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8
10개동안 아빠의 방은 아빠가 떠난 그 모습 그대로였다.
청소할때 밀대질이나 좀 할 뿐
메모지 한 장, 옷 한 벌 함부로 건드리지 않았다.
그러다 이대로 놔둬선 안되겠구나 싶은 생각이 찌는 듯한 여름 한가운데 어느 날 번뜩 머리를 스쳤다.
아빠가 이 방으로 돌아올 확률? 글쎄...그 희망을 놓고 싶지 않았지만
면회를 가서 아빠와 대화를 나눌 때마다
그 희망은 옅어져만 갔다.
마냥 그대로 둘 수만은 없었다.
아빠의 70평생을 바쳐 얻은 이 낡은 집과 내가 병들어가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주인을 잃고 덩그러니 먼지만 쌓여가고 짐만 쌓인 방도 그걸 하루에도 몇번이나 보게 되는 나도
그리고 또 하나의 생각은 언젠가 아빠가 떠난 뒤 난 이 방을 정리할 수 있을까?
자신할 수 없었다. 10개월이 아니라 10년을 방치할 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영원히...
때때로 어떤 어르신들은 나이가 들면 짐을 스스로 정리해 나가신다고 한다.
그렇게 스스로 떠날 준비를 하신다고 하는데 너무 갑작스럽게 집을 떠나 있게 된 아빠는
그런 준비의 시간조차 없었다 (그런데 아마 시간이 있었다 한들 그런 준비를 하진 않으셨을거다)
아빠를 대신해 20년쯤 미리 그 준비를 해드린다는 생각으로 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방 정리는 보통 일이 아니었다.
모든게 눈에 보여야 안심했던 아빠의 방엔 유난히 벽에 달아놓은 선반이 많았다. 그걸 일일이 그걸 떼고 박혀있던 수십개의 고정 못을 뽑고 빠데를 사와 구멍을 막고, 못쓰지만 차마 못 버린 물건들, 아빠가 병원에서 타놓고 케이스도 못뜯은 고혈압약, 당뇨약들을 따로 모으고, 선반을 떼고 옷장을 뒤져 너무 낡고 곰팡이가 핀 옷은 버리고, 쟁여두기 좋아하는 아빠의 모나미 볼펜 100자루쯤을 일일이 모아 담고, 낡아 덜렁대는 작은 티비 선반과 컴퓨터 책상을 버렸다. 이 모든걸 혼자서 하려니 3주는 족히 걸린것 같다.
아빠의 수첩들, 메모들, 서류들은 건드리지 않고 다 모아두고 아빠의 옷도 모아서 헹거에 걸어두었다.
사실 병원에 계시다보니 이 옷들을 다시 입으실 날이 있을까 싶은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꼭 입을 수 있는 날이 올거라고 믿으며 헹거 하나에 모아두었다.
그래봤자 사계절 옷을 다 합쳐도 헹거 하나를 채울 정도의 양이었다.
내 옷은 옷장을 다 쓰고도 모자라 별도의 헹거를 둘만큼 가득 찼는데
아빠의 옷이라곤 몇십년 된 옷부터 낯익은 낡은 옷가지들...고작 그게 다였다.
옷가지를 꺼내다 장롱 저 깊숙이 십수년전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받아온 사진 앨범을 발견했다.
원래 청소란건 중간에 이렇게 추억타임 잠깐씩 갖는게 묘미지 하면서
앨범을 열어보니 할아버지 환갑잔치때 사진 속 젊은 아빠와 어린 내가 보였다.
계산해보니 딱 지금 내 나이의 아빠가 있었다.
젊은 날의 고생이 참 많았던 돈에 허덕이느라 입고 먹고 쓰는 것 하나에도 손이 떨렸다던
그 시절 어깨가 무거웠던 가장의 아빠가 몇장 있지도 않은 사진 몇장 중 한장으로 남아있었다.
아빠의 방정리는 육체노동이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꽤 큰 감정노동이기도 했다.
눈물샘이 여름날 장마철 홍수라도 터지듯 감정선을 건드리며 터져나왔다.
앨범 속 젊은 아빠를 보고도 눈물이 터지고, 낡은 옷가지를 보고도 눈물이 터지고,
아빠의 메모들, 내가 사드린 아직 뜯지도 못한 새 속옷을 보고도 눈물이 터져나왔다.
얼굴을 뒤덮은게 폭염 열기때문에 흘린 땀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을만큼
맨날 아끼고 돈 무서운 생각에 뭐 하나 쉽게 사고 먹지 못하던 아빠의 그 세월이 무얼 위한 거였나.
몇 벌 안되는 옷가지조차 이젠 주인을 잃고 먼지만 쌓여가는게 허무하단 생각이 들었다.
아빠가 쟁여놓았지만 유통기한이 지나서 죄다 버려야 했던 조미료들, 커피, 국수, 밀가루등...
사람의 앞 날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고
나이들고 병들어 버리니 그다지 욕심 내고 산것도 없는 몇 없는 아빠의 물건들이 쓸모없는 것들이 되어 버리는구나. 내가 가진 수 많은 물건들의 무게는 얼마나 되려나 갑자기 어깨를 짓누르고 가슴을 짓누르는 기분이 든다. 내가 떠나야 할 때는 누가 이걸 정리해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