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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은경 Oct 25. 2024

날아라, 새들아!

아홉번째

17. 작지만 강한 새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컴퓨터로 참매를 찾아보았다.

“역시 걔가 참매였구나.”

나랑 눈이 마주친 그 새가 바로 참매 맞았다.

컴퓨터 화면에 뜬 참매의 늠름한 모습은 나를 사로잡았다. 매서운 눈매는 몹시 용맹해 보이고,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은 천하무적처럼 보였다. 참매는 천연기념물이었다. 독수리만큼 몸집이 크지는 않지만 날렵한 몸으로 먹잇감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가 단번에 낚아채는 훌륭한 사냥꾼이라고 나와 있었다.

“작지만 강한 새.”

그 말이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작은데 강하다고?”

그런 말은 처음 들었다. 작아도 강할 수 있다는 말.

“작지만 강한 나.”

나는 슬쩍 말을 바꿔 소곤거려 보았다.

가슴이 쿵쿵거렸다. 내 가슴속 작은 새가 힘차게 날갯짓하면서, 나의 심장도 함께 쿵쿵! 뛰었다. 작지만 강하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정말 강해진 것 같았다.

그날 밤 난 꿈에서 참매가 되어 우주를 씽씽 날아다녔다.

이튿날 등교하자 곧바로 보건실로 갔다. 그런데 참매가 안 보였다.

“선생님, 참매 어디 갔어요? 참매가 왜 없어요?”

혹시 밤사이에 또⋯⋯? 하는 생각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집중 치료를 하려고 새 전문병원으로 옮겼어.”

보건 선생님이 말해 주었다.

“거기서 수의사 선생님이 잘 고쳐 주실 거야. 그러니까 걱정 안 해도 돼.”

나는 안심하고 교실로 왔다.

수업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참매는 많이 다친 걸까? 수의사 선생님은 정말로 잘 고쳐 주실 수 있을까?

수업이 끝나자 보건실로 뛰어갔다.

“선생님, 참매 많이 다친 거예요?”

참매의 그 똥그란 눈동자는 여전히 내 머릿속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수의사 선생님이 잘 고쳐 주시는 거 맞아요?”

“그럼, 그렇고말고.”

보건 선생님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다음 쉬는 시간에도 나는 보건실에 갔다.

“근데요 선생님, 그 멧비둘기는 어떻게 됐어요? 멧비둘기도 병원에 갔어요?”

멧비둘기 생각이 뒤늦게 났다.

선생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멧비둘기는 너무 위험한 상태로 왔고, 수의사 선생님이 어떻게 손써 볼 도리도 없었다고 했다.

“선생님 그럼 어떡해요?”

나는 울먹거렸다. 갑자기 슬픔과 무서움이 몰려왔다.

“그럼 혹시 참매도 살지 못하는 거 아니에요? 그럼 안 되는데? 정말 안 되는데⋯⋯.”

참매도 멧비둘기처럼 돼버릴까 봐 겁이 났다. 멧비둘기야 미안해. 참매야 그럼 안 돼. 제발, 제발.

“안심해, 우리나라에서 다친 새들을 최고로 잘 고치는 수의사 선생님이 치료해 주시거든.”

선생님이 다정하게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나는 눈가에 고인 눈물을 손바닥으로, 손등으로 얼른 닦았다.

다음 등교할 때도 맨 먼저 보건실부터 찾았다.

“선생님, 참매 다 나았어요?”

나는 참매 생각뿐이었다. 집에서도 참매 생각, 밥 먹을 때도 참매 생각, 화장실에서도 참매 생각, 학교 오면서도 참매 생각, 수업 시간에도 참매 생각, 자려고 누우면 더욱 참매 생각⋯⋯. 온통 참매 생각이었다.

“아직 며칠 안 지났잖니? 조금만 더 기다려 봐라.”

보건 선생님은 나를 교실로 돌려보냈다.

그다음 날도 맨 먼저 보건실에 가서 참매가 얼마나 나았는지 물어보았다.

“아직도 다 안 나았어요?”

“시간이 좀 필요하단다.”

집에서 비대면 수업하는 날도 학교에 가서 확인하는 걸 잊지 않았다.

“선생님 아직도 안 나았어요?”

“어머, 너⋯⋯ 그거 물어보려고 일부러 온 거야?”

보건 선생님이 휘둥그레 나를 보았다.

“네, 근데 지금은 얼마큼 나았는데요? 왜 아직도 다 안 낫는 거예요? 언제 다 나아요? 아이참,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데요? 못 기다리겠단 말이에요, 선생님.”

“현승아.”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불렀다.

“우리 현승이가 이렇게 걱정 많이 해 주니까 참매도 곧 훌훌 털고 일어날 거야. 다 나으면 선생님이 제일 먼저 현승이한테 알려 준다고 약속할게.”

선생님이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나는 선생님 손가락에 내 손가락을 걸었다.

“이제 안심해.”

선생님이 말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참매가 어떻게 됐는지 도저히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수가 없었다. 정말로 잘 낫고 있는 건지, 혹시 많이 아픈 건 아닌지⋯⋯. 직접 보면 마음이 좀 놓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다시 보건 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 저 참매 보고 싶어요.”

내가 말했다.      




18. 참매를 만나러     


나는 지금 담임 선생님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참매를 만나러 가고 있다. 자동차는 빠른 속도로 고속도로를 달렸다.

“앗, 저거!”

나는 길가 투명한 방음벽에 붙어 있는 버드 세이버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선생님, 저기 버드 세이버가 있어요.”

선생님도 운전하면서 버드 세이버를 보았다.

“응, 그래. 독수리로구나.”

나는 투명한 방음벽에서 멋지게 날고 있는 독수리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독수리는 여전히 날카로운 눈매와 발톱을 앞세우고 있지만 이젠 나도 안다. 저 버드 세이버가 저렇게 달랑 한 장만 붙어서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걸.

내가 보건 선생님에게 참매를 보고 싶다고 말하자, 보건 선생님은 우리 담임 선생님에게 말했고, 그래서 지금 담임 선생님과 함께 참매를 보러 달려가는 길이다.

자동차는 쉬지 않고 달려 곧 다친 새들의 병원에 도착했다.

“어서 오렴. 어서 오세요, 또 뵙네요.”

수의사 선생님이 반갑게 우리를 맞아 주었다. 수의사 선생님은 장갑을 벗고 우리 담임 선생님과 악수했다.

“안녕하세요?”

나는 수의사 선생님이 벗어 든 팔꿈치까지 오는 길고 두꺼운 장갑을 보았다.

“네가 현승이구나? 현승이 네가 참매를 발견했다고 들었다. 네 덕분에 참매가 살았어.” 

‘이분인가? 우리나라에서 다친 새들을 최고로 잘 고쳐 주신다는 수의사 선생님이?’

나는 수의사 선생님을 탐색하듯 쳐다보았다.

“훌륭한 일을 했다.”

선생님이 빙그레 웃으며 엄지를 척 세웠다.

담임 선생님은 양손 엄지를 모두 세우고 웃어 주었다.

수의사 선생님이 우리를 어떤 방으로 안내했다.

“아직 치료 중이라서 조용히 지켜만 봐야 해. 큰 소리 내거나 만지지는 말고.”

“네.”

조그만 목소리로 대답했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치료 침대에 날개를 펼친 채 힘없이 누워 있는 새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 참매였다.

날개를 쫙 펼쳐서 그런가, 참매는 그때 봤을 때보다 훨씬 커 보였다. 활짝 편 날개는 부채처럼 얇았고, 날카로운 발톱은 갈고리처럼 둥글게 휘어져 있었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참매를 보게 되다니. 저 갈고리발톱에 한번 잡히면 아무도 못 빠져나갈 것 같았다. 침이 꼴깍 넘어가며, 마음이 오싹했다.

“인사해, 너를 구해 준 현승이야.”

수의사 선생님이 참매에게 나를 소개했다.

“네 생명의 은인이지.”

“아, 안녕.”

나는 작게 인사했다.

참매는 부리에 흰 붕대를 감고 있었다. 한쪽 날개에 수액주사가 꽂혀 있어서 노란 수액이 한 방울씩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되게 아프겠다.’

나도 독감 걸렸을 때 병원에서 저렇게 수액을 맞은 적이 있다. 새들도 사람처럼 수액을 맞는구나.

“현승이가 너 걱정돼서 이렇게 직접 보러 온 거야, 그러니까 얼른 털고 일어나.”

수의사 선생님이 또 말했다.

나는 움찔했다. 참매는 한쪽 눈은 뜨고, 한쪽 눈은 감고 있었는데, 그 부릅뜬 한쪽 눈이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선생님, 참매 만져 봐도 돼요?”

내가 그런 말을 할 줄은 나도 몰랐다.

수의사 선생님이 물었다.

“만져 보고 싶어?”

“네.”

수의사 선생님이 그 길고 두꺼운 장갑을 다시 끼고 참매의 날카로운 발톱을 지그시 가려 주었다.

“살살, 조심조심.”

담임 선생님이 말했다.

나는 손을 뻗어 참매의 날개를 만져 보았다. 부드럽고 얇은 느낌이 손끝에서 느껴졌다.

그다음엔 포동포동한 가슴에 손가락을 살짝 가져다 댔다.

굉장한 부드러움 속에서 콩콩 뛰는 힘찬 박동이 느껴지는 듯했다. 내 가슴도 덩달아 쿵쿵 뛰었다. 참매와 내 손이 맞닿은 그 얇은 사이에서 서로 똑같이 힘차게 박동하는 생명의 오묘한 느낌이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참매의 그 부릅뜬 눈빛을 똑바로 마주하였다.

참매의 눈은 컴퓨터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더 늠름하고 당당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그 생생한 기운이 완전히 내게로 왔다.

‘참매야, 얼른 일어나.’

내가 말했다.

‘나 매일 기도해, 너 빨리 나으라고.’

그랬더니 참매가 대답했다.

‘고마워, 현승아.’

나를 보는 눈빛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너 알지? 너는 작지만 강한 새라는 거. 그러니까 힘내.’

내가 말하자 참매가 한쪽 날개 끝을 가볍게 들썩거렸다. 마치 알겠다고 대답하는 것처럼.

참매도 나를 보고 말했다.

‘너도 작지만 강한 아이야.’

그 꿰뚫는 것 같은 똥그란 눈동자가 내 마음 저 깊은 곳까지 들여다봤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깊어진 숨 속에서 참매와 나의 눈이 하나로 이어졌다. 참매를 품은 나는 가슴이 우주만 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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