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노잼시기 탈출

뭐라도, 해보면, 뭐라도, 되겠지

by 오융

나는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차피 다시 내려올 거 왜 올라가야하는 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런 나지만 몇 년에 한 번쯤은 등산에 대한 욕구가 생기곤 한다. 2014년 여름이 그랬고, 2017년. 바로 지금이 그렇다.

머릿 속에 아른아른 산이 떠오른다.

See You Again, 그때는 저 말이 와닿지 않았었다.


3년 전의 나는 23살, 대학교 4학년이자 취업준비생이었다.


학생으로서 맞이하는 마지막 방학을 앞두고 무언가라도 해보고 싶었다. 무언가를 찾아야 할 것만 같았다.

유치원, 초등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23년동안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었던 소속원으로서의 정체성을 이제는 더이상 유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학교라는 울타리를 떠나 스스로를 책임지는 사회인이 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학생과 사회인이라는 경계선 그 어딘가에 놓인 모호함을 나는 견딜 수 없었던 것 같다.

내 인생 최초의 자발적 등산은 그렇게 불안감과 두려움, 모호함으로 가득 쌓인 감정으로 시작됐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해보면, 새로운 도전을 해보면, 낯선 곳에서 경험을 쌓으면, 나는 조금 더 나를 잘 알게 될 거라고, 내 삶은 조금 더 멋있어 질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무작정 떠났다. 떠남에 대한 로망, 막연한 동경과 같은 감정과 함께.



내 인생의 첫 설 산. 안나푸르나


어느덧 약 3주간의 여행이 끝났다. 하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영화 속에서만, TV 속에서만 보던 설산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왔다는 신기함 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었다. 나는 여전히 나였다.

나는 여전히 미래가 불안했고 두려웠고 그런 모호한 상태를 견뎌내는 것이 어려웠다. 하지만 하루에도 기분이 열두번은 오락가락하는 약 3달간의 취준생활을 거쳐 어찌어찌 지금 회사에 입사하게 됐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다는 그럴듯한 핑계로 불안함과 모호함은 잠시 생각 속에서 미뤄뒀다.


그렇게 3년이 지났다.


제법 회사와 업무에 적응하고, 일정한 삶의 패턴을 유지하다보니 인생의 노잼시기를 맞이하게 됐다.

익숙함과 반복이 주는 무료함이 이런걸까.

정말 말 그대로. 노.잼.

어떤 일에도 흥미가 생기지 않고, 이렇게 사는게 답일까 고민이 되고, 집중력은 제로인데, 그렇다고 딱히 하고 싶은 일은 없는. 말 그대로 이러지도 못하는데 저러지도 못하는 그런 상황.

무작정 퇴사하고 여행을 가라는 얘기를 듣기도 했지만 여행만이 답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낯선 곳으로의 떠남이 주는 설렘은 잠시 뿐. 여행하는 삶이 익숙해지면 어느새 익숙해진 나는 또 새로운 자극을 찾을 테니까. 그리고 여행의 가치는, 평소에 최선을 다해서 했을때 더 빛날 수 있는거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어영부영 시간이 흘러간지 어느덧 4달이다. 4달 이라는 시간동안 시험을 봤고, 새로운 시도를 했으며,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고견을 얻고자 일주일에 세 권씩은 책을 읽고, 브런치를 들락날락거리며 글을 읽고, 사진을 꺼내보며 지나간 순간들을 추억했다.


동물 보행이 우선인 곳.


그러다 3년전 네팔 여행 사진을 보게 된거다. 내려오는 길에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ABC)의 높이인 4,130m보다 높은 산이 아니면 가지 않겠다고 호기롭게 말했는데, 네팔보다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꽤나 신비로운 볼거리가 많으면서, 4,500m가 넘는 산을 알게 됐다. 중국 운남성에 자리잡은 옥룡설산(玉龍雪山) !

그러고 나니 얼른 이 산을 직접 내 눈으로 보고싶다. 정말 오랜만에 가고싶은 여행지가 생겼다. 주변 사람들은 너 또 왜 그러냐며 고개를 저었지만, 아마도 어떤 패턴이 익숙해지는 3년이 되면 몸이 근질근질 거리는 나의 습성인 것 같다. 물론 다녀온다고 해서 달라질 게 없다는 건 안다. 나는 여전히 내 삶을 살아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굽이굽이 이어지는 길을 따라 그저 걷는 것.

인생이란 어쩌면 그런 것이라고.

나만의 길을 나만의 속도로 가는 것이라고.

길을 걸으면서 만나는 순간순간의 행복한 기억들로

오르막길을, 힘든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이라고.


어쩐지 내가 조금은 무미건조한 것 같을 때,

삶을 조금 더 충실하게 느끼고 싶어서 산을 찾게되는지도 모르겠다.

현재를 넘어서려는 나름의 시도.


옥룡설산
옥룡설산에 가면, 새벽에 꼭 별을 구경할테다
어떤 시도도 실패로만 마무리되는 법은 없습니다. 그 시도 자체가 이미 성공을 부르기 때문입니다. 설령 그것이 실패라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 무엇인가를 시도하는 동력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이 경험된 동력은 실패의 암울한 풍경 속에서도 꿈꾸는 자들을 더 심층적이고 새로운 곳으로 인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꿈을 꾸지 않는 일입니다. 시도하지 않는 일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를 넘어서려는 그 어떤 시도라도 감행해야만 합니다.
- 탁월한 사유의 시선 中


그래서 3년차 직장인으로서 삶을 고민하고 있는 나는

조만간 운남성으로 트레킹을 떠날 참이다.

그동안 갈고 닦아온(?) 중국어 실력을 여기에서 펼쳐 보아야겠다.


2017.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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