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된다는 것

스물여섯 번째 어버이 날에

by 오융

어버이 날에, 어버이 날을 생각해본다.


십 년 하고도 십 년을 더한, 무려 이십 년 전쯤.

매년 어버이 날이 오면 꼬물대는 손으로 열심히 카네이션을 만들던 기억이 난다.

잘 만들지도 못하고, 왜 만드는지도 몰랐지만

어버이 날 당일 아침

고사리 손으로 겨우겨우 만든 종이 카네이션을 달아드렸을 때 부모님의 얼굴에서 피어오르던 그 미소,

그리고 미소와 함께 고맙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는 그 따뜻함이 마냥 좋았다.

내가 엄마 아빠를 행복하게 했구나 - 하는 뿌듯함.


그렇게 연례행사처럼 계속되던 '카네이션 만들기'는

아마도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사라져 버렸고

그때부터는 친구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면서 어떤 선물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됐다.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최고의 만족을 낼 수 있도록)


그리고 오늘이 왔다.

스물여섯 번째 어버이 날.


지금까지 한 번도 닿아보지 못한 생각,

'자식이 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님의 자식이었지만

나는 이제서야 조금씩 자식이라는 존재가 되는 것 같다.


'나에게 늘 내어주시는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고,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 무척 서툴 것이라는 것.'
'늘 든든한 우산 같은 부모님이지만, 똑같이 상처받는 한 사람이라는 것.'
'꿈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 한 개인이라는 것.'
'지금까지 그것들을 내려놓고 살아왔다는 것.'

그런 것들을 들여다보고, 이해해보고자 한다.


우리는 그렇게 가족이 됐다.

나보다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었을 '엄마'와

나와 비슷한 나이에 가장이 되어서 늘 가족이 먼저였을 '아빠'


이제는 제발 본인들만 생각하라고 아무리 말 해도

결코 자식들이 먼저일 부모님.


나는 이제야 자식이라는 존재가 되어서

무조건 내 편이고 무조건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존재,

'부모'라는 단어 그 너머의 한 '개인'을 바라보고자 한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모인 사람은 없다.

부모란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되어지는 존재라 했으니

자식 역시 되어지는 존재일 것이다.


나는 이제야,

스물여섯 살이 된 이제야 겨우,

부모님의 자식이 되고 있는 것 같다.


2017.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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