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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동 Jun 11. 2023

불량품

 

 그는 '영국'이라고 불리는 중국에서 온 교포다. 연변에서 자랐다.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배를 타고 먼바다까지 나아가서 물고기를 잡았다고 한다. 키가 작고 늙었다. 얼굴에 자글거리는 주름이 많다. 고생으로 범벅이 됐을 그의 삶이 외모에서 고스란히 보인다. 한국말이 어눌하다. 정확히는 발음이 어색하고 문장이 안 되는 말을 한다. 발음은 한국말과 비슷한데 알아듣기 어렵다. 그가 하는 거의 반이상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어쩌면 내가 발음하는 영어가 저렇게 들리지 않을까 싶다. 







 그는 찌그러진 느낌의 외모와 구겨진 발음과 삶의 구간 어딘가에서 꺾였을 뒤틀린 느낌을 갖고 있다. 관리자의 눈에 보이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차이를 정확히 감지하고 보이지 않는 곳은 대충 한다. 목조주택을 지으면 단열을 해야 한다. 짐승의 털이나 솜뭉치처럼 보이는 유리섬유를 벽을 구성하는 샛기둥과 샛기둥 사이에 밀어 넣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집의 1차적인 단열이 결정된다. 단열재는 나무와 나무 사이의 공간보다 약간 크게 잘라 넣는 것이 요령이다. 단열재가 약간 커야 좁은 공간에 빡빡하게 밀착이 돼 단열의 기능을 발휘한다. 


 중국에서 온 영국이는 말을 듣지 않는다. 앞에서는 알겠습니다, 하고 끄덕이지만 등 뒤에서는 대충 한다. 보이지 않는 곳은 대충 밀어 넣고 구겨 넣는다. 벽이 꺾이는 모서리 공간에 손을 쑥 넣어보면 텅 비어있다. 그와 처음 점심을 먹었을 때다. 중국집에서 볶음밥과 짬뽕밥을 배달해 왔다. 건설사 대표 머릿속의 메뉴는 볶음밥과 짬뽕밥 둘 뿐이다. 다른 것은 없다. 이곳에서 일하는 동안 내 점심은 볶음밥이었다. 영국이는 짬뽕밥을 먹었다. 그가 밥을 먹다 말고 주섬주섬 담배쌈지를 꺼내더니 얇은 종이를 꺼내 담배가루를 뿌리고 침을 묻혀 말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불을 붙이고 담배를 피웠다. 나는 기가 차서 웃었다. 식사를 다 한 거냐고 물었더니 중국 사람들은 버릇이 이렇다고 한다. 창문을 열었다. 매캐한 담배 연기가 조금 흩어졌다. 나와 러시아 사람 데니스는 밥을 먹고 있고 영국이는 담배를 피우면서 서성였다. 그가 알아듣지 못할 말을 몇 마디 뱉었다. 


바닥에 시선을 두고 서성이면서 불평 비슷한 말을 흘리고 담배 연기를 뱉는다. 12월의 햇빛이 창을 통해 들어와 그림자를 만든다. 허공에는 인슐레이션과 나무가루와 온갖 먼지들이 반짝이며 떠 다닌다. "이, 이, 김사장이 성질 더러워. 김사장 성질 더러워." 그가 몇 번 반복한 말이다. 중국 교포들은 아직 사장이란 호칭을 쓴다. 한국에서는 사장이 '대표'로 변했다. 사장이란 단어의 무게는 가볍고 흔해졌다. 사장이 갖고 있던 권위는 '대표님'으로 옮겨갔다. 잔인한 김대표는 영국이의 눈에도 다르지 않나 보다. 영국이는 수원 어딘가에 산다. 운전을 못하니 대표가 매일 새벽에 픽업해 퇴근 때도 데려다준다. 







 유로폼을 조립하는 강반장은 이문세와 같이 고등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그 씹새끼, 참 용됐지." 60이 넘었으니 몸은 느려졌고 젊어서의 양아치 기운도 많이 빠졌으나 몸에 문신보다 깊게 새겨진 불량끼는 늙은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 짓무른 눈가와 흐린 눈빛 너머로 그의 인생이력이 보이는 듯했다. 짧게 깎은 머리는 흰머리가 더 많았고 냉장고 바지라고 불리는 흐물흐물한 가벼운 바지에 안전화를 신고 허리에는 시누와 망치를 차고 있었다. 그는 형틀목수로 오래 살아온 것 같았다. 


영국이와 늙은 양아치는 거의 같은 나이다. 늙은 양아치는 영국이에게 막말을 한다. "짱개 새끼들은 막 잡아 돌려야 해. 잘해주면 이 새끼들은 뒤통수를 쳐. 내가 겪어 봤어." "넌 이 새끼야 그렇게 일해서 어떻게 돈 버냐? 넌 그렇게 일하면 안 돼 이 새끼야." 영국이는 비실비실 웃으며 입에 소주를 털어 넣는다. 


김사장은 대체 어떤 종류의 사람일까? 자재는 최고급으로, 인력은 최하품으로 구해 재활용하는 느낌이다. 어딘가 망가지고 뒤틀려 정상적인 사회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만 골라서 모으는 것 같다. 불량품처럼 망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팀. 


영국이는 고물상에서 산다고 한다. 한겨울에도 난방이 안 되는 방에서 80에 15만 원을 내고 산다. 고물상이 거처이다 보니 모든 옷을 주워 입는다고 한다. "나는 한 번도 돈 주고 옷을 산 적이 없어." 고물상 주인 할머니가 적당히 챙겨주는 것 같다. 


 김사장은 영국이와 늙은 양아치와 나보다 10살 이상이 어리다. 정확한 나이는 모르겠다. 그는 영국이에게 대놓고 하대를 한다. 이걸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한 공정을 마치고 회식을 하려고 현장 근처의 진사명륜갈비에 들어갔다. 아마 앞으로 이 체인점을 보면 어제 생각이 날 것 같다. 늙은 양아치는 먼저 와서 이미 한 잔 걸쳤다. 얼큰한 얼굴에 사회에서 오래 떨어져 지낸 사람의 느낌이 묻어 있다. 영국이는 반은 사람이고 반은 짐승 같은 느낌이다. 한국말도 어눌하고 몸짓이나 움직임, 표정, 외모 같은 것들도 이상하다. 서커스단의 목줄 묶인 원숭이 같기도 하다. 애교인지 장난인지 그런 행동을 한다. 늙은 양아치는 그를 말로 갈구고 영국이는 "씨팔, 형님은, 씨팔..." 하며 대꾸한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겠다. 


김사장은 영국이를 원숭이처럼 데리고 다니면서 일을 시킨다. 반인반수인 영국이는 60이다. 그 나이에 매일 일할 곳을 구하는 것도 어렵다. 그렇게 보면 김사장은 좋은 사업가다. 그러나 김사장이 영국이나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는 잔인하고 이상한 인간이다. 괴물. 사람을 정확하게 도구로 쓰는 것 같다. 예의, 존중, 에티켓 같은 것들이 없다. 차가운 파충류의 느낌이다. 아무래도 이곳을 떠날 것 같다. 


돼지고기가 익어가는 불판을 사이에 두고 망가진 늙은 양아치와 찌그러진 영국이를 마주하고 밥과 고기를 먹었다. 괴물 김사장이 내 옆에 앉았다. 그는 급하게 밥을 밀어 넣고 재빠르게 말을 하고 재빠르게 판단을 한다. 

"김사장이 나보다 어려, 나보다 어린데 반말을 해. 나도 반말을 하겠어. 김사장이 나보다 어려." 영국이도 자존심이 남아 있다. "영국아, 영국아, 아무리 그래도 할 말이 있고 하지 말게 있지." 괴물 김사장이 대수롭지 않게 불편한 감정을 전한다. 그는 나이와 연륜, 지식, 예의 같은 사람을 포장하는 그런 것보다 돈의 힘이 더 세다는 것을 꿰뚫고 있다.  


괴물 김사장이 컬렉션 한 인간 폐품들이 돼지고기를 먹는다. "이 짱개 새끼야, 이거 소고기야 많이 먹어." 늙은 양아치가 중국 교포 영국이를 갈구고 영국이는 소주를 부어 넣듯이 마신다. 잔인한 사장과 늙은 양아치와 어눌한 영국이 그리고 나는 돼지갈비를 먹으면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돈 때문에 만난 사람들이어도 이러고 사는 게 맞는 걸까? 이게 대체 뭘 하자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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