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집 창문 너머로 보이는 화분은 마냥 예뻐 보인다. 처음에는 구경하러 들어갔다가 방 안에 하나 들여놓을까 하며 살펴보고 있다.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되고, 실내에서도 잘 자라는 식물을 추천받아 다육식물을 하나 데려왔다. 잎이 물을 머금은 듯, 볼이 빵빵한 얼굴처럼 생기가 돌았다. 다육식물은 관리하기에 어렵지 않다고 하니 잘 자랄 수 있겠지. 이름을 뭐로 정하지, 고민하다 홍옥이로 정했다. 옥이. 정겹고 마음에 든다.
화분 하나를 방에 두고 자고 일어나 일을 하고 밥을 먹고 다시 잠에 드는 하루가 반복된다. 오랜만에 홍옥이를 보니 통통했던 잎이 살짝 마른 것으로 보여 물을 주었다. 물을 주고 나서 잘 머금고 자라는지 지켜봐야 했는데, 또 하루들을 보내다 관찰하는 걸 놓쳐버렸다.
언제 물을 주었는지 가물가물해졌을 때쯤, 처음 꽃집에서 봤던 홍옥이와는 다르게 흙도 마르고 힘이 없어 보이는 화분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금세 좋아졌다가 싫어지는, 싫어졌다고 하기보다 무심해지는 것이 맞겠다. (어쩐지 이게 더 안 좋은 것 같지만 말이다.) 이런 성향을 특기로 하는 대회가 있었다면 최우수상 하나는 받지 않았을까. 시들해지고 나서의 화분을 다시 살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 하고 결국 정리해 버렸다. 한참 뒤에 생각해 보니 화분 하나쯤이 아닌 방에 두기로 한 결심과 시간을 너무 쉽게 져버린 것 같았다. 그 이후로는 미안한 마음에 화분을 집에 들이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다 마른 화분도 잘 관리하면 다시 살아나더라.
화분뿐만 아니라 그렇게 좋아해서 샀다가 무덤덤해져서 어디 있었는지도 모르는 물건들이 많다. 다시 찾을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정리해 버렸는지 찾을 수도 없어서 까먹은 것들도 많을 것이다. 누가 버렸냐고 원망하기엔 손가락이 무안하게도 나를 향해있다. 어느 날 내가 정리한 짐들이 나에게 ‘진짜 지독하다.’라고 한마디 할 것 같다. 한마디만 하면 다행인데 크게 혼쭐날 것 같은 강한 확신이 든다. 그럼 어떤 변명을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