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마케터의 미술 이야기 #01
지점 SNS 관리자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문의가 왔다. 관리하는 계정에 대답하기 곤란한 댓글이 달렸다는 것이다. “물감 대충 발라 놓고 이걸 백만 원, 천만 원에 팔고 있어? 유명인들이 좀 샀다고 돈 장사하네.” 다분히 악의적인 내용이었다. 구구절절 이 작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과 과정, 작가의 사유를 설명하기 전에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더 좋은 미술품들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라고 댓글을 달아놓을 수밖에 없었다.
단순한 붓 터치로 채워진 것 같은 화면은 사실 물성에 대한 부단한 실험의 결과이다. 시멘트의 묵직한 질감으로 원하는 구성을 연출하기 위해 작은 체구의 어깨와 허리는 항상 통증을 호소한다. 작품은 의도에 따라 한 가지 색으로 완성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노랑, 파랑, 주황 등 다양한 밑 색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작가는 마치 생명의 색을 꺼내듯 수십, 수백 번의 칠을 반복하여 원하는 하나의 색을 만든다.
작품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무지를 탓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창작자의 손을 떠난 예술은 대중의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관람자를 설득하지 못한 그림을 그린 작가의 탓을 해야 할까? 물론 그렇지 않다. 나는 자전적인 이야기를 하는 작품들을 좋아한다. 거대한 담론보다 개인이 세상의 일부로서 느낀 경험, 감상이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는 것 자체가 예술로 느껴진다. 창작의 행위를 통해 심상을 공유하고 공감받는 것이 근본적인 예술의 존재 이유가 아닐까? 어쨌거나 예술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음미하는 것이다.
공감하지 못하는 대중과 이해받지 못한 작가. 이 간극을 좁히는 것이 아트마케터의 역할이다. 아트마케터는 특수한 직군이다. 주관적으로 가치가 매겨지고 항상 시장 변동이 있는 품목의 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한 활동을 펼쳐야 한다. 방대한 미술사, 동시대 미술 시장에 대한 정보를 토대로 내가 소개하는 작품의 가치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현대 미술은 너무 어렵다.’, ‘그들이 사는 세상만을 위한 예술이다.’같은 이야기가 계속해서 나오는 것은, 나는 물론 현업에서 일하는 많은 종사자들이 아직 갈 길이 멀었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술을 향유하기에 가장 이질적인 것은 아무래도 가격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경매에서 몇백억을 호가하며 거래되는 추상미술을 보면서 나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우스갯소리로 한다. 미술은 철저히 공급과 수요에 의해 움직이는 자본주의 시장이다. 가격이 높다는 것은 당연하게도 그만큼 수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그림은 왜 가격이 이렇게 높나요?’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그만큼 그 그림을 원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고밖에 답할 수 없다. 지속되는 한류 열풍으로 작곡을 하는 K-POP 아이돌의 재산 이야기가 종종 들려온다. 작곡가의 창작물에 대한 수요가 많으면 노래 하나로 억대의 돈을 벌 수 있는 세상이다. 미술품도 이와 같은 구조다. 단지 월 8,900원을 내고 음악을 듣는 것보다 몇 백만 원을 내고 그림을 소유하는 것이 친숙하지 않을 뿐이다.
미술품 역시 같은 예술의 틀 안에 있는 창작물이다. 멜로디와 가사 대신 다양한 재료와 기법으로 펼쳐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말을 걸어오는 듯한 스케치의 흐름, 물감의 흔적들을 따라가다 보면 작품에 녹아든 사유를 탐색할 여유를 갖출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