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중 듣는 어린아이처럼

20250921

by 오늘윤

처음부터 내 변명을 늘어놓자면

8월 말부터 너무 바빴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내가 별여 놓은 일들 때문에 허덕거리며 내 삶조차 제대로 감당할 수 없어 일주일에 한 번은 가되 월요일, 그다음 주 금요일에 가는 식의 텀이 길어졌다. 할 일은 많은데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아빠의 면회는 자꾸만 미뤄졌다. 내 마음속 우선순위에서 아빠의 면회는 어쩌면 꽤 뒷순위까지 밀려있었나 보다.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아빠의 상태가 정말 눈에 띄게 나빠지고 있다는 것

한 달 전까지 10미터가량 떨어진 화장실을 걸어가는데 전혀 무리가 없었지만

한 달이 지난 현재는 화장실에 가는 내내 다리가 후들거리고 중간에 잠시만 쉬어 가자는 소리가 나오신다.


총기도 많이 떨어지셨다.

아빠를 위해 갖다 놓고 하던 같은 색깔 자리 맞추기 게임을 하기 전

간식으로 견과류를 드리자 아빠는 전처럼 입에 넣기 바쁘지 않고

한참을 호두를 잡고 쳐다보고 계셨다.


"아빠 왜 안 드셔?"

"이거 같은 색깔 맞춰서 뽑는 거야?" 한참을 호두를 바라보다 나온 말이었다.

"아니 이건 아빠 좋아하는 견과류잖아. 호두호두, 땅콩이랑 이건 그냥 주전부리야 그냥 입 심심하니까 드셔"

그러고도 한참을 바라보며 혼란스러워하시다가 천천히 입에 넣으셨다.


다행히 보드게임을 하는 그 순간엔 아빠의 반짝이는 눈동자가 살아났지만

보드게임이 끝나자 아빠의 눈은 또 공허하듯 멍하게 바뀌었다.

아빠는 자꾸 꾸중을 들어서 주눅 들어버린 아이처럼 눈을 내리깔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텅 빈 눈을 하고 있었다.

내가 혼날 때 하던 모습과 행동인데 아빠도 여기서 내가 없는 사이에 많이 혼나고 있는 걸까?


사실 아빠가 계신 방에는 좋은 분들이지만 잔소리가 좀 많은 분들이 양 옆에 계신다.

한동안 누워서만 생활하시다가 요즘 운동으로 효과를 많이 보신 아빠보다 세 살 많으신 어르신은

특히 아빠를 안쓰러워하셔서 기력이 없어 말씀이 없으실 때도 내가 오면

"따님, 아버지가 밥을 빨리 드셔. 그러다 사레들리기도 하시고 천천히 드시라고 달래 봐요

따님, 아버지 계속 피부를 긁으셔. 노인 되면 많이 간지럽고 기저귀 차면 더 그래. 이거 우리 애들이 사다준건데 나 이거 바르니까 안 간지럽더라고 좀 듬뿍 발라드려요"

워커 보행기를 타시며 다리 힘이 많이 붙으신 어르신은 아빠가 운동하는 옆에서도 같이 운동하며 이래저래 훈수를 두셨는데 걱정하고 안타까운 마음에서 하시는 소리지만 분명 아빠는 저 소리가 잔소리로 들리겠구나 싶어.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요양보호사 아저씨는 상당히 김첨지 같은 분이다.

말을 툭툭 차갑게 내뱉으셔서 처음엔 이 방에 적응이 가능할지

좀 말이라도 따사로운 분이면 안되나 싶었다. 실제로 아빠를 대할 때 보면 약간의 호통이 매번 들어가 있다.

"거 참 엉덩이 들어봐요. 일어나 봐요. 팔에 힘을 주고 엉덩이를 들이밀고, 아이고 그렇게 안 움직이려고 해서 어떡하려고 그래 힘을 써요 힘을. 아유 아버지 운동 좀 하라고 워커 보행기 갖다 줘도 손도 안대~ 게을러 게을러"


처음엔 무서운 분이 아닐까 싶어서 걱정했었지만 케어나 챙겨주는 행동은 말과 달리 언제나 빠르고 단정하셨다.

특히 양쪽의 두 분이 안타까워하시는 사람이 다름 아닌 나인데 나 혼자 아등바등하는 모습이 안타까우신지 내가 뭐라도 혼자 할라치면 작은 것 하나라도 도와주겠다고 손을 내미신다.


두 분 다 너무 좋은 분들이지만 나는 안다.

아빠는 잔소리 많은 사람과 까칠한 사람을 싫어한다는 걸.

내 뜻대로 잘 안 따라 주는 아빠를 보고 그분들이 아빠를 향해 한두 마디 던지면

아빠의 눈동자가 공허해지고 눈은 밑으로 깔린다.. 어린애가 어른들에게 혼날 때 우물쭈물하듯이...

그래서 가끔 내 편드느라 거들어 주시는 한 마디들이 싫을 때가 있다.

한 호통하고, 한 성격 하던 아빠는 이제 옆자리 환자의 한마디에도

주눅이 드는 너무 약한 사람이 되어 버린 게 보이니까 그건 자식의 가슴이 갈갈 히 할퀴어지는 기분이다.


그렇지만 평소보다 더 힘없고 더 얼이 빠진 눈동자는 역시 신경이 쓰였다.

내가 너무 오랜만에 온 탓인가? 기력이 더 떨어져서인가? 생각할 때 아빠의 오른쪽 사선방향 빈 침대에 시선이 머물렀다. 내 시선을 눈치채신 걸까? 옆자리 할아버지께서 넌지시 저 침대 자리분은 어제 떠나셨단다.


"아빠, 어제 저 자리분 떠나는 걸 봤어? 그래서 좀 기분이 울적해?"

"아니 가는 거 못 봤어. 기억 안 나."


가만히 지켜보시던 옆자리 어르신이 한마디 툭 건네신다.

"이럴 땐 좋네, 기억 안 나는 게. 기억하지 말아요. 기억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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