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omo senza contenuto
"미적 판단의 메커니즘이 과연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아무리 부족하다고 해도, 비평적 판단이 예술 작품 앞에서 우리에게 제안하는 모든 것이 바로 이 그림자에 구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한다. 예술을 예술이 아닌 것과 분리시키면서 판단이라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예술이 아닌 것을 예술의 내용으로 만들어 버린다. 우리가 예술의 현실을 발견하는 것은 이 부정적인 틀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어떤 예술 작품에 예술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말할 때 우리가 의도하는 것은 작품 속에 예술이 요구하는 모든 물질적인 요소가 다 포함되어 있음에도 예술 작품의 운명을 좌우하는 무언가 본질적인 요소가 빠져 있다는 뜻의 이야기다. 이는 이제 막 숨을 거둔 사람의 시체가 살아 있는 생명체의 모든 요소를 지니고 있음에도 한 존재를 생생하게 살아 숨쉬도록 하는 그 붙잡을 수 없는 무언가를 가지지 않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 -내용 없는 인간 p.97
"<향연>의 한 문장에서 플라톤은 포이에시스라는 단어가 원래 무슨 뜻이었는지 전하면서, 하나의 사물을 부재의 상황에서 존재의 상황으로 이끄는 모든 종류의 요인을 포이에시스라고 정의한다. 무언가 생-산될 때마다, 하나의 사물이 어두움과 부재에서 현존이라는 빛 속을 도입될 때마다 포이에시스, 시, 생-산이 성립된. 포이에시스라는 용어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방대하고 원천적인 의미를 토대로, 모든 예술은, 언어를 사용하는 예술을 포함해서, 현존이라는 형태를 취하는 생-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의 물체를 만들어내는 기술자의 활동 역시 포이에시스라고 할 수 있다. ..." -내용 없는 인간 p.134
"저자가 말하는 '내용 없는 인간'이란 현대의 예술가와 현대 예술을 향유하는 현대인을 가리킨다. '내용 없는' 현대를 그렇지 않았던 과거의 돌이킬수 없는 방식으로 단절시킨 근본적인 원인은 예술가가 예술 작품을 스스로의 존재가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만든 작품을 바라보며 객관적인 평가를 하지 않던 시대에서 객관적인 평가 없이는 예술 활동 자체가 불가능해진 시대로 접어들면서 일어난 변화다. 저자는 이러한 단절과 분리를 하나의 상실로 경험하는 인물들, 예술가들, 사상가들, 시인들을 등장시킨다. ... 우리가 예술을 높이 평가할 수 있게 되었다면 그것은 하나의 발전으로 볼 수 있지 않느냐는 주장은 예술 자체에 의해 무산된다. 시보다 시에 대한 평가가 중요하다는 로트레아몽의 말, 즉 예술 작품에 대한 미적 평가가 작품에 우선한다는 지적을 통해 부각되는 것은 예술을 높이 평가할 수 있게 된 단계가 정확하게 예술이 사라지는 단계와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 헤겔이 말한 것처럼 가장 높은 경지의 예술은 스스로를 파괴하고 초월하는 예술,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초월할수 있는 하나의 힘으로 등극했지만 그 힘은 결국 부정의 힘이며 그 힘의 배후는 예술의 사라짐, 현재의 허무주의를 버젓이 떠받치고 있는 예술의 허무주의다. ..." -옮긴이 해제 p.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