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감상문
제 모든 감상문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살인인가, 천벌인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의 포스터에 적혀있는 문구다. 실제로 <지옥>은 보는 사람들에게 오묘한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서도 연상호 감독은 자신의 의도를 노골적으로 창작물에 녹여냈다. 연상호 감독이 <지옥>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을 파헤쳐보자.
언재부터인가 미지의 존재가 나타나 인간이 거역할 수 없는 괴현상을 일으킨다. 미지의 존재는 사람들에게 찾아와 죽음을 예언하고, 예언의 때가 다가오면 무자비하게 살해한다. 초월적인 존재를 마주한 사람들은 대부분 무릎을 꿇는다. 어떤 사람들은 그 공포를 이용하여 선동가가 된다. 선동가들은 괴현상을 신의 심판이라고 한다. 미지의 존재와 선동가들에게 불합리함을 제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지옥>은 어떤 현상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대립이 전체적인 이야기를 구성한다. 이와 같은 플롯은 재난을 다룬 창작물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폭풍, 지진, 해일 같은 자연재해가 코즈믹 호러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래서 작중에서도 몇 번 언급되듯, <지옥>은 살인이나 천벌이 아니라 자연재해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이를 직설적으로 나타내는 대목이 초반부에도 나온다. 새진리회 교주 정진수는 형사 진경훈에게 고대 일식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고대 사람들은 일식을 보고 큰 개가 해를 베어 물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개를 잡기 위해 사냥꾼을 풀었다. 정진수는 진경훈을 보며 경찰이 그 사냥꾼 같다고 말했다. 그때 변호사 민혜진이 나타나 ‘일식을 신의 분노라고 생사람이나 잡는 제사장보다 사냥꾼이 낫다’고 받아친다. 후에 정진수는 제사장은 ‘원래 인간들은 의미가 없으면 자멸해버리는 족속들이기 때문에, 제사장이 사람들에게 의미를 준 것이다’고 대답한다.
고대 일식 일화를 해석하는 두 주인공들의 대립이 보인다. 일식은 미지의 존재들이자 재해다. 재해는 어쨌거나 벌어지는 일이다. 민혜진은 재해를 자기 입맛대로 해석하며 불필요한 희생을 만드는 사람들을 비판한다. 잘못된 방법일지라도 문제를 직접 해결하려고 하는 사냥꾼이 또 다른 문제를 만드는 제사장보다 더 낫다는 것이다. 정진수는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재해에 의해 인간이 죽을 것이 분명함으로, 살아있는 동안 삶의 의미를 준 제사장을 옹호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불가항력의 위기를 맞이하면 신앙심에 기댄다. 김수환 추기경은 전쟁과 탄압에서 기도밖에 할 수 없음에 슬퍼하기도 했다.
그 두 사람의 입장 중 ‘무엇이 더 옳은가’의 논의는 쉽지 않다. 다만 이것은 창작물이고, 역사적으로 종교를 악용하는 집단이 꾸준히 있었기에 연상호 감독은 정진수를 악으로 묘사한다. 정진수는 기묘한 일이 벌어지는데 아무 이유가 없으면 세계에 엄청난 폭동과 정신적인 공황이 찾아올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괴현상이 악인에게만 일어나는 것으로 선동해 사람들에게 정의로워야 할 것을 강조했다.
물론 전부 궤변이다. 무엇이 정의로운지 정의롭지 않은지는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개인의 기준으로 누군가의 정의를 판단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강도를 하려고 휘두른 칼과 몸을 지키려고 휘두른 칼은 보편적인 관점에서 그 의미가 다르다. 그러나 TV 뉴스에 나오는 잔혹한 범죄자들 중에서 자신이 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본인 기준에서는 본인이 선이다. 더군다나 극 중에서 신흥종교는 이익에 따라 몰래 광신도들을 이용하는데, 광신도 집단은 폭력을 일삼으며 무고한 사람들을 해친다. 정진수가 언급한 제사장에 대한 옹호는 허울뿐인 것이다.
그런 혼란함 속에서 연상호 감독의 태도가 드러나는 것은 마지막화다. 신흥종교와의 대립을 끝마친 민혜진은 어디론가 도망가기 위해 택시를 탄다. 큰길로 나가려면 직진해야 한다는 민혜진의 말에, 택시기사는 방향을 바꾸며 ‘앞에 경찰들이 검문 선을 쳐 놨다. 큰길로 나가려면 돌아가야 안전하다’고 한다. 이어 ‘나는 신이 어떤 놈인지도 잘 모르고 관심도 없다. 내가 확실히 아는 건 여긴 인간들의 세상이라는 거다. 인간들의 세상은 인간들이 알아서 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광신도들에게 폭행을 당했을 때도 그렇고, 이전까지 민혜진에게는 뚜렷한 조력자가 없었다. 그런데 위험할 수 있는 마지막 순간에 구원자가 돌연 나타난 것이다.
이 신비로운 등장인물은 연상호 감독 본인이자 데우스 엑스 마키나, 즉 극을 마무리 짓는 진짜 신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괴현상에 대한 이런저런 갑론을박 중에서 연상호 감독이 선택한 태도는 초연함이다. 연상호 감독은 사냥꾼도 제사장도 되지 않았다. 사냥의 한계를 맞이한 상태에서 개인이 가져야 할 태도를 택시기사로 투영한 것이다. 어차피 벌어질 일들에 대해 공포심을 느끼는 것이 아닌, 초연함을 느끼는 것에서 인물의 비범함을 엿볼 수 있다.
그렇게 민혜진은 안도하고 심판에서 살아남은 아기를 꼭 끌어안으며 이야기가 끝난다. 아기는 괴현상에서 예외적으로 살아남았다. 미지의 존재들로부터 벗어날 방법이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나타낸다. 일식이 무엇인지 밝혀낸 것은 과학자다. 과학자는 수많은 사냥꾼들 중 하나다. 사냥꾼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결국 문제에 파고드는 사냥꾼들이다. 민혜진은 다소 무모해 보일지라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냥꾼이다. 민혜진이 아기를 끌어안는 장면에서, 연상호 감독이 사냥꾼에게 희망을 건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끝으로 <지옥>을 재밌게 본 사람들에게 꼬마비 작가의 웹툰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추천해주고 싶다. 두 창작물은 절대적인 존재가 나타나 사람들을 심판한다는 점이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지옥>보다 이상현상에 조금 더 적응한 이후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이상현상은 수단일 뿐이고 진짜 이야기는 이상현상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두 작가들은 그것에 큰 의미를 두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번개가 내리친 것처럼 자연재해일 뿐이다. 일식을 보고 사냥꾼이 될지, 제사장이 될지, 아니면 택시기사가 될지는 각자의 몫이다. 연상호 감독은 질문한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내리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