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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ybk Sep 11. 2023

기술적 복제 시대의 예술작품

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



 1936년에 쓰인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은 발터 벤야민의 불후의 명작이다. 자본주의의 완고함이 무르익기 전에 쓰여진 이 책은 시대를 꿰뚦는 벤야민의 뛰어난 통찰을 느낄 수 있다. 20세기 초반은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문화의 변화가 가속화되는 시대였다. 비행기술, 기관총, TV, 항생제... 등 수많은 발명의 물결이 몰아쳤다. 거대한 물결 속에는 물론 카메라와 사진 또한 있었다. 사진기술의 발전은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를 렌즈를 통하여 손안에 쥘 수 있는 이미지로 바꿔주었다. 이렇게 손에 쥘 수 있게 된 경험에는 우리의 소탈한 일상뿐만 아니라 예술품 앞에 서는 미적 체험 또한 있었다. 예술품을 마주하여 느끼는 생경함 또한 우리의 손 안으로 들어올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손에 쥔 미적 체험을 바라보기 위해 우리의 손을 펼쳤을 때 그곳에는 무엇이 남아있을까?


 사진기술의 발달은 은밀한 위치에서 자신의 존재를 내뿜던 예술품들을 대중의 눈앞에 전달해 주었다. 이제 대중들은 예술품이 찍힌 사진을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으며 그것을 개인적으로 소유할 수도 있다.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벤야민은 예술품의 원본성이 그 의미가 퇴색되었다 한다. 그리고 복제품으로 인한 원본의 현존성을 느끼기 힘들어졌다. 현존성은 '지금, 여기'를 느끼는 것이다. 오로지 원본만 존재하던시절의 예술품을 마주할 때 우리는 예술품의 현존성을 느낀다. 그것은 오로지 지금 여기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유한 체험이다. 관람자는 예술품과 함께 '지금 여기'를 공유하는 아우라를 체험한다. 아우라는 '가까이 있더라도 아득히 멀게 느껴지는 것의 일회적인 나타남'을 뜻한다. 과거 예술품에는 제의의 역할이 있었다. 예술품은 어떠한 신비와 관람자를 연결시켜 주는 우상이었다. 관람자는 예술품에서 느껴지는 아우라를 통하여 신비에서 경외심과 영감을 얻었었다. 하지만 복제기술은 예술품의 현존성을 퇴색시켜 아우라를 해체시켰으며, 예술품의 역할변화를 제의에서 전시로 점점 가속화시켰다.


"복제기술은 복제된 것을 전통의 영역으로부터 분리시켜 버린다. 복제기술은 복제품을 많이 만들어냄으로써, 복제의 대상이 되는 것을 단 한 번 출현시키는 것이 아니라 대량으로 출현시킨다. 그리고 수용자가 그때그때의 자신의 상황에서 복제춤과 대면하는 것을 가능케 함으로써, 복제기술은 그 복제품을 현실화한다." -기술적 복제 시대의 예술작품 p.24


 예술가들은 자신의 오리지널리티, 즉 고유한 표현의 방식으로 자연을 재구성하여 작품을 창작한다. 과거 예술가들의 오리지널리티는 예술가의 포이에시스(poiesis)적인 면모에 가까웠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예술가의 포이에시스적 오리지널리티는 기술의 발전으로 그 영역이 급변하였다. 예술가 사용하는 표현의 도구 속에 복제기계들이 들어온 것이다. 복제기계를 이용한 예술은 예술가들에게 손에 자유를 주었지만, 그와 동시에 예술가의 오리지널리티에서 포이에시스의 영역을 축소시켰다. 그리고 그 축소된 영역에는 예술가의 프락시스(praxis), 즉 실천적 면모가 채워졌다. 복제기계와 만난 예술은 그것이 '어떠한 방식으로 표현되었나' 보다는 '어떤 것을 지향하고 표현하고 싶어 하는가'가 더욱 부각되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예술의 대중화에는 두 가지 의의가 있었다. 첫째는 예술의 산업화였다. 대중에게 전해지는 예술이 하나의 상품이 되어 자본으로 환원되는 소비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는 예술품을 자본의 선택을 받아 보여짐, 즉 전시됨에 더욱 많은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다. 두 번째는 예술의 정치화였다. 예술의 대중화로 인해 예술품을 통하여 예술가가 대중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영향력이 확대되었다. 예술품이 선동의 도구로 사용될 위험이 생긴 것이다.


 벤야민과 같이 프랑크프루트학파의 일원이었던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예술과 복제기술의 정치화, 즉 선전적인 악용을 경고했다. 벤야민 또한 기술의 발전으로 인 예술 정치화를 경계하였지만 새로운 시대의 예술을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지 않았다. 기술의 발전은 역사상 처음으로 대중을 예술의 수용자로 부상시켜 주었다. 벤야민은 예술로 인한 대중의 각성과 공감, 발전을 기대하였다. 또한 벤야민 사진기술을 사용하여 일상의 경험을 재조명하는 예술 또한 가치 있게 생각하였다. 사진기술을 이용 예술은 일상 속에서 소외되었던 경험들을 포착할 수 있게 하여 인간의 지각방식에 변화를 준 것이다.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지각방식에 큰 변혁을 주었으며, 이것은 개인이 경험할 수 있는 지평을 다채롭게 변화시켜 주었다. 벤야민은 새로운 시대의 예술을 받아들일 준비와 변화 또한 같이 고찰하였다.


"사진의 세계에서는 전시적 가치가 제의적 가치를 전면적으로 밀어내기 시작한다. 물론 제의적 가치가 완전히 무저항적으로 사라져 업성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최후의 보루 속으로 도망쳐 들어간다. 그리고 이 보루란 바로 인간의 얼굴이다. 초기 사진술의 중심에 초상사진이 놓여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멀리 떨어져 있거나 고인이 된 사랑하는 이들을 기억해 내는 제의적 행위 속에서 이미지의 제의적 가치는 최후의 피난처를 발견한다." -기술적 복제 시대의 예술작품 p.44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현대 사회의 예술은 우리의 손안에 손쉽게 쥐어진다. 우리는 이것에서 어떤 걸 느낄 수 있을까? 벤야민은 예술을 '자연을 미리 따라 해 보기'라고 표현했다.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지만 자연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는다. 예술은 자연을 미리 선취하여 자연을 모방함과 동시에 자연 속 미완의 공백을 예술가의 창작으로 채운다. 이러한 예술의 선취를 벤야민은 "예술의 역사는 예언의 역사이다."라고 표현했다. 우리의 손안에 손쉽게 머무는 현대예술들은 자연을 선취한 영감들이다. 이렇게 선취한 영감은 대중을 위한 예술 선물이다. 우리는 예술의 선물들을 어떠한 방식으로 사용할 것인가? 사용방식에 따라 예술이 인도해 주는 미래는 굉장히 상이할 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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