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에서 마주친 우연은?
여름 유럽여행에서 베니스에서 여행 일정을 마무리하고 야간열차를 타고 오스트리아 빈까지 이동한 날이었다.
큰돈을 내고 3인실 슬리퍼 좌석을 구매했는데, 남은 두 명이 열차에 타지 않아서 3인실을 혼자서 썼다.
마침 몸이 안 좋은 터라 간단하게 씻고 약을 먹고 일찍 잠들었다.
다음날 오전 일찍 빈에 내려서 숙소까지 20분 정도를 걸어서 도착했다.
숙소 체크인 시간은 오후 두 시 이후여서 짐을 맡기고 밖으로 나왔다.
잠을 자긴 했지만, 흔들리는 열차에서 비좁게 잤기 때문인지 피로는 컸다.
산책 삼아 벨베데레 궁전에 가서 너무 피곤한 나머지 정원의 벤치에 앉아서 멍을 때리고 있었다.
벤치에 앉은 지 오분도 안되어서 카톡이 울렸다.
여행 첫날 비행기에 내려서 공항에서 파리 시내까지 가는 길을 헤매다가 도움을 주신 분의 카톡이었다.
(심지어 같은 비행기를 타고 왔다)
지금 빈에 있어요?
…?
당황해서 무슨 말이지? 이러고 있었는데, 저 멀리서 손을 흔들면서 걸어오고 계셨다.
진짜 세상 좁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건가 싶었다.
말 그대로 ‘세상’이 너무 좁다.
일정이 겹치는 줄도 몰랐는데, 일정의 변경이 생기셔서 정말 우연히 겹치게 된 거였다.
지쳐있는 상황에서 마주친 ‘우연’이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 분과 함께 점심을 먹고, 프라터에 가서 벤치에 앉아 낮잠을 잤다.
그분은 저녁에 다른 곳으로 넘어가는 일정이라 오후에 헤어졌다.
그 후로는 한 번도 만난 적 없고, 몇 년간 인스타그램 사진만 보며 소식을 알고 지내지만, 다시 만난다면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연의 힘이 큰 것 같다.
우연히 만나지 못했다면 함께 한 시간이라곤 고작, 여행 첫날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버스에서와 저녁을 먹은 시간뿐이었을 것이다.
우연히 만나서 반나절 함께 시간을 보낸 것뿐이지만, 오랜만에 만나게 되면 대화의 시작은 눈에 훤히 보인다.
여행에서 마주친 우연이 있나요?
꼭 사람이 아니더라도,
우연히 본 한글 낙서,
우연히 마주친 한식당,
우연히 마주친 케이팝,
…
우연이 주는 힘을 믿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