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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동 Jul 12. 2015

동네

 집으로 돌아왔다. 집은 무사하고 가족들도 편안하다. 다리에 문제가 있어서 치료를 받았다. 나이 들면서 나도 모르게 생긴 증상이 불편했는데 간단한 시술로 치료했다. 현대의학이란 참 편하구나. 사람의 몸이란 참 불편하구나. 나무처럼 고통 없이 가만히 선 채로 살다가 조용히 말라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료 후에 30분 정도 산책을 하라고 했다. 걸었다. 부모님이 살던 동네이자 내가 자란 동네를 천천히 걸었다. 고양이 한 마리가 걸어간다. 몸집은 작아도 영락없이 호랑이나 사자의 걸음걸이다. 같은 과니까 그렇겠지. 


시끄럽다. 차소리, 차소리, 사람들 숨소리, 주변의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로 부딪히고 울리는 발생지를 모르는 소리들이 시끄럽다. 제주의 맑은 공기와 조용한 풍경이 생각났다. 내가 자란 골목이 보였다. 길을 건너려고 두리번 거렸다. 무심코 건너려다 멈칫했다. 신호등이 새로 생겼다. 





중고딩 시절 시간을 죽이던 만화가게는 사라졌다. 그곳에서 이현세와 허영만과 하승남과 신일숙 등의 만화를 섭렵했었다. '북해의 별'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눈물이 났었다. 그 눈물이 왜 나오는지 까닭도 모르면서 마지막 컷을 마음에 담았었다. 간판이 요란하다. 기억하고 있던 골목이 아니다. 간판이 집을 삼킨 모양새다. 다들 먹고 살기 팍팍한가 보다. 이런 주택가에 덕지덕지 간판을 매달고 사람들을 끌어들이려는 것이라 생각했다.


부모님은 이 골목에서 당신들 생애의 절반을 넘게 살았다. 중년의 시작과 끝과 노년의 시작을 살았다. 확연히 노인이 된 지금은 인근의 아파트로 옮겨 살고 있다. 골목마다 아는 가게들이 있고 같이 늙어가는 동네 사람들이 있다. 




 

한때는 바람이 난 남편을 기다리며 생계를 꾸려가려고 이 골목에 만화책과 비디오 대여점을 연 사람도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내 학교 후배였다. 사랑이 결혼으로 매듭을 짓고 나면 이후의 삶은 팍팍해진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어도 어떤 사람들은 겪는 과정인 것 같다. 살기 위해 살아가고 살아가기 위해 일하는 날들이 쌓여 자신의 얼굴이 된다. 매일 이 골목을 지나다닐  때마다 느꼈던 불편한 마음이 그런 현실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중국집은 여전히 성업 중이다. 십여 년 전에도 그 집은 제법 장사가 됐었다. 강단 있어 보이던 중국집 사장은 오래도록 살아남았구나. 





촘촘하게 얽힌 골목 길에는 시장이 있다. 오래된 시장이다. 센과 치히로의 모험에 나오는 신들의 상점이 늘어선 거리처럼 꼬리 한 냄새가 배어 있는 곳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밥상을 채우는 것들이 많다. 아주 오래전에는 흙길이었다. 비 내리는 날이면 진창이 되었고 저 좁은 길로 택시가 지나다녔었다. 그때의 고딩은 이제 중년을 얼만 안 남긴 아저씨가 되었다. 배는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주름이 늘었다. 예체능반 고등학생은 노가다가 되었다. 골목은 여전히 붐빈다. 사람들의 밀도가 높아서인가 장사가 되나 보다. 





조금만 변했고 대부분은 낡았다. 마치 천천히 늙어가는 사람의 얼굴 같다. 온통 아파트 단지로 밀어버리던 시절을 비껴갔다. 어쩌면 다행이다.  이 골목에서 자전거도 도둑맞고 몇 번 술 취한 놈들과 실랑이도 있었다. 그 놈들은 다 뭐하고 사나. 비좁은 곳에 빡빡하게 붙어사니 사소한 일에도 시비가 붙었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서로 미워하기도 하고 친구도 먹고 연애도 하는 그런 곳이지. 그런 시간들이 매일 쌓이는 곳이지.




 

건물은 낡아가고 사람들은 늙어간다. 간판은 새것으로 바뀌고 술집에는 젊은이들이 앉아있다. 길가의 벤치에는 노인들이 많이 보인다. 커피집도 많이 생겼다. 뭐하는 곳일까? 이런 동네는. 골목마다 박혀있는 저마다의 얘기들. 내 얘기도 몇 토막 있었다. 간만에 예전 동네를 걸었다. 추억이 돋지는 않았지만 씁쓸한 기억들이 조금 떠올랐다. 만화가게 주인은 어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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