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게 모성애일까?
35년 간 매일 보냈던 밤 9시 풍경은 그랬다.
시선 한 번에 한 숨 한번 내쉬며 퇴근 시간만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든지 술잔에 차곡차곡 이야기를 담고 또 비우고를 반복하든지. 그것도 아니면 "나 피곤하니깐 말 시키지마"하며, 집에서 허겁지겁 밥을 먹고 골아떨어지든지. 나이를 먹으며 장소만 달라졌을 뿐, 누구를 만나든, 무엇을 하든, 다 예상 가능했던 내 모습이다.
그런데 36년 차, 어느 순간부터 매일 밤이 달라졌다.
'코오~하자'라는 내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쪽 저쪽을 다니며 춤을 추는 아이. 다그치지 않고 "엄마는 이제 잘 준비 할 건데"라며 달랜다. 한바탕 춤사위가 끝나면 아장아장 책장에서 손에 닿는 책을 들이민다. 책을 보는 모습은 아기든 중장년이든 나이와 상관 없이 흐뭇하게 만드는 풍경인가보다. 그 모습에 절로 광대가 승천한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그림과 내 입모양을 번갈아가며 집중한다.
그 예쁜 모습도 3권째 접어들면 다르게 보인다. '얼른 좀 자'라는 마음의 소리를 꾹꾹 누르며 진심을 담아 구연동화를 이어나간다. 책을 읽으며 순간순간 놀란다. 오글오글 목소리톤에 내게 이런 재능이? ㅎㅎ 자유자재 목소리 변신하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새 나온다. 어찌됐든 약속된 책을 모두 읽어주고 다시 한번 '자자'고 말해본다.
하지만 바로 '코오~' 숙면에 들어가면 로봇이겠지. 베이비 마사지와 함께 왼쪽 오른쪽 뒹굴뒹굴 코코코 하며 스킨십이 시작된다. 그러다보면 '응응' 뭘해달라는 소리가 '아아아' 곡조로 바뀌고 그러다가 어느새 '쌔근쌔근' 숨소리만 남는다.
한없이 평화로운 그 순간 난 기도를 한다. 패턴은 늘 같다. '엄마가 피곤해서 못 놀아줬지. 미안해' '좀 신경써서 간식 만들어줄 걸 미안해' 후회 섞인 고백에서 시작한다. 분명 순간순간 최선을 다한다고 했는데도 그렇게 미안할 수가 없고, 아쉬움 속에 흘러가버린 시간에 매번 질척질척, 미련이 남는 건 참 이상하다. 그리고 천사같은 모습을 보며 '몸도 맘도 건강하게 자라게 해주세요' '성장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평생 선하고 바른 길로 인도해주세요' 식의 간절한 바람을 읊조리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통상 내가 아이보다 더 오래 살긴 어렵고, 내가 평생 돌봐줄 수도 없고. 이 아이가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현명하게 삶을 개척할 수 있도록,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뭘까 생각하다가 나도 잠든다. 이런게 모성애일까. 매일 찾아오는 밤, 매일 찾아오는 뭉클한 감정. 익숙할 법도 한데 늘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