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에 생채기 하나 남지 않은 것은 어제와 오늘이 같다는 증거다"
그리는 연필은 뭉뚝해지고
구르는 바퀴는 언제나 닳는다
상처로 가득하고
닳아 없어질 것 같은 나의 몸은
어제의 내가 힘차게 구른 탓이리라
바닥에 붙은 흑연
아스러진 살갗이 자취에 나부낀다
끝을 헤아릴 수 없는
한없이 뻗은 광야
멀리서 바라본 상처의 파편들은
먼지 한 톨보다 작아 보인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지만
그 덕에 내가 더 나아갔음을 안다
피부에 생채기 하나 남지 않은 것은
어제와 오늘이 같다는 증거다
그건 자랑스러워할 일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마땅히 머리 숙여 사과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