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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동 Aug 07. 2016

봄날은 간다

운전을 하는 내내 마음이 어지러웠다. 가끔 가슴이 내려앉는 느낌. 뒷 차가 내 옆을 긁으며 지나가는 소리.

덜컥 가슴이 죄어왔다. 슬픔인지 두려움인지 외로움인지 분간이 안 됐다. 이게 뭔가? 갱년긴가? 


쏟아져 나오지 않는 소리가 목구멍 안쪽에서 칼칼하게 끓었다. 이 노래 저 노래 중얼거리다가 봄날은 간다를 불렀다. 한영애 버전의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로 이어지는 노래. 가사가 너무 좋다. 백설희가 부른 이 노래는 1954년에 발표된 것 같다. 시간을 넘어 2016년 밤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늙어가는 사내의 어딘가에 닿았다. 무언가 무너지는 느낌과 버티는 느낌이 같이 있었다. 


노랗게 질린 가로등들이 뒤로 물러났다. 얄궂은 운명은 나를 강릉으로 이끌었다. 어쩌면 소몰이하듯이 몰려온 것일지도 모른다. 짧아지는 낮과 길어지는 밤 사이로 달이 떴다. 가늘고 얇은 달이다. 구름은 없었다. 낮에 지붕에서 땀이 자꾸 눈가로 떨어져서 고글을 벗고 눈을 훔치다가 하늘을 봤다. 뭉게구름 같은 흰구름이 신기루처럼 떠 있었다. 희미한 구름의 꼬리를 눈으로 좇다가 가슴이 덜컥거렸다. 하늘은 텅 비었고 아무것도 없는데 구름이 한 움큼 뭉쳐서 솟아나고 있었다. 아침에 먹은 순댓국 같은 비린 하늘에 구름이 몽글몽글. 



오랫동안 글을 쓰고 있지 않았다. 할 말이 별로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은 있었는데 속으로 꽁꽁 숨겨두고 있었다. 숨기다가 잊었다. 하고 싶은 말이 뭔지 곰곰이 생각하면서 노트에 펜으로 몇 글자를 끄적이기도 했다. 금방 싫증이나 잠이 들었다. 가끔은 페북에 뭔가 쓰기도 했다. 넋두리이거나 낙서 같은 감정들을 적었다. 누군가 댓글을 달아주기도 하고 누군가 좋아요를 눌러주기도 했다. 트럭이 지나가고, 관광버스가 우악스럽게 달려갔다. 투싼이 달려간다. BMW가 지나가고 벤츠가 쏜살같이 간다. 도로는 밝고 조금만 벗어나면 어둡다. 깜깜한 어둠이 지방의 소도시를 허리춤으로 숨기는 것 같다. 냄새나는 속옷을 비닐봉지에 말아 넣듯이, 땀에 절은 쉰내를 소주잔에 담듯이 하루가 간다. 매일이 간다. 여름이 간다. 곧 바람이 바뀌고 더위는 풀이 죽겠지. 그러다가 가을바람이 불겠지. 산과 들과 길에 쌓인 오래된 서러움들은 어떻게 됐을까. 할머니가 삽인지 긴 호미인지를 들고 밭을 가는 한적한 풍경을 지붕 너머로 바라봤다. 내가 더 늙고 힘이 없어질 때가 되면 조용한 땅을 찾아 밭을 일구는 삶을 살면 어떨까 하는. 


집이 보이는 익숙한 길에 들어서자 막혔던 가슴이 조금 풀렸지만 까닭은 모르겠고,  서글프긴 하고, 이상하면서 먹먹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다. 집 앞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고 담배를 피웠다. 그러니까 봄날은 가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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