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철학산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ybk Dec 16. 2023

신학-정치학 논고

Tractatus Theologico-Politicus

 네덜란드의 유대인 철학자 바뤼흐 스피노자. 종교계의 비판을 피하기 위하여 1670년에 익명으로 출판된 <신학-정치론>은 <에티카>와 함께 그의 주된 저서 중 하나이다.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능산적 자연'과 '소산적 자연'을 구별하며 신, 자연, 그리고 실체에 대한 개념을 제시한다. 이러한 구상은 특히 <신학-정치론>에서 근간을 두고 있다. 일반적으로 <신학-정치론>과 <에티카>는 자유에 관한 주제를 공유한다고 말하지만, 두 저서 간에 담긴 자유의 의미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에티카>는 주로 인간 지성 또는 이성적 자유에 중점을 두었지만, <신학-정치론>은 정치적 자유 문제에서 인간의 신체와 욕망에 초점을 맞추었다.


"모든 일을 확실한 계획에 따라 행할 수 있거나 매 순간 행운이 그들에게 유리하게 적용한다면 면사람들은 미신의 유혹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살마들은 종종 어떠한 해결책도 없는 낭패를 당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믿을 것이 못 되는 재물에 대한 지나친 열망 속에서 두려움과 희망사이를 안쓰럽게 오가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그들의 의식은 무엇이든 믿으려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어느 때고 그가 가의심에 사로잡히게 되면 아주 조그만 자극도 그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기에 충분하다. 평소에는 극도로 확신에 차 있고 거만하며 교만한 그를, 두려움과 희망 사이에서 흔드는 것은 아주 조그만 자극이다." -신학-정치론 p.14


 스피노자는 <신학-정치론> 머리말에서, 자신의 본성을 알고 있는 인간은 드물다고 전제하며, 심지어 미숙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운명이 그들에게 호의적일 때에는 지혜가 넘치지만, 불운에 빠지면 다른 이의 조언을 듣지 않고 오히려 인격모독으로 여기며 이성적 판단을 무시한다고 말한다. 운명이 어려움에 빠트릴 때는 모르는 사람이나 지나가는 이로부터도 조언을 구하려고 한다. 스피노자는 이때 인간은 어떠한 조언이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은 종교를 찾게 된다고 주장한다.


 스피노자는 모든 인간이 추구하는 욕망이나 탐욕이 있으며, 이러한 순간적인 욕망이나 탐욕에 빠져버리는 경우가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미신의 큰 희생자가 되며, 위험에 처하면 신에게 기도하거나 눈물로 호소한다. 이들은 자신이 추구하는 허황된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을 신이 제시하지 않으면 이성을 무시하고, 지혜를 헛된 것으로 여기며, 상상과 환상, 그리고 터무니없는 사건을 하늘의 계시로 간주하고 믿는 경향이 있다고 스피노자는 분석한다.


"사람들이 신앙심의 탈을 쓰고 받아들인 편견이 얼마나 끈질기게 정신에 달라붙어 있는지를 나는 알고 있다. 일반 사람들에게서 두려움과 마찬가지로 미신을 제거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마지막으로 일반 사람들이 고집이 매우 세며, 그것이 미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칭찬과 비난에 대한 맹목적인 열정에서 우러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일반 사람들과 그들과 같은 욕망을 나누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이 책을 권하지 않는다. 그들이 이 책에 부담을 갖고, 늘 그랬던 것처럼 잘못된 해석을 내리기보다는 차라리 이 책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기를 원한다. 그들의 부당한 태도는 그들 자신에게 유익한 점이 아무것도 없을 테지만, 자유롭게 사색할 수 있는 다른 사람들, 즉 이성은 신학의 하녀여야 한다는 것과 같은 주장에 방해받지 않을 사람들에게는 손해가 될 것이다. 나는 후자의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매우 유익할 것이라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신학-정치론 p.29


 스피노자는 곤경에 빠진 사람이 종교적 신앙을 품는 주요 이유는 공포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공포가 미신을 낳고, 이러한 미신이 집단적으로 조직화되면 종교가 형성된다고 설명한다. 스피노자는 인간의 본성이 공포에 영향을 받아 변덕스럽고 일관성이 없다고 강조하며, 종교 지도자가 이러한 본성을 이용해 종교에 대한 변하지 않는 신앙과 숭배를 구축하려 한다고 지적한다. 종교의 주요 목적은 어떠한 수단을 통해 공포를 조장하고 복종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스피노자는 이러한 목적이 종교의 중심에 있는 신에 대한 개념을 왜곡시켰다고 한다.


 스피노자는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모순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이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신학-정치론> 제1장에서 '예언 또는 계시'를 '신이 인간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확실한 지식'으로 정의하고, '예언자'를 '계시된 내용에 관해 명료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오직 종교적 믿음에 의해서만 지식을 받아들이려는 사람에게 신의 계시를 해석해 주는 사람'이라 말한다. 또한 예언자를 특정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 아닌, 분명하게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으로 정의하며, 예언자들이 서로 다른 능력과 증표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예언자마다 신의 속성을 다르게 이해한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예언자들은 신의 속성을 다르게 가르치게 되며, 이는 종교 내에서 신의 이해에 다양성을 불러온다고 스피노자는 주장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나는 성서 해석의 방법이 자연 해석의 방법과 다르지 않고, 그것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자연 사물의 정의를 확실한 자료에서 이끌어내서 자연을 연구하는 것이 자연 해석의 방법에서 본질적인 것처럼, 확실한 자료와 원칙에서 올바른 추론을 통해 성서기자의 진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성서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역사적 연구를 만들어내는 것이 성서 해석에서도 필요하다. 이러한 방식으로 모든 사람들(성서를 해석하고 성서의 내용을 설명하는 데 성서 자체와 성서에 대한 역사적 연구에서 그것을 끌어내는 방식 외에 다른 원칙과 자료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오류를 범하지 않고 발전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의 이해력을 넘어서는 것에 대해 우리가 자연의 빛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들과 마찬가지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신학-정치론 p.36


 스피노자는 신이 전지전능하기 때문에 '모든 곳에 존재하고 모든 것을 안다'라고 주장한다. 그는 '<신학-정치론> 제1장과 제2장에서, 율법서의 예언자가 비록 신의 선택을 알지 못할지라도 신의 선택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강조한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신은 자연을 창조하였으며, 자연의 이치는 영원한 신의 명령과 뜻에 따라 진행된다고 한다. 특정한 일이나 삶의 계획을 위해서는 신의 부르심에 의존해야 하며, 스스로 삶의 방식을 선택하거나 얻기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누구나 얻고자 하는 욕구의 핵심은 '사물의 제1원인을 통해 그 사물을 아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유용한 수단은 개인의 본성에 내재되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통해 율법서를 종교적인 관점이 아닌 도덕적이고 철학적인 시각에서 해석하고자 한다. 스피노자는 철학적 사고와 이성을 통해 율법서를 다루고자 하였으며, 종교적인 틀을 벗어나 도덕적 가치와 논리를 강조했다.


 스피노자를 기존 종교비판의 측면에서만 바라볼 수도 있지만, 현대에서 스피노자는 기존의 지식과 권력에 대하여 도전하며 자신의 옳음을 관철했던 의지적인 면모 또한 중요하게 바라보는 것 같다. 스피노자 연구로 저명한 현대의 철학자 네그리는 17세기 전후의 사상적 혼란기에 제시된 대안 노선들을 두 개의 노선으로 나누었다. 홉스-루소-헤겔로 이어지는 노선과 마키아벨리-스피노자-마르크스로 이어지는 두 노선을 대립시키면서 후자의 노선을 해방 철학과 미래 철학의 노선으로 제시하였다. 전자의 노선은 사상적 지배로서의 철학사였으며 후자의 노선은 그것에서 벗어나거나 그것을 해체하는 해방 운동의 표현이었다. 네그리의 관점에서 후자의 노선은 혁명적 유물론, 즉 구성적 유물론의 노선을 가리킨다. 근대 합리론의 거장으로 불리는 스피노자의 사상은 스피노자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근대 이후 유럽의 관념론과 유물론 양측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점에서 스피노자의 사상은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는 코드이다. 인간의 지적 가능성을 믿음과 동시에 대중들을 우중이라 부르며 선을 그었던 그의 고민의 양면성은 수많은 대중들 중 하나인 우리에게 양날의 검과도 같다. 이러한 스피노자의 시선을 현대인들도 모두 공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양면성을 조화 속에 어떤 방식으로 녹여내는지가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의 주된 과제 중 하나인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의 기원과 본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