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지나면 괜찮아진다던데

달라진 건 남편이 아닌 나겠지...

by OZ

"오빠가 없어도 내 삶에 하나도 영향이 없단 생각이 드는거야"

친구들과 육아 이야기를 하다보면 단골 메뉴 중 하나가 남편 이야기다. 야속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얼마 전 친구가 남편의 괘씸죄를 성토했는데, 친구와 헤어지고 나고도 한동안 저 말이 계속 맴돌았다.

내가 엄마라는 낯선 영역에 처음 발을 내딛은 것처럼 남편도 아빠라는 역할이 어색할 수 있다. 적어도 엄마란 사람들은 하루종일 아이와 살을 맡대고 있다보니 아빠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응 시간이 짧을 테다. 하지만 그걸 감안하고도 출산 후 지금까지 삶을 곱씹는데, 내 삶에 남편의 색깔이 옅어졌긴 하더라.


아이가 있기 전만 해도 잠이 많은 내 남편의 일상은 문제될 게 없었다. 주말 늦잠을 늘어지게 잔 뒤 일어나 "우리 뭐 먹어?"하는 말도 그저 귀엽게 보였고, 내가 손이 빠른 반면 꼼꼼하지 못한 점을 깔끔한 남편이 잘 메워줘서 가사일에서도 불편이 없었다. 세탁은 아내, 청소는 남편, 음식 준비는 아내, 설거지는 남편. 친구들은 이런 식으로 가사 분담을 똑 떨어지게 하는 게 현명한 거다, 나중에 덜 싸울 수 있다.등의 조언을 건넸지만, 귓등에도 들어오지 않았던 말들. 하지만 나의 하루는 평일이고 주말이고 출근하는 날이고 쉬는 날이고 7시에 시작되는데 사부작거리는 아이의 움직임이 정말 안 들리는 건지, 무시하는 건지 이불 속의 돌돌 말린 자태를 보면 별안간 짜증이 솟을 때가 있다. 사실 남편은 억울할 수 있다. 내가 뭘 해달라며 깨운 것도 아니고, 또 아이가 있기 전이나 지금이나 자신은 변한게 없는 데 왜 비난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가 안될 수 있다. 냉정하게 말하면 달라진 건 내 감정, 내 시선 뿐이니.


그럼에도 나의 항변은 이렇다. "내가 일일히 이거 해달라 저거 도와주라고 말하기 전에 알아서 하면 안돼?"

물론 더는 못참겠다며 이 말을 내뱉는 순간 돌아오는 건 남편의 한숨소리고 "나는 뭐 말하고 싶은 게 없는 줄 알아?"로 시작되는 전쟁의 선포다. 도대체 왜 내 눈에만 보이는 걸까, 빨래 더미를 세탁기에 넣은 뒤 곧장 설거지를 하고, 환기를 시키며 청소기를 돌리고, 아이 기저귀를 갈아주고 씻기고 등등 순서대로 착착 해나가야 할 일들이. 이쪽 저쪽에 쌓였던 케케묵은 감정들이 정리되지 않은 말들로 쏟아지는데, 그 순간은 시원해도 좀 지나면 불편하니 이 마저도 안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사실 아이를 한없이 좋아하고 시간만 있으면 좀 더 보고싶다는 남편의 말이 입버릇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정말로 끔직히 날 생각하며, 내가 부탁하면 들어주는 자상한 남편인 것도 아는데 도대체 왜 나는 "이것 좀 해줘. 저것 좀 해줘"라는 말을 못하고 끙끙 앓고 있는 것일까.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는데, 혼자 감당하기 벅찬 짐은 나눠 들면 되는, 이 간단한 방법을. 왜 삭히고 있는 걸까.


사실 아이러니한 것은 반문하면서 동시에 답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피곤하니까..." 그렇게 남편에게 말을 꺼내는 것조차 피곤한 소모전으로 여기는 정신세계 탓이다. 독박육아 그리고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육체적, 정신적 팍팍함이 나도 모르게 남편에 대한 배려와 인내를 지워버렸다. 육아 선배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한 3년 지나면 괜찮아진다 하던데, 나 지금이 2년 차니 1년만 기다리면 되는거야? 오늘부터 D-day라도 세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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