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왜 맨날 도망가듯 가니?

250821

by 오늘윤

오랫만에 아빠와 함께 나가는 외래날

5월에 함께 외래를 보고 온 이후로 처음으로 병원복이 아닌 아빠의 낯익지만 어쩐지 낯선 옷을 입고 택시를 타고 6분거리의 병원을 찾았다. 날씨가 너무 덥고 습했기에 갑작스러운 기온 변화에 아빠가 너무 힘들지 않기를 바라며 병원을 찾았다.


다행히 병원에서의 진료는 큰 대기 없이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요즘 툭하면 몸에 피가 나도록 긁어대는 아빠 때문에 찾은 거였는데 특별한 이상이 없다고 하신다.

아니 피가 나도록 긁는데도요?


"나이가 들고 피부가 얇아지고 건조해지면 이유없이 간지럽기도 해요. 그리고 치매진단 받으셨죠? 치매 환자분들 중에 이렇게 이유없이 간지럽다며 피딱지까지 긁으며 뜯어내는 분들이 계세요. 치매 증상중에 몸을 긁는 증상도 있어요"


치매....

정말 뭐지? 매번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치매의 증상들

기분상으로는 사실 마땅한 이유가 없으면 치매 때문이야. 라고 모두 치매탓이라고 하는 느낌 마저 들만큼

치매의 증상은 너무 다양했고 성격도 다양했다.


병원 대기 시간을 힘들어하는 아빠를 위해 조곤조곤 나는 쉴새없이 떠들어댔다.

요즘 아빠와 나의 가장 화두 베란다 보수 공사와 샷시 공사에 대한 이야기로 열을 올렸다.

역시 아빠는 비용이 얼마나 들었냐는 질문을 또 반복해서 물어왔다.


"000만원이 들었어. "

"000만원, 그렇게나?"

"우리 집 구조가 이렇고 저렇고 하잖아. 그럼 그렇게 비싼건 아니야"

"음.....그렇지"


아빠는 쉽게 내 말에 동조해주었다.

아빠가 쓰러지시기 전엔 없던 일이었다.

쓰러지기 전의 아빠는 아빠와 대화를 시도하는 나를 귀찮아했고 짜증이 당장이라도 발사 될듯이 장전되어 있었고 내 말에 말꼬리를 잡고 문제 삼는 사람이었다. 난 아빠와의 대화를 꺼리게 되었고 어느새 우린 남보다 못한 부녀가 되어 있었다.


"아빠 샷시를 바꾸니까 차음도 잘 되고 좋아. 겨울에도 따듯할것 같아."

"그걸 다 치우려면 니가 고생을 많이 했겠다. 내가 있었으면 또 싸우기나 하지. 너 혼자 잘 했다."

"맞아. 아빠는 분명 이것도 버리지마라 저것도 버리지마라 모든걸 다 싸짊어 지고 가려고 했을거고

난 또 갖다 버렸을거고 그럼 우린 싸움이 났을거야."

"물건을 버리면 꼭 다음에 찾게 되. 그거 다시 사려면 다 돈이야"

"아빠 생각보다 다시 찾게 되는거 많지 않아. 그리고 없어도 살 수 있는 것들이야."

"인생이 그냥도 무거운데 짐까지 무겁게 이고 지고 살지 말자고"

"그래, 니 말이 맞다."


피부과에 이어 정신과

아버지의 치매 상태에 대해 별다른 말씀은 없으셨다

좀 변화가 있었는지 상태가 어떠신지

그리고 지금 처방 해드리는 약이 나을 수 있는 약이 아니라

병의 속도를 늦추는 약일뿐이라는걸 다시 한번 각인 시키셨다.


아빠는 본인의 얘기 중이었지만 공허한 눈빛으로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요즘 몸이 너무 가렵다는 이야길 뜬금없이 꺼냈다.

그래...천천히 천천히만 진행된다면 더 큰 욕심 뭘 부리겠는가


선생님께서는 내 지난 악몽이라도 읽으신건지

"지금 계신 병원에서 처치를 잘해주고 계신것 같아요.

상태가 아주 좋으세요. 오ㅇㅇ님, 컨디션이나 여러 수치가 안정적이세요."


그 말에 용기를 얻어

"선생님 아빠가 제가 면회 갔다가 집에 가려고만 하면 같이 집에 가자고 우기세요. 저녁에 집에서 잠만 자게 해달라고 하시는데 혹시 이게 무슨 사인인데 제가 못알아 듣는건 아닌지 불안해요."


"보호자분, 다른 거 생각 없이 오로지 식사, 생활, 컨디션 조절, 운동 모든면을 두고 비교해봤을때 보호자분이 병원보다 훨씬 좋은 케어를 할 수 있는지 비교해서 판단하세요. 월등히 나으시다면 집에 모시고 가는거 반대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부족하다면 그냥 지금 병원을 믿고 맡기세요. 아무래도 아버님 밤에 잠을 잘 못주무시는것 같으니까 잘 주무실 수 있는 약을 함께 처방해드릴게요."


외래진료를 마치고 병원으로 돌아가니 어느덧 저녁시간 재빨리 아빠 옷을 갈아입히고

식사준비 상태로 만들어드린 뒤 이제 나는 가보겠다며 아빠에게 작별인사를 건냈다.


"밥 먹고 가"

"나 들어가서 일 해야해. 일하는 시간에 나와서 아빠랑 병원 다녀왔잖아. 업체 퇴근하기 전에 얼른 가서 보내줘야해"

"그럼 나도 같이 집에 가자"

"아빠, 집에 가도 밥도 없고 아빠 더 힘들어. 가긴 어딜 가셔. 억지 부리시지마"

한껏 떼를 쓰던 아빠는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지르며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너는 왜 맨날 와서 도망갈 생각만 하냐고 앉아서 좀 조근조근 얘기도하고 그러고 가면 좋잖아. 왜 오면 도망갈 궁리부터해?"

"아니, 아빠 나 오면 한시간 반씩은 꼬박꼬박 아빠옆에 있다가 가는데 도망을 가다니 누가 도망을 가. 병원에서 조근조근 얘기 많이 했잖아. 아빠 지금 떼를 쓴다고 될 문제가 아니라 나 진짜 일이 급해"

"이럴거면 오지마(버럭) 누구 약올려? 와서 이런식으로 있다 갈거면 오지마!!!!!!!"



나랑 한마디 이상 나누길 꺼려하던 그 아빠는

이제 나와 단 1분이라도 더 붙어있고 싶어 안달이난 아빠로 바뀌어버렸다.

뭐가 더 좋은걸까?

난 그냥 둘 다 도망가고 싶은것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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