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색 페인트

by 오동



스벅 때문인가? 왜 초록색일까? "스타벅스 3층 312호입니다". 상담 전화를 받으면 안내하기 쉬워서 입에 붙은 스벅이란 말이 초록을 연상케 했을까. 초록색 티셔츠를 3~4년 입었다. 같은 색을 여러 벌 샀고 비슷한 녹색 계열 티셔츠도 모아서 계절을 가리지 않고 입었다. 짙은 초록, 올리브 그린, 라이트 그린 같은 색이다. 언젠가부터 옷을 고르고 내 몸을 거울에 비춰보는 일을 덜하게 됐다. 대충, 적당히, 익숙한 것을 입었다. 특별히 차려입거나 단정한 차림이 필요 없는 일을 하면서 살았다. 그런 생활이 몸에 배이면서 내 태도나 인상도 변했을 것 같다.


아내의 사무실 한쪽 벽을 짙은 초록으로 칠했다. 집이든 사무실이든 내 공간이 생기면 벽지보다는 페인트 칠을 선호한다. 색이 주는 힘을 경험으로 안다. 미술을 전공한 이유도 있고 좋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이 내 안에 있는 탓일 게다. 예술도 영민한 사람들이 더 잘하는 것 같다. 나는 좀 어리석은 사람인 것 같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재능보다는 태도가 한 사람의 경력과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더 큰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재능은 있지만 그것을 빛내 줄 영리함이 없었고 끈기, 노력, 성실, 야망 같은 것들이 부족했다. 바람처럼 이리저리 흔들렸다. 점쟁이 말로는 내가 바람 같다고 했다. 변덕이 심하다는 말이겠지. 부정하지 못했다.


처음 고른 색은 올리브 그린이었다. 막상 칠하고 나서 벽을 보니 색이 별로다. 좀 뜨는 것 같고 약간 유아의 느낌이 들었다. 더 짙고 은근히 가라앉는 색이 나을 것 같아 다시 페인트를 샀다. 스타벅스의 초록보다 더 짙은 색이다. 칠하면서 보니 해가 들 때는 초록이 느껴지는데 어두워지면 그냥 어두운 알 수 없는 어떤 색처럼 보인다. 너무 짙은가 싶어 갸우뚱하는데 아내가 다른 색을 사 왔다. 전형적인 삽질이다. 페인트 가게에서 보여주는 색상표가 부정확해서 실제 벽에 바른 색과 다를 경우가 많다. 경험이 많아야 이런 오차를 줄일 수 있는데 내가 페인트 칠로 밥 벌어먹는 사람이 아니라서 매번 비슷한 실수를 반복한다. 결국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됐다. 실제 쓰이는 페인트 값보다 테스트와 실수에 드는 비용이 더 많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혼자 벽에 페인트를 칠하고 있으면 매번 비슷한 기억이 올라온다. 반복해서 벽에 롤러를 밀다가 어느 순간 칠을 하고 있는 몸의 감각이 느껴지고 그 느낌은 자연스럽게 그림으로 이어진다. 공사장에서 일할 때도 비슷한 기억이 있다. 칠하거나 바르는 일을 할 때마다 그림과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벽이든 캔버스든 종이든 물감을 바르면서 느끼는 감각이 내 몸 안에 담겨 있다. 지금보다 젊었던 시절에는 그림으로 먹고살고 싶고 유명해지고 싶다는 조바심이 있었다. 그 조바심이 내가 가야 할 방향을 망쳤다. 어떤 일을 성취하려면 치러야 할 대가가 있는데 나는 건너뛰고 싶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 현명하고 지혜가 가득 담긴 말이다. 많은 시간과 돈과 모욕을 값으로 치르고 알게 됐다.


예술가가 되고 싶다는 뜬구름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서 헛된 시간을 보냈다. 그 헛헛한 시간을 메꿔준 것은 노가다 일이었다. 집 짓는 목수, 인테리어 목수, 조경꾼, 건설업체 직원, 일당 노가다, 횟집 직원, 쿠팡 등의 일을 겪으면서 세상은 예술가들만 있는 게 아니고 온갖 잡것들이 뒤엉켜 살아간다는 것을 알았다. 정신의 가치나 고상한 태도만큼 실재 삶에서 이뤄지는 배달과 노가다와 고객 서비스가 중요하다는 것도 알았고 서로가 서로의 뒤통수를 치고 속이고 이용하는 게 영업이란 것도 경험으로 알았다. 역시 어리석은 타입이라 겪어야 안다.


초록 페인트가 흠뻑 묻은 롤러를 벽에 굴리면 찐득한 느낌이 손에 닿는다. 그림을 그릴 때도, 색을 칠하고 물감이 기름을 타고 번질 때도 비슷한 감각을 느낀다. 그려진 결과물을 보면서 나는 주절주절 자기 얘기를 떠드는 사람을 떠올린다. 정제된 단어의 조합으로 쓴 글을 떠올리거나 어떤 사람이 부르는 노랫말을 생각한다. 그런 느낌이 내 그림에도 담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 예술이 무엇인지는 관심이 없지만 내가 그릴 수 있는 그림이 어떤 걸까 하는 궁금증은 남아 있다. 아마도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몫일 것이다.









오늘 인터넷 설치했고 가구 만들 합판도 주문했다. 며칠 바짝 일하면 대략 사무실 모습은 나올 것 같다. 눈에 밟히는 세세한 일은 많지만 일단 큰 것부터 해결하자. 내가 살아온 기억에는 없는 생소한 직업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 방향에는 어떤 모습의 삶이 있을지 모른다.


법조인의 귀퉁이를 붙잡았다. 30기 법무사. 내 힘은 아니고 아내가 해낸 일이다. 운전을 하면서 시험공부를 하던 아내와 합격한 이후 연수받던 시간과 새로운 일을 익히고 있는 아내를 떠올리고 그 옆에 있는 나를 생각하다 보면 참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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