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번째
13. 새를 둘러싼 놀라운 진실
며칠 뒤 선생님은 새를 구하는 진짜 방법을 찾아냈다고 우리를 불렀다.
“가로 십 센티, 세로 오 센티의 직사각형을 그리는 거야.”
그러면서 대뜸 자를 대고 흰 종이에 직사각형을 그려서 가위로 잘라 건네주었다.
“이게 바로 새들을 구하는 황금 네모지.”
얼결에 받아 든 나는 그 네모난 종이를 떨떠름하게 쳐다보았다. 내 주먹도 들어가지 않을 만큼 이 작은 종이로 뭐 어쩌겠다고.
은서와 준구도 탐탁지 않아 하는 눈빛으로 선생님을 보았다. 여전히 우리는 속상해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흰 종이에 다시 직사각형을 그리고, 가로에 10cm, 세로에 5cm 그리고, ‘황금 법칙’이라는 글자를 써서 보여주었다.
“황금 법칙?”
우리는 합창이라도 하듯이 입을 모아 중얼거렸다.
“그래, 황금 법칙.”
선생님이 기다렸다는 듯이 설명을 시작했다.
“새들은 바로 요 네모보다 큰 공간만 있으면 거기로 지나가려고 하고, 이거보다 작으면 지나갈 수 없다고 생각해 다른 데로 날아간대. 그러니까 이 네모가 새를 구하는 황금 법칙이라고 할 수 있지.”
우리는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황금 법칙으로 간격을 띄워 가며 종이에 빼곡히 작은 점을 그렸다.
“바로 이런 식으로 투명한 유리창에 점들을 찍어 놓으면 새들은 여기로 지나갈 수 없다고 생각하고 다른 데로 날아가니까, 절대로 유리창에 부딪히지 않는다는 얘기야.”
선생님이 점 찍은 종이를 들어서 보여주었다. 종이에 가득한 검은 점들을 보니까 선생님 말씀이 조금 이해가 되었다.
“요 작은 사이로는 새들이 지나갈 수 없으니까 유리창에 점들을 이렇게 그려 놓으면 새들을 구할 수 있는 거라고요?”
내가 물었다.
“그래, 바로 그거야! 요만큼씩만 간격을 띄어 놓으면 되는 거였어.”
선생님이 손가락으로 점의 간격을 띄어 보여주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우리를 둘러보았다.
“그럼 우리가 붙인 독수리 스티커도 이만큼씩 띄어서 붙이면 되는 거예요?”
그렇게 물은 아이는 은서였다.
나는 은서 말대로 선생님이 말한 간격을 두고 독수리 스티커 붙인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우아,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아니, 그건 아니고, 그렇게 많이 붙이면 창밖이 안 보이게? 그런 커다란 버드 세이버를 붙이는 대신 이렇게 점박이처럼 해 놓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새들을 구할 수 있다는 거야. 이게 진짜 버드 세이버지.”
이번에 선생님은 버드 세이버를 미국 사람처럼 말하지 않았다.
“새들을 공부하면서 정말 많은 걸 알았어. 얘들아, 우리 사람들이나 육식동물들은 눈이 이렇게 앞에 있는데, 새들은 왜 양옆에 달려 있는지 아니?”
선생님이 주먹을 쥐어 각각 양쪽 관자놀이에 대며 물었다.
“포식자한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이렇게 양옆에 붙어 있는 거야. 우리 사람처럼 눈이 앞에 달려 있으면 뒤에서 쫓아오는 포식자가 안 보이니까. 그러니까 새들은 앞을 보면서 날아가는 게 아니고 양옆이나 뒤를 살피면서 날아가는 거라고 할 수 있지. 누가 잡아먹으려고 쫓아오면 빨리 도망가려고 말이야.”
“네?”
우리는 놀랐다.
“그런 데다 또 사람들이 보이지도 않는 투명한 유리까지 만들어 놨으니, 새들이 유리창에 잘 부딪힐 수밖에 없겠지. 엎친 데 덮친 격이지.”
새들이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크고 무서운 새들한테 안 잡아먹히려고 그렇게 눈치 보면서 날아다니는 줄은 몰랐다. 그저 하늘을 훨훨 날아다녀서 부럽기만 했는데.
“거기다 새들은 또 빨리 날거든. 시속 삼십에서 칠십 킬로미터로 나는데.”
“그게 얼마나 빠른 건데요?”
어느새 선생님 얘기에 빠진 내가 물었다.
“보통 시내에서 달리는 자동차 속도 정도?”
나는 아빠 차를 타고 시내를 달릴 때를 떠올렸다.
“너희, 이거 한번 봐 볼래?”
선생님이 마우스를 움직거려 컴퓨터 모니터에 해부도 같은 그림 하나를 띄워 보여주었다.
“이게 새의 뼈 구조인데, 여기 이 뼈를 보면, 속이 다 비어 있어. 그래야 날 수 있거든. 뼈가 꽉 차 있으면 무거워서 못 날아. 이렇게 속이 텅 비어 가벼워서 새들은 날 수 있지만, 그 때문에 유리창에 부딪히면 쉽게 부러지고, 그러면 또 그대로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마는 거지.”
“아!”
유리창에 부딪혔던 그때가 생각났다. 나는 유리창에 부딪혀서 이마가 깨질 듯 아팠지만, 며칠 지나니까 멀쩡하게 다 나았다. 그래서 새들도 유리창에 부딪히면 그냥 나처럼 이마에 혹이 났다가 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유리창에 부딪혔다고 새들은 왜 떨어져 죽을까?
궁금증이 이제야 풀렸다. 새들은 그럴 수가 없는 거였다. 자동차만큼 빠른 속도로 날다가 유리창에 부딪히면 속이 텅 빈 뼈가 부러지고, 또 그 높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니까 죽을 수밖에 없는 거였다.
새가 너무 불쌍했다.
가슴 아프게도 새의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인 얘기가 선생님 입에서 계속 흘러나왔다.
“놀라지 마라, 얘들아. 그렇게 유리창에 부딪혀 떨어져 죽는 새가 우리나라에서만 일 년에 팔백만 마리가 넘는대.”
우리는 팔백만 마리가 얼마나 많은지 가늠이 안 됐다.
“계산해 보면 하루에 이만 마리야, 이만 마리.”
선생님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지만 미국에 비하면 이건 약과야.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크잖니? 커다란 빌딩들도 엄청 많고. 미국에서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하게 많은 새들이 희생당하고 있다는데, 선생님도 이거 보고 깜짝 놀랐어. 거짓말 같아. 어떻게 이런 숫자가 가능한지.”
선생님은 잠시 입을 다물고 우리를 보면서 숨을 골랐다. 선생님은 조금 흥분한 것 같았다.
나와 은서와 준구는 긴장하여 선생님을 보았다. 무서운 영화를 볼 때처럼 괜히 심장이 두근거렸다.
“얘들아, 미국에서는 일 년에 많게는 무려 십억 마리나 되는 새들이 유리창과 충돌한다는구나.”
14. 마스크 없는 세상이 되려면
“짹째그르르.”
싱그러운 새소리에 눈이 떠졌다. 나는 새소리를 따라 침대에서 나와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새들이 날고 있었다.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크고 작은 여러 마리의 새들이 우리 아파트 단지 위를 날고 있었다. 저번에 우리 집에 왔던 비둘기도 저기에서 날고 있겠지?
선생님 말씀을 들은 뒤로는 날아다니는 새들이 그냥 지나쳐지지 않았다.
우리 아파트 단지에는 나무도 많고 뒤에 산도 있어서, 아침마다 점심마다 저녁마다, 그러니까 하루 종일 새들이 날아다니고 노래를 부른다. 전에는 아침에 새소리가 들리면 기분 좋을 때도 있었고, 시끄러울 때도 있었는데도 이제는 볼 때마다 걱정이 된다.
저렇게 씽씽 날다가 유리창에 부딪히면 어떡하지?
지금도 한 무리의 새들이 건물 사이를 서커스 하듯 날아가다가 위로 솟구쳤는데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십억 마리.
나는 선생님이 떨면서 말씀했던 십억을 숫자로 써 보았다.
1,000,000,000.
0이 저렇게나 많다.
몸이 오싹했다. 하늘에서 십억 마리의 새들이 비처럼 쏟아지는 상상을 하니까.
그런데 지구에 있는 모든 나라를 다 합치면 유리창에 부딪혀 떨어지는 새들은 그보다 훨씬 많을 게 아닌가!
선생님이 그랬다. 투명한 유리가 있는 건물이라면 시골이든 도시든 상관없이 새들한테는 다 위험하다고. 그런데 유리 없는 건물은 없으니까, 새들한테는 모든 곳이 위험했다. 저번에 우리가 우리 동네랑 옆 동네까지 가서 다 찾아봐서 안다.
사실 사람들이 여기저기 사람한테 필요한 건물을 짓느라 새들 사는 곳을 많이 없앴다. 원래 거기서 살던 새들은 사람에게 사는 곳을 뺏겼지만, 어디 갈 데도 없으니까 할 수 없이 사람들과 더불어 살게 되었다. 그런데 그 투명한 유리 때문에⋯⋯.
“미안해, 새들아.”
나는 날아가는 새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리고⋯⋯ 그날 선생님은 또 하나의 진실 하나를 알려 주었다. 아주 놀라워서 듣는 순간 그대로 가슴에 박혔다.
“그러니까 코로나도 다 우리가 새들 사는 데를 빼앗아서 생긴 거였어.”
“네에, 뭐라고요?”
“정말이에요, 선생님?”
나는 물론이고, 은서와 준구도 깜짝 놀랐다. 이 지겹고 나쁜 코로나가 다 우리가 새들 사는 데를 빼앗아서 생긴 거라니.
머리가 멍했다. 불현듯 그럼 새들이 우리한테 복수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이 차분히 말씀을 이어 갔다.
“원래 자연에는 코로나 같은 바이러스가 엄청 많대. 그런데 우리 사람들이 자꾸 나무를 베어 숲을 없애고 그 자리에 빌딩들을 지어 대니까 자연에 있던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넘어와서 이렇게 퍼져버린 거라는구나. 그래서 매일 이렇게 답답하게 마스크를 끼고 살게 된 거고. 결국 이 모든 건 우리 사람들 탓이지.”
세상에 맙소사.
코로나 때문에 학교에도 잘 못 가고, 친구들도 못 만나고, 무엇보다 밖에 나가서 신나게 놀 수 없는 게 제일 속상했는데, 그게 다 우리 사람들 탓이었다니.
나와 은서와 준구는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한동안 말을 잃었다.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나무들을 베어 내고 숲을 없애면서 빌딩들을 지어 대는 건 어른들 아닌가.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무엇보다 자연을 보호하는 일이야. 더 이상 자연을 훼손하지 말고 새들 같은 야생동물들이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 주는 게 바로 우리 사람들을 보호하고 지키는 일이지. 그렇게 해야만 우리는 답답한 이 마스크를 벗어버리고 예전처럼 자유롭게 살 수 있어.”
“자연을 보호하면 된다고요?”
나는 어리둥절하여 되물었다. 선생님이 내놓은 해답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거였으니까.
“그거라면 저는 잘하고 있는데요? 저는 꽃도 안 꺾고요, 잔디밭에도 안 들어가거든요.”
준구가 의기양양 말하고는 선생님을 빤히 보았다.
“저도요, 전 쓰레기 아무 데나 안 버려요”
은서도 수업 시간에 대답하듯 손까지 들고 말했다.
선생님이 준구와 은서를 번갈아 보고 씁쓸하게 말했다.
“그래, 너희가 이미 그렇게 잘하고 있다는 거 선생님도 잘 알아. 문제는 어른들이야. 선생님 같은 어른들⋯⋯.”
선생님은 그러면서 굉장히 미안해하는 눈빛으로 우리를 보았다.
“짹째그르르.”
또 어디선가 들려온 새의 노랫소리가 생각에 빠진 나를 깨웠다.
새 한 마리가 휙! 앞을 지나갔다.
나는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새가 날아간 쪽을 바라보았다. 거기 푸르고 드넓은 하늘에서 수십 마리의 새들이 신나게 뛰어놀고 있었다.
“너희를 꼭 지켜 줄게.”
나는 새들을 보며 굳게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