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도 밤 먹고 싶어"
시어머니가 찐 밤을 주셨다. "소장님이 첫 수확이라고 주셨는데, 맛있게 잘 익었어. 한번 맛 보렴." 완제품 아니면 싱싱한 과일이며 야채며 결국 냉장고에 며칠 있다가 운명을 달리한다는 걸, 잘 아시는 덕분이다. "네, 감사합니다" 인사를 드렸지만, 사실 난 그 날 밤, 밤 한 알도 먹지 못했다.
현관에 노트북 가방을 내려두기도 전에 안아달라며 "왜 이제 왔냐"는 세상 억울한 표정으로 다가오는 아이. "잠깐만, 엄마 손 씻고" 라는 말하는 틈도 안 준다. 바짓가랑이를 고사리 손으로 움켜 잡는데, 안쓰러움과 반가움이 교차해 번쩍 안아주기를 시작으로 내 엉덩이는 타의로 중력의 법칙을 거부하게 된다. 아이가 자기 전까지 바닥에 한번 제대로 못 앉는다.
소꿉놀이, 저녁 준비하기, 밥 먹이고 목욕 시키기, 재우기. 우스운 건, 재우다가 나까지 스르르 잠든다. 이렇다보니 맛있는 밤 생각 날 틈이 없는 건 어쩜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다음 날, 아이의 이른 낮잠으로 주방 정리를 하자 그 때서야 눈에 들어온 그 밤. 자, 먹어볼까 칼로 야무지게 반조각을 내는데 불현듯 친정 엄마 생각이 났다. 다 찐 밤 앞에다 갖다줘도 스푼으로 긁어먹는 거 귀찮다고 안 먹는다 했던 나. 그런 내게 우리 엄마는 밤을 깎아 알맹이만 쏙 내게 줬다. 그땐 입에 쏙쏙 집어넣기 바빴지 밤껍질이 이리 단단한지, 밤 껍질 벗기는 데 이렇게 많은 힘이 들어가는지 몰랐다. 겨우 밤 한 개 껍질 까는 데 '에이 그냥 안 먹어' '뭔 고생이냐' 이 말이 계속 맴도는데, 보통 일이 아니었다.
하긴, 생각해보니 몇 달 전 밤 껍질을 벗긴 적이 있다. 낑낑 대긴 했는데, 불만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이 이유식에 넣을 밤 손질이었다. 달달한 게 위장에 좋고 성장기에 딱이라길래 그날 수십개의 찐밤 속살만 발라내는 작업을 했다.
오늘은 이 밤 한 알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출산 후 내 아이만 생각만 해 엄마 딸 노릇을 못했다. 엄마한테 밤 먹고 싶다고 전화나 걸어볼까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