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화
19. 날아라, 새들아!
아침에 등교하면 이대현이 맨 먼저 보인다. 이대현은 한동권, 임정모랑 무슨 얘긴가를 낄낄대다가 나를 보았다.
“대현아, 안녕.”
나는 들어선 그 자리에 서서 대현이에게 손을 들어 인사를 건넸다. 한동권과 임정모가 가소롭다는 듯 피식거렸다. 이대현은 멀거니 나를 본다.
난 곧바로 내 자리로 와서 앉았다. 나는 이제 이대현이 부럽지 않다. 대현이와 친구 되기도 바라지 않는다. 이대현은 여전히 우리 반 키 대장, 주먹 대장이지만, 그냥 우리 반 아이 중 한 명일 뿐이다. 임정모나 한동권도 마찬가지고.
“현승아, 쟤네가 너 계속 쳐다봐.”
준구가 이대현들을 흘끔대며 말해 주었다.
“왜 자꾸 쳐다보지?”
준구는 좀 겁먹은 듯 소곤거렸다.
“음, 내가 멋있으니까?”
짐짓 뻐기듯 말하자 준구가 키득대며 내 어깨를 쳤다. 나도 준구 어깨를 치며 하하 웃었다.
학교 끝나고 엄마와 만나 곧장 마트로 갔다.
“코로나 때문에 맨날 집에만 있었는데 언제 이렇게 컸다니?”
엄마는 작년에 사 준 내 운동화를 내려다보며 얼마 신지도 않았다고 아까워했다. 얼굴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우리 현승이 발이 이렇게 크는 걸 보니, 이제 본격적으로 키 크려나 보다.”
엄마는 운동화에 이어 바지와 셔츠도 몇 벌 사 주었다. 엄마 말대로 나는 크고 있었다. 앞으로는 더 커질 거다. 키는 물론 마음도.
새 옷을 입고 새 운동화를 신으니까 확실히 달라진 나를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여러 날이 지났다.
다친 새들의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고 선생님이 전해 주었다. 참매가 드디어 다 나아서 자연으로 돌려보내 줄 건데, 나도 와서 보고 싶으면 봐도 된다고.
“정말이에요?”
난 기뻐서 폴짝폴짝 뛰었다. 이날이 오기만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저 보고 싶어요, 선생님. 저도 꼭 보고 싶어요.”
은서와 준구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는 새 전문병원에 모두 함께 갔다. 담임 선생님, 나, 은서, 준구 그리고 보건 선생님까지.
병원 뒤에 넓은 벌판이 있고, 그 너머로 큰 산이 둘러서 있었다.
수의사 선생님이 반갑게 우리를 맞아 주었다.
우리는 수의사 선생님이 들고나오는 새장을 보았다.
“어때? 몰라보게 건강해졌지?”
새장 안에는 새 한 마리가 들어 있었다.
“얘예요?”
“얘가 그때 그 참매예요?”
우리는 깜짝 놀랐다. 은서와 준구는 그때 보고 처음 보는 거지만, 중간에 한 번 봤던 나도 놀랐다.
“다른 새 같아요.”
힘없이 까부라져 있던 그때의 애처로운 모습은 간데없고, 지금 참매는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도도히 앉아 있었다. 날카롭게 눈빛을 빛내며 이따금 날개를 움직거리는 모습이 묘하게 긴장감을 주었다.
“앞으로 더욱 늠름해질 거다. 아직 보라매니까, 너희처럼 말이야. 하하.”
선생님이 아직 어린 참매를 보라매라 부른다고 알려 주었다.
“보라매요?”
나는 보라매라는 말을 조용히 되뇌어 보았다.
“이제 보내 줘야 해.”
수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그럼 작별인사들을 하렴.”
담임 선생님이 말했다.
우리는 갑자기 슬퍼졌다.
“힝, 헤어지기 싫은데.”
“우리랑 같이 있으면 안 돼요, 선생님?”
은서와 준구가 애원하는 눈빛으로 수의사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수의사 선생님이 미안한 표정으로 웃었다.
“정말 잘 날 수 있어요?”
은서가 참매를 보며 물었다.
“그럼, 아주 잘 날 수 있지.”
“들었지? 이제 너 아주 잘 날 수 있대.”
은서가 작별 인사를 했다.
“잘 가, 우리 잊지 마. 우리도 너 안 잊을게.”
“너 또 바보같이 유리창 같은 데 부딪히지 말고 잘 보고 날아다녀, 알았지?”
준구도 인사했다.
나는 하늘을 보고 있었다.
하늘이 너무 높지 않을까. 저기 저 앞산은 너무 깊어 보이는데. 혼자서 무섭지 않을까. 친구를 빨리 사귀면 좋을 텐데⋯⋯.
“우리 은서랑 준구랑 현승이 잊지 말렴. 너 빨리 나으라고 모두 한마음으로 기도했단다. 무사히 다 나아 줘서 고마워. 건강하게 잘 지내.”
보건 선생님이 참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다음에 박씨 물고 꼭 우리 보러 오고.”
담임 선생님이 농담처럼 말했다.
“봄에는 예쁜 꽃이 피니까.”
마침내 내가 말했다.
“잘 가.”
이거보다 훨씬 더 근사한 말을 하고 싶었는데 이 말밖에 안 나왔다.
수의사 선생님이 새장 문을 열자 참매는 순식간에 날아올랐다.
“와아.”
은서와 준구가 탄성을 터뜨렸다.
스프링처럼 솟구친 참매는 두 날개와 꽁지깃까지 쫙 펼치고 드넓은 하늘을 시원하게 가로질렀다.
“잘 가!”
“안녕!”
“보라매야, 잘 가!”
내가 소리쳤다. 보라매, 정말 멋진 이름이었다.
“너 만나서 진짜 좋았어.”
보라매는 나의 인사 속에서 힘차게 멀어지고 있었다.
조그만 한 개의 점으로 사라지던 보라매가 되돌아 날아온 건 그다음이었다.
보라매는 매우 빠른 속도로 우리의 머리 위로 다시 날아왔다. 우리는 일제히 고개를 젖혀 보라매를 올려다보았다.
“고맙다고 인사하러 다시 왔나 봐.”
“우리랑 헤어지기 싫어서 그런 거 아닐까?”
은서와 준구가 머리 위에 떠 있는 보라매를 보고 말했다.
“어때? 나 이제 잘 날지?”
보라매가 우리에게 물었다. 머리 위를 빙빙 도는 보라매가 그렇게 물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저번에 해 준 말 고마웠어.”
“응?”
“내가 작지만 강한 새라고 한 말.”
“아아.”
“신현승.”
보라매가 내 이름을 불렀다.
“이제 네 차례야.”
“⋯⋯.”
“너도 작지만 강한 아이라고.”
그 말을 해 주고 보라매는 날아갔다.
보라매가 날아간 하늘을 하염없이 올려다보았다. 보라매를 품은 하늘은 더 깊고 더 넓어졌다.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두 팔을 번쩍 들어 보라매의 날개처럼 힘차게 흔들었다. 은서가 마스크를 벗어 들고 내게 별처럼 반짝이는 미소를 주었다. 나도 마스크를 벗고 은서에게 마주 웃어 주었다.
“이제 우리가 날 차례야!”
우릴 향해 푸르게 열려 있는 저 드넓은 세상으로 날아오를 준비가 된 ‘사나이’ 나, 신현승은 그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