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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ㅣ Dec 07. 2023

미의 기원과 본성

Encyclopédie-des arts et des métiers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 드니 디드로, 철학자이자 작가였던 그는 영국의 체임버스 백과사전을 프랑스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디드로의 학문에 대한 열정은 단순한 번역작업에 그치지 않아, 세상의 모든 새로운 지식을 재정립하여 집대성하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게 되었다. 그는 동료들을 모아 수많은 학자들과 교류하며 20여 년간 백과사전서(Encyclopédie)를 집필하였다. 그는 초기에 이신론자였으나 점차 무신론자로 사상이 변하였기에, 끊임없는 종교적 갈등과 정치적 박해를 받았으며 감옥에 투옥이 되는 위기도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에도 그의 작업과 학문에 대한 열정은 꺾이지 않았다. 디드로의 백과사전서 집필작업은 1751년 첫 번째권이 출간되어  마지막권을 마무리 짓는 1772년까지 이어졌다. 그의 백과사전서는 프랑스 왕정에 의해 금서로 지정되었으나 비밀리에 출판, 유통되어 프랑스혁명의 사상적 기초가 되어주었다. 디드로는 또한 근대 미술비평의 권위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파리에서 2년마다 열리는 미술전람회인 '살롱전'을 관람하여, 살롱전을 직접 관람하기 힘든 독자들을 위하여 비평문을 작성하는 일을 하였다. 이렇게 작성되어 총 아홉 번 개제 된 그의 비평문 <살롱(Salong)>은 디드로를 근대 최고의 미술비평가로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백과사전서의 '아름다운(미)' 항목이 국내에서 <미의 기원과 본성>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이 되어있어 디드로의 아름다움에 대한 고찰을 살펴볼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미에 대해 논한다. 자연물을 보고 아름답다고 감탄을 한다. 예술 작품은 미를 구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줄곧 아름답네 아니네 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단히 세련되고 믿을 만한 감식안을 가진 사람들에게 미의 기원, 미의 본성, 미의 정확한 뜻, 미가 실제로 뜻하는 것, 미의 정확한 정의, 미가 절대적인 것인지 아니면 상대적인 것인지, 그리고 본질적이고 영원하며 불변하는 미가 있고 하위의 미가 이를 규범이자 본보기로 따르는 것인지, 미나 유행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묻는다면, 사람들은 곧 생각이 갈라져 어떤 이들은 자기는 모르겠다고 하고 다른 이들은 회의주의에 빠진다. 그런데 어떻게 대부분의 사림들이 미는 존재하는 것이라고 의견을 같이하는 것일까? 미가 어디에 있다고 생생하게 느끼는 사람들은 그토록 많은데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하는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 것일까?" -미의 기원과 본성 p.7


 우리가 무언가를 보기 좋다 느낀다면, 우리가 본 그것이 아름답기 때문에 그것이 보기 좋은 것인가, 우리가 그것을 보기 좋다 느끼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일까? 우리가 그것을 보기 좋다 느끼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라면, 아름다움은 우리의 감성과 다른 것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기분 좋음과 아름다움이 구분되기 힘든 것이라면, 그것이 아름다움이라 칭해질 수 있는 것일까? 아름다움의 존재를 회의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아름다움을 탐구하기 위해선 아름다움이 선행하고 그것이 우리에게 '쾌'의 감정을 일으킨다 주장해야 한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우리가 아름다움이란 물질이 있지 않다는 것은 쉽게 유추할 수 있는 것 같다. 아름다움이 물질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고대의 철학자들은 아름다움을 조화로움이라 생각하였다. 그들의 사유에 따르면, 아름다움은 배치된 물질들의 조화로움에서 나온다. 인간은 이 조화로움을 안정된 것, 옳은 것, 선한 것이라 느낀다. 그런데, 모든 물질은 무한히 많은 부분들로 분화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들이 '전부' 단일성을 가지고 완전한 조화를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상 속에서 보는 아름다움은 엄밀하게 표현하면 '조화로운 경향을 띄는 것' 혹은  '아름다움의 경향을 띄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경향들이 목적으로 하는 그것은 무엇이며,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완수될 수 있는가? 그러므로 고대로부터 시작된 이러한 사유는 아름다움을 인간의 정신을 초월해 있는 영원하고 근본적이고 완전한 어떠한 것을 상정하는 의미가 되었다.


 "우리는 생각하고 느끼는 능력을 갖고 태어났다. 생각하는 능력이 첫 발을 내딛으면서, 지각을 을검토하게 되고, 통합하고, 비교하고, 결합하고, 여러 지각이 조화를 이루느냐 부조화하느냐 하는 관계를 알게 된다. 우리는 욕구를 갖고 태어나기 때문에 다양한 수단에 도움을 청하지 않을 수 없고, 예상했던 결과에 따라, 또 산출된 결과에 따라 이들 다양한 수단 가운데, 좋은 것, 나쁜 것, 신속한 것, 짧은 것, 완전한 것, 불완전한 것 등이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들 수단의 대부분은 연장이나 기계, 혹은 그런 종류의 발명품이었다. 그러나 모든 기계는 동일한 하나의 목적을 향한 부분들의 배치 및 결합을 전제로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욕구가 생기면 우리의 능력은 신속히 실행된다. 우리가 태어나자마자 우리가 가진 능력들이 한데 합쳐져 질서, 배치, 균형, 구조, 통일성에 대한 관념들이 우리에게 생긴다. 이 모든 관념은 감각에서 나오며 따라서 인위적이다. 우리는 인공적이고 자연적인, 조정되고, 균형을 이루고, 결합되고 대칭을 이루는 무수한 존재들의 개념에서 출발해서 질서, 배치, 균형, 결합, 관계, 대칭과 같은 긍정적이고 추상적인 개념 및 불균형, 무질서, 호돈과 같은 부정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으로 나아갔다. 이를 개념은 모든 다른 개념들처럼 경험적이다." -미의 기원과 본성 p.42


 물질들의 연합은 기능이 되고, 의지가 되고, 생명이 된다. 아름다움 또한 물질들의 연합, 관계로 이루어진다. 아름다움이 완전성을 지향한다면, 아름다움은 완전성을 향한 기능이거나 의지일 것이다.  그런데, 만일 아름다움이 개별화 없이 물질들 간의 관계로만 이루어진다면, 아름다움은 필연적으로 상대적인 개념이 될 수밖에 없다. 아름다움이 관계와 배치의 양식이라면, 무엇과 비교해서 아름다운 것이라는 형식만으로 아름다움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유에서 아름다움을 바라본다면 세계와 독립된 하나의 물체에선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아름다움을 예술가에게 요구한다면, 예술가에게 우리는 "가장 아름다운 무언가를 만드시오."만을 요구하는 것이 된다. 예술은 이렇게 단조로운 것만을 바라는 것인가? 또한 예술가가 이러한 아름다움을 실현시키려면 무수히 많은 관계들을 포착하기 위하여 끝없는 지식을 가져야만 할 것을 요구해야만 한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것은 지성의 종합에 의한 관계분석이 아닌 감성에 의한 관계 맺음으로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단순히 '쾌'와 '불쾌', '만족'과 '불만족'을 느끼게 하는 다른 요소들과는 확연히 다른 무언가여야 한다. 아일랜드의 철학자 허치슨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미적감각만을 느끼기 위한 새로운 내적 감각이 있다 주장하였지만, 우리가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하여 필연적으로 다른 오감의 기능이 요구되기 때문에 아름다움을 위한 독립된 감각이 있다는 주장은 신빙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물질들의 감성적인 관계 혹은 연합, 배열은 무엇이란 말인가?


"'미'라는 말을 못 가져다 붙일 데가 없다. 하지만 존재들 사이에 있는 차이와는 상관없이 미라는 말을 우리가 잘못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면 모든 존재에는 미라는 말을 기호로 삼을 수 있는 특징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 특징은 존재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차이를 구성하는 특징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아름다운 존재는 단 하나뿐이거나 단 하나의 종만이 아름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름답다고 부르는 모든 존재가 공통으로 가진 특징 가운데 어떤 것을 미라는 말을 기호로 삼을 수 있는 것으로 선택할 수 있을까? 어떤 것일까? 내가 보기에 그것은 무엇인가가 있어야 사물이 아름답게 되는 특징이라는 것이 명백하다. 그 특징이 빈번하게 나타나거나 드물게 나타날 수 있다면 그 빈도에 따라 사물을 더 혹은 덜 아름답게 되며, 그 특징이 그 특징이 부재하면 사물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게 된다. 종이 아름다움을 변화시키지 않고서는 본성이 바뀌지 않고, 반대가 되는 특징이 있다면 가장 아름다운 것이 불쾌하고 추해진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 특징으로부터 미가 출발하고, 증가하고, 무한히 변화하고, 쇠락하고, 사라진다. 그런데 이런 결과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관계' 개념밖에는 없다." -미의 기원과 본성 p.45


 아름다움의 관계는 감성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하지만 지성에 도움 없이 수행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물질을 파악하는 개념들 또한 전제되어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꽃이라는 개념 없이 꽃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까? 꽃의 관계 맺음을 이해하려면 꽃이라는 개념이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대리석이 풍화로 인해 우연히 꽃의 형상을 띈다면, 오직 꽃의 개념을 아는 인간만이 이를 아름답다 생각할 것이다. 다른 모든 예술작품들 또한 그렇다. 감성적 수용 이전에 지성의 종합능력이 요구된다. 그러므로 아름다움이란 감성과 지성의 교류 속에 가능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아름다움을 무지한자는 느낄 수 없는 것이냐는 반문이 제기될 수 있다. 혹은 예술가에게 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성을 요구해야만 하는 것일까? '미'가 언제나 관계로 구성된다면, '미'는 관계들의 수와 이러한 복합적인 관계들을 발견할수록 비례적으로 어려운 것이 될 것이다.


"어떠한 존재를 예술가가 만든 작품이라고 완전히 확신하려면 얼마나 많은 관계를 고려해야 하는가, 어떤 경우에 대칭의 결함 하나가 관계들의 총합 이상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인가, 우연한 원인이 작동한 시점과 산출된 결과에서 관찰된 관계들은 어떠한가, 전지전능한 존재의 창조물을 예외로 한다면 관계들의 수는 우연에 맡겨진 것의 수로 결코 상쇄되는 일이 없을 수많은 경우가 있지 않을까. ..." -미의 기원과 본성 p70


 디드로는 예술의 복잡함과 어려움의 이유를 설명하려는 것일까? 그가 계몽주의자였던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디드로는 예술의 어려움보다는 세상을 탐구하고 발견하는 즐거움과 신비로움을 전하려 하는 것 같다. 세계의 물질들이 서로 관계하는 다양한 사태와 양태. 그러한 것들을 탐구하는 것을 우리는 학문이라 한다. 예술 또한 이러한 탐구를 가능하게 한다. 디드로에 의하면 예술은 관계들의 고려와 같은 것이 된다. 이러한 관계들의 지향점을 조화로움 그 자체라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다양한 사상에 따라 관계와 조화의 목적을 신의 섭리나 운명과 같은 것들로 삼거나 우연과 생성, 유일성과 같은 기준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떠한 사상을 펼치던, 그러한 사상들의 탐구를 가능하게 하는, 아름다움을 관계들의 고려 속에 찾으려 하였던 디드로의 사유는 선구자적인 것 같다. 어떠한 것들이 세계에 조화를 가져다주는가? 이러한 그의 미에 대한 탐구는 훗날 칸트의 미학에 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디드로에 따르면 세계의 관계들은 우연에 의해 우리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 없이 다양하게 생성되는 것이다. 예술이란 이러한 관계들 속의 조화를 통한 아름다움을 밝혀주는 것이다. 아름다움이 조화를 바란다면, 아름다움이 조화의 기술 혹은 능력이라면,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소통과 화합을 가져다줄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아름다움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자주 망각하여 추구하지 못하는 중요한 무언가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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