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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동 Jul 08. 2015

비 온다

 

 아무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리고 비가 온다. 등이 축축하다. 실내에서 석고를 붙이고 있다. 집을 만드는 과정은 크게 골조를 세우고, 외장재를 붙이고 단열을 한 후 실내에 석고를 붙이면 대략 끝이 난다. 이후의 과정은 인테리어다. 벽지라든가 페인트 칠을 한다든가 하는 과정이다. 세 명이 한 조가 되어 움직이고 있다. 비는 하염없이 내리고 천창에서는 비가 샌다. 팀장은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점심을 먹은 후 돌아오는 길에는 분홍꽃이 바람에 밀려 흔들리고 있었다. 까닭을 모르는 바람이 불고 나는 말이 없었다. 비빔밥을 먹고 이빨을 닦았다. 자판기 커피를 한 잔 마셨다. 날이 추우니 따뜻한 것이 생각났다. 석고를 붙이다가 내리는 비 맞으며 담배를 피웠다. 담배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시바 쇠 파이프 사이로 내가 짓고 있는 집이 보인다. 아시바를 보다가 인간이란 나약하고 비루한 동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라기보다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걸리적 거리는 돌을 치우거나 쌓인 쓰레기 더미를 옮기다가 지네를 봤다. 지네는 어둡고 칙칙한 땅에 숨어 있었다. 붉은 다리로 꿈틀대며 기어간다. 지네는 자신을 내려다 보는 인간의 시점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무 위를 기어 다니는 개미도 자신보다 큰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나 역시 나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 노가다 판이 그렇다. 땀 흘리며 일하는 신성한 노동이라거나 장인 정신으로 짓는다는 말은 소문으로만 들었다. 노가다는 그냥 노가다일 뿐.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이 바닥에는 어떤 비참함이 깔려 있다. 노동의 힘듦 보다는 마음의 그것이 그런 느낌을 들게 한다. 그렇게 일하면 재미가 없다고 K가 돌아오는 차 안에서 말했다. 속으로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뭐든지 아는 척을 하는 사람이 있다. 그의 앎은 단순한 정보의 나열이다. 그나마도 정확하지 않다. 그는 이 팀에서 가장 나이가 많다. 그의 잡지식을 듣기 싫다. 짜증이 난다. 뭐든지 자기 기준으로 자기의 아는 범위에서만 타인을 이해하려는 사람도 있다. 상상력이 제로인 사람 같다. 그의 정확함과 꼼꼼함도 짜증이 난다. 팀장은 말이 별로 없다. 가끔 뱉는 말도 퉁명스럽다. 농담도 없고 잘 웃지도 않는다. 그것도 짜증이다. 어쩌면 나는 나 자신에게 짜증을 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침에는 현장에 도착해 잠시 차에서 기다렸다. 팀장이 열쇠를 갖고 있기에 그가 도착하길 기다렸다. 십 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모두들 말이 없었다. 나도 눈을 감고 6인승 봉고차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조용한 차 안에서 다섯 명의 중년 사내는 각자의 꿈을 꾸었다. 그 짧은 졸음과 침묵 사이로 서로가 낯설고 어색한 사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는 동료인가? 우리는 왜 여기서 이러고 있나? 돈 벌자고 모인 사람들이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별 관심이 없다. 이 현장이 끝나면 다음에는 어찌될지 모른다. 언제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






두 집의 다락에 석고를 붙이는 작업을  마무리했다. 자투리 일 몇 개 남기고 거의 다 했다. 나와 다른 두 명이 같이 했다. 오늘 나사 못을 몇 개나 박았을까? 못 박고 못 박고 못 박는 일을 종일 반복했다. 눅눅한 공기와 답답한 습기가 사람을 지치게 했다. 오늘은 일 하기 싫은 날이었다. K가 비 오는 날은 "오프가 진리야" 라고 말했다. 그도 일하기 싫은 것이다. 일을 하다 보면 공간의 생김새에 따라서 바닥을 기어야 할 때가 있다. 머리를 숙이고 앉은뱅이 자세로 못을 박는다. 내가 구겨지는 기분이다. 






석고를 다 붙였다는 말을 들은 팀장이 고기를 먹자고 했다. 힘든 과정이 끝났으니 한숨 돌리자는 의미다. 먼지도 많이 마셨으니 고기로 목구멍 씻어 내자는 것이지. 이제 며칠만 지나면 나는 돌아간다. 오겹살과 목살을 먹다가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건너편 건물 처마 밑에 제비집이 보였다. 새끼 세 마리가 서로 몸을 비벼대고 있었다. 어미는 보이지 않았다. 집은 별 일 없는 하루였다고 했다. 






소주를 마셨다. 취기가 돈 몇 명은 식당을 나와 맥주를 마셨다. K가 울던 밤의 놀이터였다. 앞으로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니 내일 모레 소주나 한 잔 하자고 K가 말했다. 뜨내기 생활이다. 헤어지기 전에 인사나 하자. 

그 정도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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