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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ㅣ Oct 05. 2023

간접적인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

Le langage indirect et les voix du...

 프랑스의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 그는 인간의 정신위주의 사상이 주로 펼쳐지던 서구사상의 중심에서, 인간의 신체를 주된 주제로 하는 자신만의 사상을 현상학적 방법론을 통해 체계적으로 구축하였다. 인간은 신체를 통하지 않고서는 그 무엇도 할 수 없다. 너무나 당연한 명제라서 그 이상 고민하지 않았던 문제들이지만, 이 지점에서 사유를 멈춘다면 인간의 신체는 단순히 어떠한 작업을 수행하기 위한 도구적 역할만을 반복할 뿐인 존재일 것이다. 신체는 단순히 정신의 명령을 받아 임무를 수행하는 도구적 존재인가? 생물학에서 뿐만 아니라 존재론적으로도 인간의 신체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신체의 영역을 정의하는 것, 그리고 세계와 정신 사이에 있는 신체의 작용들을 포착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이러한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서 우리는 신체를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지각과 체험을 가능하게 해주는 불투명한 존재론적 장소, 경험의 조건으로써의 존재론적 장으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세계와 마주하는 장소로써의 신체, 우리의 살(chair)로부터 메를로퐁티의 사유는 시작된다. 살은 세계와 신체가 서로 침투하고 있는 복합적인 장소이다. 메를로퐁티는 복잡한 살의 구조를 잘 표현해 주는 예시로 회화작품을 제시하였다. 회화작품들은 작가의 신체와 세계사이에 위치한 살의 관계를 가장 잘 드러내준다. 메를로퐁티는 이러한 사유를 1960년에 쓰인 <기호들>이라는 저서에 수록된 그의 논문 <간접적인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에게 남겨주었다.


"... 작가의 작업과 화가의 작업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우리는 흔히 화가는 색과 선으로 이루어진 무언의 세계를 통해 우리에게 다가와서 우리 내면의 공식화되어 있지 않은 해독 능력에 호소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해독 능력을 맹목적으로 실행하고 나서야, 즉 작품을 좋아하고 나서야 비로소 작품을 자세히 뜯어보게 되는 것이다. 반면 작가는 이미 공들여 만들어진 기호들과, 이미 말이 토용되는 세계 속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자신이 제안한 기호의 지시에 따라서 의미 작용들을 다시 정리할 줄 아는 능력만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언어가 단어에 의해서 표현하는 것처럼 단어들 간의 관계에 의해서 표현하는 일도 가능할까? 즉, 언어는 '말하고' 있는 것에 의해서와 마찬가지로 '말하지'않는 것에 의해서도 표현할 수 있을까? 만일 경험적으로 활용된 언어 속에 숨겨진, 이차적인 능력을 지닌 언어가 있다면, 그렇다면 기호가 색채의 모호한 생명력을 새롭게 이끌어내는 곳은 어디이며 의미 작용들이 기호들의 상호교류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운 곳은 어디일까?" -간접적인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 p.30


 메를로퐁티는 회화작품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회화를 침묵의 사유라고 생각하였다.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으로부터 우리는 언어가 기호들의 연쇄(혹은, 이항대립)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호를 구성하는 기표(signifiant)와 기의(signifié) 필연적으로 결합된 것이 아니다. 기표와 기의의 결합은 자의적이며 어긋나 있다. 이러한 자의성은 발화행위, 파롤(parole)을 통해 드러난다. 같은 단어(기호)를 말함에도 특정 상황 속 발화행위를 통해 그 단어는 다른 의미를 드러낸다. 다르게 표현하면, 언어 속에서 '말해진 것'은 '말해지지 않은 것'으로부터 밝혀진다. 그렇다면, '말해지지 않은 것'들의 탐구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회화가 이러한 탐구가 가능하다면, 회화작품은 어떠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의미를 전달하고 있을까? 회화는 '말해진 것' 임과 동시에 '말해지지 않은 것'을 함께 포함한다. 메를로퐁티는 이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은폐된 세계의 진실된 묘사, 침묵의 사유를 회화(어쩌면 시각예술)의 특징이라 생각했다.


 인간의 눈(신체)을 통하여 들어오는 시각정보들의 사건들, 즉 시각이 주는 인상들은 아직 언어를 통한 개념화가 되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언어가 되기 이전의 무언가이다. 시각정보에서 느낄 수 있는 인상들은 그곳에 이미 주어져있지만, 종합되기 이전의 무언가이다. 현상학적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실증주의에 대한 회의적 태도이다. 객관적인 자극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의심, 우리가 받은 시각정보에 주관을 제외한 원본이 있다는 것에 대한 의심이 중요하다. 메를로퐁티도 이러한 관점에서 인상을 생각한다. 시각정보를 통해 형성된 인상은 객관적인 이데아와 같은 '참된 세계'를 전제하며 생성되지 않는다. 우리가 느끼는 인상은 미리 형성되어 있는 것이 아닌, 우리의 신체와 함께 매 순간 새로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느끼는 세계가 절대적으로 주관적인 것 또한 아니다. 우리는 항상 세계에 대하여 미리 이해된 지식, '선이해'를 통하여 인상들을 종합하여 해석한다. 즉, 우리의 인상들은 주관과 객관사이에 놓인 경험의 장위에서 이루어진다. 메를로퐁티는 이 장을 세계와 신체가 뒤엉킨 장소로 생각하였으며, 그 장소를 '살(chair)'이라 표현했다.


 메를로퐁티는 시각예술 또한 주관과 객관사이에 놓여 있다 생각했다. 회화작품은 화가가 본 것임과 동시에 보이는 것이다. 봄과 보임의 상호침투, 이러한 끝없는 상호침투는 측정할 수 없는 깊이감을 회화작품에 부여한다. 이러한 깊이감은 주관과 객관 그 어느 곳에서도 속하지 않는 경험의 장, 즉 '살'의 체험이다. 메를로퐁티는 '살'을 끊임없이 요동치는 '원초적 세계'라 생각했다. 그리고 회화작품은 '살'의 가시화이다. 화가는 회화작품을 통해 원초적 세계(살)를 표현한다. 원초적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자기 자신을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원초적 세계는 화가가 미리 정해두어 그려야 할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새로이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화가는 이러한 원초적 세계를 작품에 담기 위해, 객관적이며 정적인 세계가 아닌 자신이 보는 생생하게 움직이는 세계를 그린다. 이러한 시점은 인상주의 화가들의 시도들을 거치며 더욱 두드러졌다. 메를로퐁티는 이러한 예술의 본질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몇몇 작가들의 회화들을 예시로 들었다.


"고흐가 <까마귀들>을 그리는 순간 '보다 멀리 나아가는' 것은 이제 단순히 우리가 향해야 할 실재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의 시선과 그의 시선을 간청하는 사물과의 만남, 또는 존재하는 사람과 존재하는 것과의 만남을 복원시키기 위해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한 관계는 서로를 모사하는 것과는 분명하게 다르다. '예술에 있어서는 언제나 그렇듯이 진실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해야 한다'라고 말한 샤르트르의 지적은 옳았다. 처음에는 재치 넘치는 것처럼 들렸던 대화도 정확하게 녹음해서 나중에 다시 들으면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녹음에는 말하는 사람의 현전이나 몸짓, 표정, 돌발적이고 계속 속이어지는 즉흥적인 사건에 대한 느낌 등이 전혀 들어 잇지 않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대화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그저 단조로운 음의 차원에 머물러 있을 뿐이며, 이러한 청각적인 매체는 읽힌 텍스트 매체일 뿐인 만큼 더욱 실망스러운 것이 된다. 예술 작품은 때때로 우리의 감각 중 하나에만 의존하고 생생하게 체험된 것처럼 모든 방면에서 우리를 완전하게 에워싸지 못해서, 우리의 정신을 자기가 만드는 그대로 채워준다. 따라서 예술 작품은 동결된 존재와 달라야 하고, 비슐라르가 말했듯이 '초존재'여야만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예술 작품이 자의적이거나 허구적인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현대 사상이 그러하듯 현대 회화 역시, 어떤 대상과도 닮지 않았고, 외부에 모델을 두고 있지 않으며, 미리 정해진 표현 수단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진리인, 하나의 진리를 수용할 것을 강요한다." -간접적인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 p.55


 메를로퐁티는 예술작품을 정의할 수 없는 비가시적인 존재를 가시화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언어화할 수 없는 침묵의 가시화, 몸짓과 제스처와 같은 원초적 세계를 드러내는 파롤을 예술작품이라 주장한다. 메를로퐁티에게 예술작품은 침묵을 표현하는 언어이다. 언어가 근본적인 존재의 의미를 드러내려면 이미 '말해진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말해진 것'을 말하는 것은 근원적인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해된 이차적인 개념만을 말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존재의 근원적인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 가능하려면 이미 사용되어졌던 경험적 음성 표현을 반복하면 안 된다. 통상적인  언어체계 속에서 이것은 무척 어렵게 느껴진다. 그러므로 메를로 퐁티는 언어의 진정한 사유는 침묵적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리고 예술작품은 침묵을 담고 있다. 메를로퐁티에게 예술이란 이미 사유되거나 형성된 의미가 아니라 발원적인 의미를 간접적으로 말하는 침묵의 목소리이다.


 "언어란 단지 하나의 의미를 다른 의미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등가적인 의미를 치환하는 것이다. 새로운 구조는 이미 과거의 구조 속에 현존했던 것이며, 과거의 구조가 현재의 구조 속에 여전히 생존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를 지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언어가 총체적인 축적이라는 추정은 의심의 여지가 없고, 현재의 파롤은 철학자들에게, 잠정적이기는 하지만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일시적인 자아 소유의 문제를 제기한다. 어쨌든 언어가 시간과 상황 속에 존재하기를 중단할 때 비로소 사물 자체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간접적인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 p.107


 메를로퐁티의 시선으로 예술작품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예술작품은 이미 해석된 것의 재해석이 아닌, 작가가 세계와 마주하며 느낀 원초적 체험을 담아내는 근원적 표현이 될 것이다. 우리는 버릇적으로 사물을 바라볼 때에 그것이 이미 '이해된 무언가'로 생각하여 개념화하려고 한다. 그리고 개념화가 어려운 사물들을 보며 그것이 내포하는 의미가 없다 느껴 '무의미' 하다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버릇적 사유를 잠시 중단하여 세계를 바라보면 우리는 개념들에 뭉개져 은폐되어 있던, 말할 수 없는 침묵의 세계를 발견하게 된다. 막다른 지점에 갇혀 답답한 기분이 들 때에는 메를로퐁티의 사유를 통해 주위를 환기시켜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러면 자신이 닫힌 방에 갇힌 것이 아니라, 거대한 자신이 방을 에워싸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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