아래서 파도에 넘실 대는 조각배에게는
그 어떤 빛보다 밝게 비출 희망이 될 등대의 불빛이기도 하다
쓰러지는 이들에게는
성화가 될 여린 씨앗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