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번째
15. 새를 구하는 진짜 임무
나는 ‘자연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은서와 준구랑 학교 근처에서 만났다. 이번 임무는 선생님이 주신 게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정한 것이다. 우리는 새 구하기 대작전 요원들이니까.
나는 쓰레기봉투를 가져왔고, 은서와 준구는 집게를 들고나왔다.
“우리 여기서부터 시작하자.”
“이제 쓰레기는 우리에게 맡기라고!”
진짜로 진짜 임무를 수행한다는 생각에 저절로 힘이 났다. 은서와 준구가 앞장서 걸었고, 나는 쓰레기봉투를 들고 따라갔다.
“여기 있다.”
학교 앞길을 몇 발짝 갔을 때 은서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과자봉지 하나를 집게로 집어서 보여주었다.
“아이, 누가 과자봉질 여기다 버린 거야?”
준구가 인상을 쓰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나는 쓰레기봉투 입구를 활짝 벌려서 은서 앞에 대 주었다. 은서가 과자봉지를 쓰레기봉투 안 깊숙이까지 들이밀어서 버렸다.
“앗싸, 나도 찾았다!”
준구가 저쪽으로 겅중겅중 뛰어갔다.
찻길과 인도 사이에 세워져 있는 안전 분리대 위에 플라스틱 컵이 아슬아슬 놓여 있는 게 보였다. 준구는 집게로 플라스틱 컵을 잡으려다가 그만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컵이 무거운 소리를 내며 바닥을 굴렀다.
“에이, 누가 다 먹지도 않고 버렸어?”
집게로 몇 번 집으려다 여의치 않자 준구는 손으로 컵을 주웠다. 투명한 플라스틱 컵 안에는 김빠진 콜라인지 커피인지가 반 이상 남아 출렁거렸고, 빨대가 꽂혀 있었다.
“참 얄밉다.”
은서가 빨대 꽂힌 플라스틱 컵을 보며 말했다.
“근데 이건 어떻게 버리지?”
준구가 플라스틱 컵을 들고 망설이다가 뚜껑을 열어 배수로에 내용물을 쏟아버렸다.
“그럼 이건 또 어떻게 버려?”
빈 플라스틱 컵을 들고는 또 망설였다.
“그냥 여기다 버려야지, 뭐.”
나는 쓰레기봉투를 준구 앞으로 내밀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재활용 쓰레기봉투도 챙겨 올 걸 그랬다.
준구가 쓰레기봉투에 플라스틱 컵이랑 빨대 꽂힌 뚜껑을 버렸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고 다녔다. 내가 들고 온 쓰레기봉투는 서서히 채워지고 있었다.
거리에는 별의별 게 다 버려져 있었다. 담배꽁초, 영수증, 플라스틱 포장지, 담뱃갑, 음료수 빈 깡통, 빈 병, 까만 비닐봉지 묶은 거, 생수통, 배송박스, 스티로폼, 빨대 꽂힌 일회용 플라스틱 컵, 컵, 컵⋯⋯. 특히 수풀 우거진 안쪽에 쓰레기가 많았다. 부서진 의자가 덤불 속에 숨어 있기도 했고, 소파와 냉장고가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나뒹굴고 있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됐다.
그중에 가장 놀란 건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마스크였다.
“이것 봐, 여기에도 마스크가 있어.”
은서가 뒤집혀 버려진 까만 마스크를 보고 흉측한 독거미라도 본 것처럼 진저리를 쳤다.
“선생님이 마스크를 함부로 버리면 안 된다고 그러셨는데.”
준구는 조심조심 집게로 마스크를 집어 쓰레기봉투에 버렸다. 이로써 우리가 길거리에 버려진 마스크를 주운 게 벌써 열세 개째였다.
나는 쓰레기봉투 입구를 묶었다.
새들이 우리 머리 위로 날아갔다. 우리는 잠시 쉴 겸 날아가는 새들을 쳐다보았다.
그러다 요란하게 날아가는 새 두 마리를 보았다. 어쩐지 앞의 새는 도망치는 것처럼 보였고, 뒤의 새는 쫓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어어?”
은서와 준구가 동시에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저 새들 좀 이상하지 않아?”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새를 좇았다.
쏜살같이 날아가는 두 마리 새들 저 앞으로 우뚝 솟은 커다란 빌딩 하나가 보였다.
“저기로 가면 안 되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돌연 빌딩 앞에서 새들이 사라졌다.
“어떻게 된 거지?”
“새들이 어디 갔지?”
눈 깜빡하는 사이 두 마리 새가 감쪽같이 사라져서 우리는 어리둥절하였다.
16. 맹금류도 안심할 수 없다
우리는 새들이 사라진 그 건물로 가 보았다. 그리고 놀랐다.
건물 앞 화단에 두 마리 새가 나동그라져서 날개를 푸드덕거리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 다시 날아오르려 애쓰는 새의 날갯짓은 안쓰럽고, 또 무서웠다. 준구는 옆에서 “어? 어떡하지? 난 몰라” 울먹이고 있었다.
은서가 침착하게 휴대전화로 선생님에게 연락했다.
선생님은 곧바로 달려왔고, 놀랄 틈도 없이 새들을 학교 보건실로 옮겼다.
갑자기 난 바보가 된 것 같았다. 머릿속이 깜깜해져서 아무 생각도 안 났다.
새들이 왜 바닥에서 나뒹굴고 있었을까.
아까 날아가던 그 새 두 마리는 대체 어디로 갔지?
“선생님, 어떻게 됐어요?”
보건실에서 나오는 선생님에게 은서가 물었다.
우리는 보건실 앞에 있었다. 선생님이 우리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많이 다쳤어요?”
보건실 앞에서도 나는 여전히 얼이 빠져 있었고, 내 눈 안쪽 깊은 곳에서는 새들이 다시 날아오르려 필사적으로 날개를 푸드덕거리는 모습이 마치 동영상처럼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죽은 거 아니죠?”
“많이 다치기는 했지만 아직 살아 있어.”
선생님은 우리를 교무실로 데리고 갔다.
“많이 놀랐지?”
선생님이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며 향긋한 차를 끓여 주었다.
“너희 덕분에 응급치료를 할 수 있었어. 많이 무서웠을 텐데, 잘했구나, 정말 잘했어.”
선생님이 우리 하나하나와 눈을 맞추며 따뜻하게 머리를 쓰다듬고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무섬증이 가라앉았다. 선생님이 준 따뜻한 차를 홀짝거리자 마음이 좀 진정되었다.
그제야 내가 목격한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쏜살같이 날아가던 그 두 마리 새들은 사라진 게 아니었다. 마술처럼 감쪽같이 사라진 줄 알았던 그 새들은 바로 그 건물 유리창에 부딪혀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친 것이었다.
세상에 맙소사! 말로만 듣던 새들의 유리창 충돌을 내 눈으로 직접 볼 줄이야.
완전히 정신이 돌아온 나는 우리가 누구인지 생각났다.
“⋯⋯선생님 근데 그 새들은 무슨 새였어요?”
“한 마리는 멧비둘기이고, 또 한 마리는 참매였어.”
멧비둘기는 비둘기의 한 종류이고, 참매는 매의 한 종류로 작은 새나 동물을 잡아먹는 맹금류라는 설명이 덧붙었다.
“맹금류요?”
내가 놀라 되물었다.
저번에 선생님이 버드 세이버에 대해서 말할 때 새들더러 무서우니까 피해서 다른 데로 날아가라고 붙인다는 그 맹금류?
“맹금류도 유리창에 부딪혀요?”
난 유리창에 부딪히는 건 무서운 맹금류를 피해 달아나는 작고 여린 새들뿐인 줄 알았다. 맹금류도 유리창에 부딪혀 떨어지고 또 다칠 줄은 정말 몰랐다.
“사냥하다 그런 거 같아. 참매는 원래 사냥을 잘해서 먹잇감을 절대로 놓치지 않거든.”
참매가 멧비둘기를 쫓고 있었고, 멧비둘기는 안 잡히려고 도망치다 거기 유리가 있는지도 모르고 부딪혔고, 그러자 온 힘을 다해 쫓아 날던 참매도 그대로 유리창에 부딪히고 만 것 같다는 선생님의 설명이었다.
우리는 탄식하며 입을 헤벌렸다. 쫓고 쫓기듯 날아가던 그 모습. 우리가 봤던 그 새들의 마지막 모습이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했다.
불현듯 가슴이 서늘해졌다.
“선생님, 참매도 죽어요?”
나는 내 눈 속에서 다시 날아오르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새를 보며 물었다. 땅바닥을 나뒹굴다 순간적으로 마주쳤던 그 인형 눈처럼 멍하면서도 매서운 눈동자가 나를 보고 있다⋯⋯.
“안 죽어.”
“정말 안 죽죠?”
“선생님이 그렇게 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나는 선생님 손을 덥석 붙잡고 말했다.
“선생님, 참매는 죽으면 절대로 안 돼요. 절대로요, 꼭 살아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