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아침, 이불을 정리하다가 낯선 냄새를 맡았다. 주말이 되자마자 이불을 빨았다. 며칠 후, 회사에서 몸을 움직이는 일이 생겼고, 땀이 식자 옷에서 살짝 냄새가 났다. 불쾌한 냄새는 아니었지만, 그 순간 이불에서 맡았던 냄새가 떠올랐다. 문득 궁금해졌다. ‘내 몸에서는 어떤 향이 날까?’
퇴근 후 욕실로 들어가 내가 쓰는 제품들을 살펴봤다. 샴푸, 바디워시, 로션까지 대부분 ‘화이트 머스크’ 향이었다. 좋아서 선택했겠지만, 다시 맡아보니 특별히 매력적이지 않았다. 마침 제품이 떨어져 가는 걸 보고 새로운 향을 찾고 싶다는 설렘이 생겼다.
나는 향수를 즐기지 않는다. 그래서 샴푸, 바디워시, 로션 같은 제품들로 몸의 향을 만들어내는 편이다. 이런 이유로 세트로 구성된 제품을 선호했고, 이번에는 어떤 향으로 바꿀지 고민하며 검색을 시작했다. 하지만 설명만으로는 딱히 끌리는 향이 없었다. 결국 매장에 가서 직접 시향 해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보던 중 우연히 새로운 관점을 접했다. 구독 중이던 이연님의 영상이었다. 그는 무향 샤워 제품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향을 없앤 후, 필요할 때 향수를 통해 원하는 향을 만든다는 그의 말은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향을 찾느라 온종일 헤매던 나에게 ‘무향’이라는 가능성은 전혀 새로운 개념이었다.
나는 당연히 모든 제품에는 향이 있을 거라 여겼다. 향을 선택하기 위해 애쓰던 내게 무향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선택지였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향이 없다는 것은 오히려 자유로운 여백을 준다는 뜻이 아닐까?
무향 제품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향이라는 요소가 사라지자, 오로지 성분에만 집중해 제품을 고를 수 있었다. 그렇게 주문을 마치고 나니 자연스레 향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향이란 무엇일까?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람의 감각을 흔들어 놓는다. 호감과 비호감을 결정하기도 하고, 때로는 나를 표현하는 도구가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비워낼 수 있는 여백이기도 하다.
물컵을 비운다고 해서 정말로 비워지는 것은 아니다. 물은 땅으로 흘러가 새로운 공간을 채운다. 향도 마찬가지다. 향을 비우면 그 자리에 더 깊은 나 자신이 채워질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여백을 기대하며 조용히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