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사람이 가진게 없으면 식당에 가서 메뉴가 눈에 안들어 오고 가격부터 보게 되요. 없이 살던 시절 꿈이 식당에서 메뉴부터 보는게 꿈이었어요. 가격말고"
유튜브를 보다 어느 유명인의 이 한 마디에 갑자기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 유명인의 본인 얘기였지만 우리 아빠의 얘기기도 했다.
아빠가 편찮으시기 전 아빠와 식당을 가본 일은 한 손에 꼽는다.
집에서도 밥을 같이 먹지 않았는네 밖에서 외식이 왠말이겠는가
아빠가 쓰러지시고서야 우리는 마주 앉아 가끔씩이나마 밥을 먹게 되었다.
최근 10년과 비교해봐도 아빠가 쓰러지신 뒤 몇 달 사이 함께 먹은 식사 횟수가 더 많을 정도였다.
그래서 알게 된 아빠의 낯선 버릇들
아빠는 식당에 들어서면 메뉴판을 정독한다.
처음엔 메뉴를 훑는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메뉴의 가격들이었다.
9000원짜리 식당밥을 먹을때 조차 아빠는 꼼꼼히 그리고 꽤 신경써서 가격부터 읽었다.
평생을 돈에 쪼들려오고 외식에 몸을 사리고 아끼는게 너무 몸에 베여서 인이 박힌 사람의 습관이었다.
그건 치매가 시작되고서도 똑같았다. 아빠는 무조건 가격부터 읽었다.
그리고 첫마디는 꼭 "어휴 너무 밥값이 비싸다. 집에 가서 먹자"
요즘 밥값이 다 이 정도 한다고 제발 가격 좀 보지 마시라고 이 정도는 충분히 사드린다고 말씀드려도
별 대단한 맛도 아닌거 집에가서 먹자고 우겨대셨다. 그럴때마다 집에 밥이 없어서 그러니 제발 별말씀 하지 마시고 먹고 가자고 달래는게 식당에서의 코스였다. 별 맛도 없는거라고 해놓고선 매번 헐레벌떡 아주 맛있게 싹싹 비우셨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서 사실 나는 아빠와 밥 먹는게 조금 힘들었다.
난 반그릇도 먹지 못했는데 아빠는 어느새 다 드시고 나를 쳐다보고 계셨다.
그러면 내 밥을 또 절반 덜어 아빠께 드리면 아빠는 기다렸다는 듯 맛있게 그 밥을 드셨다.
아빠가 치매가 오기전 그러니까 처음 쓰러지시고 섬망 정도만 있으실때 물어본적이 있다.
"아빠는 진공청소기처럼 밥을 빨아들여? 씹긴 하시는거야? 왜이렇게 빨리 드셔?"
"공장에서 밥 먹던 버릇이 남아서 그렇지"
"공장에서 밥 먹을 시간을 짧게줘?"
"일이 고되니 빨리 먹고 일분이라도 더 쉬려고 빨리 먹다보니 공장 안다닌지 10년 넘었는데 안 고쳐지네"
"아빠 근데 식당가서 왜 가격표부터 봐? 우리 먹는거 가격 빤한데 매번 그렇게 정독을 하셔?"
"사람이 자기 먹는 밥 값 정도는 알고 먹어야지"
"아니 우리 먹는 밥 거기서 거긴데 새로 알 것도 없는데 그리고 좀 비싸면 어때. 내가 그 정도도 못사드릴까봐?"
"뱃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은데 뭐하러 돈 써"
"뱃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은데 그렇게 맛있게 드시나?"
"뭐 아까 그 대구탕은 먹을만 하더라"
"아빠, 아빠 모야모야 수술하고 나면 우리 맛있는거 많이 먹자. 내가 더 좋은것도 사드릴게. 우리 제주도 여행도 가보자. 아빠 비행기 한 번도 못타보셨잖아."
"됐어. 그런거 욕심 없어. 너나 놀러가."
"죽기전에 비행기는 한 번 타봐야지. 아빠 친구들은 비행기 타고 해외도 가는데 제주도는 가봐야지. 아빠 제주도도 못가봤잖아."
"먹고 살기 바빠서 그랬지 뭐."
"아빠 그러니까 내년 봄이나 가을엔 꼭 같이 갑시다. 1월에 수술하시면 5월엔 가도 될거야. 거기 흑돼지도 맛있고 갈치도 그렇게 맛있대. 그땐 가격표 좀 보지 마시고"
"그래. 그러자"
지난 12월 병원 진료를 보고 다시 요양병원으로 돌아가며 아빠와 나는 꽤나 다정한 2025년 봄을 꿈꿨었는데 정작 2025년 봄부터 아빠의 외래진료조차 내가 대리처방으로 다니며 아빠는 요양병원에 24시간 한 달 내내 갇혀 병원밥만 드시고 계신다. 우리가 꿈꾸던 봄은, 여름은 이런게 아니었는데...
아빠랑 밥 좀 많이 먹어둘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