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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융 Mar 16. 2018

취업은 끝이 아니다

욕망과 권태 사이의 시계추

익숙한 곳을 벗어나는 것은 두렵다.
하지만 안전지대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도 모르고 있던 숨은 근육을 키워야 한다.
커다란 변화에 부딪힐 때, 그리고 새로운 역할을 맡았을 때 가장 많이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 다라 코스로샤히 우버 CEO



욕망과 권태 사이의 시계추


익숙함과 반복에서 비롯되는 지루함. 인생은 욕망과 권태 사이의 시계추와 같다는 그 말을 뼈저리게 느낀 몇 달이었다. '이대로 천천히 끓는 물속에서 죽는 개구리가 되면 어쩌나' 걱정되기 시작했고 익숙한 곳을 벗어나기 위한 시도를 했다. 용기를 내 문을 두드렸고, 감사하게도 문이 열렸으나, 나는 그 문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현재 발 딛고 있는 이 곳에서 머무르기로 '선택'했다.


스물넷에 직장 생활을 시작했는데 어느새 스물일곱이다. 넷, 다섯, 여섯, 일곱. 어느덧 4년 차 직장인.  

지금까지 ①내가 했던 일들을 돌이켜보고 ②나의 업무역량과 장단점을 고민해보고 ③앞으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살펴보고, ④무엇을 더 배워서 실력을 쌓을지, 내 업(業)과 커리어 패스에 대해 심사숙고하는 좋은 시간이었다.(물론 고민은 아직 -ing 단계다)


이런 과정 덕분에 스스로를 잘 돌아볼 수 있었다. 가장 큰 발견은 나는 쉽게 지루함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것이며, 뛰쳐나가야겠다고 외치는 기간은 주로 3년이라는 것. 회사에서 느꼈던 이 지루함은 대학생 때 왔던 사망년 병과 유사한 패턴이라는 것.

사망년병
대학교 3학년이 겪는 병. 대학 생활도 슬슬 적응됐겠다, 새로운 자극도 덜하겠다, 세상만사 재미없다 생각하며 인생의 의미를 갈구하는 증상을 보인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런 고민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엇인가 조금이나마 달라지기 위해 몸부림치겠지. 모르던 내 모습을 알게 된 건 꽤나 고무적인 성과다.


그냥 막연히 지금 발 딛고 있는 '여기'를 떠나고 싶던 마음에서 떨어져 객관적인 시선에서 바라봤다. 나는 어떤 가치를 중요시하는 사람인지, 어떤 이유에서 지금의 회사를 선택했는지, 어떤 이유에서 불만을 느낀 건지 등. 그렇게 하나하나 정리하다 보니 알게 됐다. '여기'가 아닌 '저기'를 선택하면 무언가 다른 게 있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와 현실 도피 + 지루함 탈피 +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한 동경이 컸다는 걸.


2017. 제주


선택의 기준, '나'


재밌는 점은 지난날의 기록을 돌이켜보다 발견한 문장이다.


이미 프로세스가 갖춰진 대기업이 아니라, 꼭 필요한 기업이지만 알려지지 않은 강소기업에 입사해 브랜드 구축 및 홍보를 담당하고 싶습니다. 세상에 꼭 필요한 기업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렇다. 나는 내가 원하던 곳에서 일을 시작했다. 왜 그 사실을 잊어버린 걸까. 분명 취업을 결정할 당시의 나는 나름의 기준과 목표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익숙한 공간에서의 일상이 반복되면서 이 기준은 이런저런 불만에 가려지고 말았다. 인간은 참 간사한 존재다.

 

길지 않은 인생이지만 돌이켜보면 늘 시작과 마무리가 있었다. 입학-졸업, 중간고사-방학, 기말고사-방학, 이렇게 하나의 뜀틀을 넘으면 다른 뜀틀이 있었고, 그 뜀틀을 넘으면 또 다른 뜀틀이 나왔다. 그런 과정의 연속이었다. 하나를 지나, 또 다른 하나를 넘고, 다른 하나의 목표를 넘으면, 또 다른 목표가 나오는.


'취업' 역시 내가 넘어야 할 뜀틀 중 하나였다. 하지만 다른 뜀틀과의 차이는 마무리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 난생처음 겪어보는 마무리 없는 뜀틀은 나를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취업만 하면 모든 게 끝인 줄 알았던,
그때의 내가 너무 안타까워요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계열사 주임님이 말했다. 취업만 하면 더 이상의 어려움은 없을 줄 알았는데, 세상은 여전히 선택할 것 투성이라고. 그래서 그분은 곧 퇴사를 하신다 했다. 옮길 곳을 찾은 건 아니지만, 우선 퇴사 후 생각해보고 싶다 했다. 나는 그만두는 용기를 응원한다 말했다. 우리는 저마다의 기준으로 선택하며 삶을 만들어 가니까.


시대가 변했습니다. 높은 급여와 안정만을 바랄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그 일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내가 그 일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분명하게 인식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
오늘날처럼 불확실한 시대일수록 일을 그저 생계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내 삶의 방식을 만드는 어떤 것'으로 받아들일 기회가 늘어날 것입니다. 일에 임할 때 내가 왜 일을 하는지, 이 일을 통해 나는 어떻게 변화하고 싶은지, 또 사회를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매일매일 원점으로 돌아가 진지하게 질문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中


까라면 까야 한다고요


취업은 끝이 아니다


공채 시즌이 시작되니 종종 후배들이 자소서를 보내온다. 취업준비생일 때는 보이지 않던 포인트가 눈에 들어온다. 직무 역량이 왜 중요한지, 왜 나의 모든 활동을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 능력과 연관 지어야 하는지, 입사 후 포부나 커리어 패스를 고민하는 것이 왜 필요한지. 회사는 학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회사는 성과를 내야 하는 곳, 까라면 까야하는 곳이다. 그동안 어떤 개성을 갖고 살아왔고 어떤 능력을 쌓아왔든 상관없이 회사는 회사가 원하는/필요한 곳에 나를 배치한다. 그리고 나는 회사의 필요에 의해 (시키는 대로) 일을 해야 한다. 신입사원들이 가장 괴리를 느끼는 부분이 이 부분이 아닐까 싶다. 입사한 순간 정말 나다운 '나'는 없어야 한다. 나는 그저 회사가 원하는 성과를 내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므로. 회사가 원하는 '나'로 지내야 한달까.


또래보다 일찍 취업하다 보니 회사생활 연차별 마음가짐의 변화를 보게 된다. 재밌는 일이다. 지나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라는 선배들의 위로에 그런 일 없을 것 같다며 분개했었는데, 어느덧 나는 괜찮아져 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 이해가지 않는 일. 때때로 꽂히는 날카로운 말. 웬만한 '욱'하는 감정은 5분 내로 가라앉힐 수 있다. 그래서 이제는 연차별로 다른 고민을 풀어놓는 친구들에게 말한다. 토닥토닥. 그래, 다 그런 때가 있지.


  입사 1년 차  

처음 시작하는 사회생활에 그저 들떠있다. 어려운 취업난을 뚫고 사회인으로 거듭난 스스로가 자랑스럽다. 회사에서는 무슨 일을 해도 예쁨 받는 시기다. 인사 잘하고, 질문 잘 하고, 꼼꼼히 메모하기만 해도 칭찬받을 수 있다. 거기에 매달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은 또 얼마나 좋던지. 사고 싶은 걸 사고, 먹고 싶은 걸 먹고, 또 소중한 사람들에게 무언가 해줄 수 있다는 보람.


하지만 그만큼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대부분의 경우 내가 주체적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은 맡겨지지 않는다. 동시에 발생하는 무력감. 이러려고 대학 나왔나 자괴감이 든다.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면 하지 말아야 하는 시기로 어떤 판단과 결정을 내릴 수 없다.


  입사 2년 차  

이제 적당히 익숙한 것 같지만 아직 미숙하다. 벌써 1년이 지났다니 신기하고, 새로 들어오는 신입사원을 보면서 추억에 잠긴다. 이제 선배 입장이 됐으니 더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한편, 신입사원이라는 꼬리표를 뗄 생각을 하면 내심 아쉽다. 신입사원에 대해 관심이 많다.


내 이름으로 프로젝트를 한다니 설렌다. 이 정도면 많이 배운 것 같은데 종종 실수를 한다. 갑작스레 변경되는 일들에 잠시 멘붕을 겪는다. 정지상태에 있을 때 막힘없이 척척 해결하는 선배를 보며, 아직 더 배워야겠다는 투지에 불타오른다. 일이 점점 쌓여간다. 하지만 그럭저럭 다닐만하다. 이 정도면 괜찮은 것 같다.


  입사 3년 차  

스스로 연간/월간/주간/일간 업무를 그려볼 수 있다. 나름 중견사원이라는 자신감. 사회인으로서 적당히 세련미를 갖춘 것 같다.


분명 내 업무가 아니었던 업무가 자꾸 많아진다. 새로운(하지만 귀찮은) 일이 계속 쌓인다. 이 사람한테 이런 모습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게 된다. 그 속에서 실망하기도 하고 힘을 얻기도 한다.

귀찮음이 커진다. 매사가 귀찮다. 가끔 일이 재밌는 듯 하지만 잠시뿐이다. 어제도 오늘도 똑같은 사람. 내일도 모레도 비슷한 풍경이 계속되겠지. 그래서 외친다. 퇴사 가즈아


  입사 4년 차  

아직 겪어내는 중이라 모름...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놀자.


어찌 됐든 고민은 계속된다. 그래서 취업은 끝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


나는 여전히 이 자리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를 시도한 경험은 그 자체로 뜻깊었다. 비록 상황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 상황을 바라보는 내 관점이 변했기 때문이다. 의욕 없고 무기력하던 겨울을 극복하고 다시 한번 시작해보려 한다.


회사는 종착역이 아닙니다. 정류장이고, 계약관계로 맺어진 곳입니다. 그래서 내 역할과 몫을 다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잘 챙겨야 하는 것도 필요하지요. 지극히 이기적이 되셔야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직장인 인생에서 지금의 기회와 모습이 어떤 것으로 보여지고 활용될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책 이름 기억 안나는데 어느 책에서 발췌)


앞으로도 나는 내 기준에 맞춰 맞춤형 업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안전지대를 벗어나기 위해 행동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를 회피하려 행동하지 않고, 정말 더 나은 스스로를 위해 행동할 것이다.


무슨 길이 펼쳐질지 모른다. 어떤 일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잘 될 거다.

(뭐든지 잘 되리라는 긍정은 봄이 와서 신난 봄 생일자의 패기일지도 모르지만)


끝으로,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다시 한번 꼰대 5계명을 기록하고자 한다. (출처 : tvN 어쩌다 어른)



2018.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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