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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YE Jul 08. 2024

[봄대표] 올챙이 적 이야기

사회 초년생 때 익힌 경험들


20살 게임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처음에 뽑혔던 건 회사에서 운영하는 무료 PC방(유저들을 초대해서 다양한 인사이트를 얻기 위한) 운영이었지만 영-효과가 없었는지 바로 사라졌다. 붕 뜬 나를 내팽개쳐도 되었을 듯한데 경리 보조로 보직이 전환됐다. 영수증의 존재 이유조차 관심 없던 내가 경리 보조라니. 근엄한 경리 부장님이 얼마나 머리를 짚으셨을지... 아직도 문득문득 생각이 날 정도지만 결과적으로 난 잘리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안 잘린 게 신기할 정도다. 꼼꼼함과도 거리가 멀고 무계획형인 데다가 경리업무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이 없었다. 


2000년대 초반 경리 보조의 일은 간단하다. 그렇지만 눈치 없으면 안 된다.

무겁고 엄청 컸다. 영화 속에서 살인도구로 많이 나온다.


먼저 대표님 방으로 들어가 담배꽁초 가득한 유리 재떨이를 비운다. 광이 나도록 아주 깔끔하게 씻어놔야 한다. 책상을 닦고 평소 대표님의 습관을 파악해 뒀다가 물건을 그대로 두거나 혹은 내가 알고 있는 자리라면 제자리에 둔다. 서류는 그대로 두는 편이고 책이나 도구는 있는 자리에. 실내 온도와 채광은 대표님이 좋아하도록 맞춰둔다. 


출근할 때 들고 들어온 5대 신문을 먼저 보는 순서대로 깔아 둔다. 조, 중, 동, 한겨레, IT신문이다. 기타 물이나 커피를 타는 것은 오신 뒤의 일이므로 패스. 담배 냄새가 심하다 싶으면 무언갈 뿌렸던 것 같은데 그게 페브리즈는 아니었다. 뭐였지?


여하간 그러고 자리에 앉는다. 수북이 쌓아둔 영수증을 정리한다. 이때 엑셀이나 요런 걸 할 줄 알아서 경리 부장님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으련만 그냥 부장님은 영수증만 카테고리별로 정리하라고 시키셨다. 엑셀을 배우라고 요구하지도 않았다. 딱 내가 받는 만큼만 요구하셨다.


늘 정장을 입고 출근하시고 업무 외 시간에 다른 곳 가지 않으시고 (담배를 태우시는데도! 점심시간에만 피심) 가끔 뇌를 빼고 말을 하는 나의 질문에 침착하게 대답해 주셨던 그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웹디자이너 언니가 일 끝났다고 엎드려서 자는 걸 보고 나도 일 끝났다고 업무 시간 중 엎드려서 잠을 청한 사건도 있었다. 미친 거 아닐까? 미쳤다.  그때 진짜 무섭게 생기셨는데 우리 경리 부장님이... 여하튼 어깨를 톡톡 치시더니 "일어나야지" 이래서 내가 "부장님! 웹디자이너 언니도 자는데 경리팀은 자면 되나요?" 미친 것이 확실함.


부장님은 헛기침 두 번 하시더니, "거긴 그쪽만의 사정이 있겠지. 여긴 대표님이 걸어 다니시는 통로잖아. 자고 싶으면 화장실 가서 자구 오렴 ^^^^^^^^^^"


아아. 과거의 나여. 무개념, 무자아, 무... 그냥 없을 無...



아아. 부장님은 어떤 마음으로 나를 1년이나 참고 견뎌주신 걸까. 그래도 나중에는 같이 맥심 커피도 마시고 와이프 상담도 하시고 (지금의 나보다 어리신 분이었음) 아빠로 사는 것이 정말 쉽지 않다는 고민 상담도 하셨더랬다. 그리고 보미 너는 경리 쪽은 맞지 않은 것 같으니까 배우려고 안 해도 된다고 ㅋㅋ확인 사살까지 하셨다. 남은 시간에는 너 하고 싶은 공부하고 글을 쓰고 하라고. 


그래서 자는 대신에 글을 썼다. 경리 보조는 단순 업무가 많다 보니 시키면 금방 하는 일들뿐이어서 비는 시간이 많았고 그때마다 재미 삼아 글을 쓸 수 있었다. 그런데 후에 그렇게 쓴 글이 인터넷에서 인기를 얻게 되고 책으로도 나오게 되었다. 이후로는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더욱 본격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언젠가부터 내가 처음 일했을 적의 시절을 자꾸 잊어버린다. 나는 부장님의 이해와 배려, 선의로 아무것도 나와는 접점이 없을 것 같았던 그곳에서 결국에는 성장할 수 있었다. 감사한 마음이다. 돌이켜보면 나의 성장은 그때마다 누군가의 이해와 배려, 선의가 함께 했다. 길을 터주는, 방향을 내어주는, 같이 한숨을 쉬어 줬던 동행자들 덕분에 꾸준히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사회 초년생 때 익힌 경험들은 이후의 삶에도 크고 작은 영향을 준다. 성장은 ‘어디서’도 중요하겠지만 ‘누구와’인 것도 중요하다. 나는 초년 시절 경리 부장님 같은 사람을 만나서 참 다행이었다. 이후에도 그런 귀인을 몇 번 만날 수 있었다. 이것도 복이야 정말 나의 올챙이였을 적을 떠올리며 다시금 마음을 세운다. 지금 우리 회사의 친구들에게 좋은 개구리가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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