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의 복귀 현장
단정한 커트 머리에 과하지 않은 화장, 촤르르 딱 떨어지는 투피스 정장에 옷깃 사이로 살짝살짝 보이는 손목 시계로 '꾸안꾸' 스타일. 말투와 손짓에는 뭔가 모를 권위와 전문성이 느껴진다. TV와 일상에서 내가 마주했던 그녀들의 모습이다. CEO나 정치인 등 중년이 되면 여기에 포인트 브로치나 스카프가 추가된다. 워킹맘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늘 그랬다. 그런데 웬 걸? 여기에 나를 대입 시켰는데, 결과가 다르다. 하늘을 향해 소신을 굽히지 않는 나무들 사이를 지나 음악을 들으며 지하철을 타고 가는, 평화롭던 나의 출근길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아침 6시 40분. 아이가 자면 자는대로 후다닥. 일어났으면 일어난대로 후다닥 출근 준비를 시작한다.
아이가 자면 잠시나마 이 옷 입을까 저 옷 입을까 한번 고민하며 거울 볼 시간이 주어지지만 사이렌이 따로 없는 울음 소리가 사치라는 걸 알려준다. '어젯밤 뭐 입을지 정해놓을걸' 후회가 밀려온다. 주섬주섬 보이는대로 입고 아이를 달래기 바쁘다. 그리고 책장과 장난감 수납함과 냉장고를 거치면 7시 20분. 일어나서 고작 현관문 나왔는데 이 피곤함은 뭐지. 양팔은 욱신거리고 거친 숨이 휘몰아친다. 주차장 입성은 곧 '레벨업'이다. 차 리모컨키에 꽂힌 아이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짐을 조수석에 겨우 밀어넣는다. 그리고 카시트 앞에서 안기려는 자와 앉히려는 자 간의 한판 승부가 펼쳐진다. '착하지~ 부릉부릉 타고 어디 갈까. 저게 뭐야?' 속사포 랩과 함께 '필살기' 떡뻥을 양손에 쥐어주면 나의 판정승, 시동이 걸린다.
'잘 있나' 신호 대기 중 후방거울에 비친 아이를 살펴본다. 두리번거리는 시선이 분주하다. '신기하지? 어디 가는지 알긴 할까. 엄마가 못 놀아줘서 미안' 등 짧은 감상도 잠시. 다시 '으라차차' 기합과 함께 한손에는 딸을 한손에는 짐을 끌어안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현관문이 열리는 경쾌한 기계음이 어찌나 반갑던지. “고생했다”고 토닥여주는 것 같다.
반찬과 국, 새로운 장난감에 대한 짧은 브리핑과 함께 시부모님께 아이를 맡기고 드디어 회사로 향한다. 어찌나 양팔이 가벼운지 날아갈 것 같은데, 이상한 허전함이 밀려온다. 지하철 스크린도어 앞에서야 비로소 차분하게 내 모습을 본다. 절대 안 떨어지겠다는 아이의 의지가 만들어준 부시시한 머리칼과 코 끝에 맺힌 송글송글 땀방울, 구부려 신은 로퍼에 '꾸안꾸'는 이미 저 세상 이야기다. 은은한 향기와 함께 한껏 힘을 준 젊은 여성들부터 딱 봐도 상사 같은 느낌의 중년 여성들이 내 옆을 스친다. 마스크를 썼어도 새 나오는 세련미와 여유가 부럽다 하면서 꾸벅꾸벅 존다. 8시 30분. 커피 한 잔을 사들고 사원증을 찍는다. '피식' 코웃음이 난다. 워킹맘이란 이런 거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