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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동 Oct 22. 2016

어둠이 남아 있어서


 새벽이다. 어둠이 남아 있으니 술 생각이 난다. 어떤 날은 전날의 술이 다음 날의 불쾌감이 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아쉬움이 되기도 한다. 오늘은 아쉬움 쪽. 커피를 끓이고 아침 담배를 찾았다. 라이터만 놓여 있는 책상 위에 담배가 없다. 잠깐 당혹스럽다. 당혹에 이어서 내가 이렇게 담배에 사로잡혀있구나 하는 생각. 


다행히 담배를 찾았다. 스캐너와 모니터 사이에 끼어 있다. 한 개비를 피우면서 몸이 이렇게 중독되어 있다면 내가 내 의지대로 나를 제어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들기도 하고 "흡연은 천천히 자살하는 방법"이란 소설가의 그럴싸한 말로 위로를 하기도 한다. 죽음은 평안한 것이지만 죽음에 이르는 병의 고통은 경험하고 싶지 않다. 사노 요코의 에세이에서 그녀가 말년에 암으로 고통받는 경험을 묘사한 구절이 있다. 심장을 꺼내 시멘트 바닥에 긁으며 걷는 것 같다는 표현. 그녀는 투병 중에도 골초였다고 했지.


어제는 아무 일도 못했다. 카페에서 뭐 좀 해보겠다고 집을 나갔지만 의자는 딱딱하고 책상의 높이가 높아서 어깨가 아팠다. 카페를 설계한 이가 교묘하게 높이 조정을 한 것이라 생각했다.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 전에 A4에 낙서를 했다. 낙서만 하다가 의욕을 잃었다. 주변은 어수선하고 아무런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았다. 샌드위치 같은 음식을 쩝쩝대는 소리, 의자를 당기고, 앉고, 노트북을 꺼내는 기척, 무슨 소리인가 대화를 나누는 웅웅 거리는 소리들. 소리와 소리들. 창 밖에는 흰색 bmw가 정차하고 몸을 휘감아 가슴을 드러내는 부드러운 회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내렸다. 담배를 피우던 사내들의 눈이 여자를 따라갔다. 흰색 피아트가 섰다. 여자가 내려서 커피를 산 뒤 차를 몰고 떠나갔다. 흰색 산타페가 섰다. 밝은 표정과 밝은 옷차림의 여자와 남자가 내렸다. 둘은 동료처럼 보였다. 웃는 여자의 얼굴이 인상적이다. 세상의 온갖 밝음만을 똘똘 말아서 만들어 놓은 듯한 느낌이다. 


사람들은 커피를 왜 살까? 나 역시 커피 중독자에 알콜릭에 냄새나는 흡연가이지만 가끔 셋 중 마지막까지 남을 건 커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술은 주정이 아니어도 실수를 할 때가 있다. 그 파장이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어서 즐기면서도 경계해야 할 것이고, 담배는 그냥 그런 것이고, 커피는 가장 오래 즐길만하다. 향이 깊고, 마시면서 정신을 차릴 수 있고 위험을 내포하지도 않았고 건강을 크게 해칠 염려도 적다. 이빨이 검게 착색되는 것 외에는 몸을 망치는 일이 없다고 봐도 되겠지. 커피가 하나의 기호가 된 것이 한 10여 년 됐을까? 넘었나? 도시의 세련된 직장인이거나 도시인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정착된 후 모두 커피에 중독된 것 같다. 검은 물이 사람들을 홀린 것이지. 콜라와 커피를 같이 따라 두고 색만 보고 있으면 구분하기 어렵다. 커피도 검고 콜라도 검고. 요새는 커피 + 빵이 대세인 듯. 따위의 잡생각들이 끊어지지 않는다. 



나도 안다. 내 의지와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진 탓이지 주변의 탓이 아니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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