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langage indirect et les voix du...
"... 작가의 작업과 화가의 작업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우리는 흔히 화가는 색과 선으로 이루어진 무언의 세계를 통해 우리에게 다가와서 우리 내면의 공식화되어 있지 않은 해독 능력에 호소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해독 능력을 맹목적으로 실행하고 나서야, 즉 작품을 좋아하고 나서야 비로소 작품을 자세히 뜯어보게 되는 것이다. 반면 작가는 이미 공들여 만들어진 기호들과, 이미 말이 토용되는 세계 속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자신이 제안한 기호의 지시에 따라서 의미 작용들을 다시 정리할 줄 아는 능력만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언어가 단어에 의해서 표현하는 것처럼 단어들 간의 관계에 의해서 표현하는 일도 가능할까? 즉, 언어는 '말하고' 있는 것에 의해서와 마찬가지로 '말하지'않는 것에 의해서도 표현할 수 있을까? 만일 경험적으로 활용된 언어 속에 숨겨진, 이차적인 능력을 지닌 언어가 있다면, 그렇다면 기호가 색채의 모호한 생명력을 새롭게 이끌어내는 곳은 어디이며 의미 작용들이 기호들의 상호교류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운 곳은 어디일까?" -간접적인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 p.30
"고흐가 <까마귀들>을 그리는 순간 '보다 멀리 나아가는' 것은 이제 단순히 우리가 향해야 할 실재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의 시선과 그의 시선을 간청하는 사물과의 만남, 또는 존재하는 사람과 존재하는 것과의 만남을 복원시키기 위해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한 관계는 서로를 모사하는 것과는 분명하게 다르다. '예술에 있어서는 언제나 그렇듯이 진실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해야 한다'라고 말한 샤르트르의 지적은 옳았다. 처음에는 재치 넘치는 것처럼 들렸던 대화도 정확하게 녹음해서 나중에 다시 들으면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녹음에는 말하는 사람의 현전이나 몸짓, 표정, 돌발적이고 계속 속이어지는 즉흥적인 사건에 대한 느낌 등이 전혀 들어 잇지 않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대화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그저 단조로운 음의 차원에 머물러 있을 뿐이며, 이러한 청각적인 매체는 읽힌 텍스트 매체일 뿐인 만큼 더욱 실망스러운 것이 된다. 예술 작품은 때때로 우리의 감각 중 하나에만 의존하고 생생하게 체험된 것처럼 모든 방면에서 우리를 완전하게 에워싸지 못해서, 우리의 정신을 자기가 만드는 그대로 채워준다. 따라서 예술 작품은 동결된 존재와 달라야 하고, 비슐라르가 말했듯이 '초존재'여야만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예술 작품이 자의적이거나 허구적인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현대 사상이 그러하듯 현대 회화 역시, 어떤 대상과도 닮지 않았고, 외부에 모델을 두고 있지 않으며, 미리 정해진 표현 수단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진리인, 하나의 진리를 수용할 것을 강요한다." -간접적인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 p.55
"언어란 단지 하나의 의미를 다른 의미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등가적인 의미를 치환하는 것이다. 새로운 구조는 이미 과거의 구조 속에 현존했던 것이며, 과거의 구조가 현재의 구조 속에 여전히 생존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를 지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언어가 총체적인 축적이라는 추정은 의심의 여지가 없고, 현재의 파롤은 철학자들에게, 잠정적이기는 하지만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일시적인 자아 소유의 문제를 제기한다. 어쨌든 언어가 시간과 상황 속에 존재하기를 중단할 때 비로소 사물 자체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간접적인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 p.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