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번째
11. 3 대 3
놀랍게도 공원에 이대현이 있었다. 먼발치에서도 한눈에 그 애를 알아본 나는 반가운 마음에 대현이를 부르며 그쪽으로 달려갔다.
“야, 이대현!”
“야, 현승아!”
뒤에서 느릿느릿 따라오던 준구가 덩달아 나를 쫓아 뛰었다.
나는 이대현이 있는 바로 앞에 멈춰 서서 반갑게 알은체를 했다.
“너 여기서 뭐 해?”
맨날 학교에서만 보다가 밖에서, 그것도 옆 동네에서 만나니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긴 나뭇가지로 땅바닥의 무언가를 찌르고 있던 이대현은 갑자기 나타나 친한 척을 하는 나를 보고 눈썹을 찡그렸다. 옆에 임정모랑 한동권이 같이 있다는 게 그제야 보였다.
“아, 너희 뭐냐?”
“뭐 여기까지 왔어?”
임정모와 한동권이 못마땅하다는 눈으로 나와 내 뒤를 힐끗대면서 천천히 일어났다. 정모는 마스크를 턱에 걸치고 있었고, 동권이는 아예 끼지도 않았다.
준구가 나를 쫓아 뛰어오다가 이대현과 아이들을 보고 뛰기를 멈추며 주뼛주뼛 내 옆으로 왔다. 그리고 이대현이 방금까지 찌르고 있던 게 무엇인지 알아보고는 비명을 질렀다.
“으악.”
준구는 뒤따라오는 은서를 향해 두 팔을 활짝 벌려 앞을 가로막았다.
“은서야, 보지 마.”
이대현이 그런 준구를 보고 콧방귀를 뀌었다. 정모와 동권이는 가소롭다는 듯 준구를 흘겨보았다.
나도 대현이가 찌르고 있는 게 뭔지 알아보았다.
“안 돼, 하지 마, 대현아.”
죽은 새였다. 몸은 바짝 말라 있고, 깃털도 반 이상은 빠져 있어서 언뜻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그건 분명히 새였다.
“네가 뭔데 하지 말래?”
임정모가 톡 나서서 눈을 부라렸다.
“너네 그냥 빨리 가.”
한동권이 턱짓하며 불량스럽게 말했다.
준구가 가로막았어도 은서는 바닥에 있는 게 죽은 새라는 걸 알아보고 금세 울먹거렸다.
“어떡해, 불쌍해.”
“아이, 상관 말고 그냥 가라니까!”
동권이가 버럭 신경질을 내며 인상을 썼다.
“왜 여기까지 쫓아와서 상관이야?”
“그 새 묻어 줘야 해.”
내가 말했다.
“네가 뭔데 우리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정모가 거칠게 쏘아붙이며 내 쪽으로 다가와 당장이라도 날릴 듯 주먹을 들이댔다.
순간 움찔하며 난 뒷걸음질 쳤다.
“새가 너무 불쌍해.”
은서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아주 또렷이.
“이거 우리가 발견한 거야.”
“그러니까 우리 거라고!”
“왜 이것도 선생님한테 이르려고?”
동권이와 정모가 이죽거리며 나와 준구에게 눈을 부라렸다. 그리고 은서에게는 한심하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대현이가 나뭇가지로 죽은 새를 건드리며 말했다.
“이거 되게 오래된 거야.”
가볍게 툭 건드렸는데도 새는 낙엽처럼 팔랑 옆으로 밀려갔다.
“그냥 이렇게 길바닥에 버려져 있었어.”
“그러니까 묻어 줘야지.”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나는 제법 당당하게 말했다.
한동권이 말로 해서는 안 되겠다는 듯 정모 옆으로 와서 척 팔짱을 끼고 나를 노려보았다. 임정모는 허리에 양손을 올리고 눈에 힘을 주었다. 이대현이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휙! 던지고 일어나자 한동권과 임정모가 사이를 좀 벌려 주었다.
이대현이 천천히 그 사이로 들어왔다.
나는 내 앞에 패를 짓고 선 그 애들을 보았다.
6학년 형들한테도 밀리지 않을 만큼 덩치가 큰 대현이. 내가 ‘싸나이’ 중의 ‘싸나이’라고 생각했던 그 애. 그다음으로 큰 임정모랑 한동권. 언제나 강아지처럼 대현이를 졸졸 따라다니는 애들.
그리고 우리. ⋯⋯반에서 키도 덩치도 제일 작은 남자인 나, 제일 작은 여자인 은서, 키는 나보다 쪼끔 크지만 반에서 제일 뚱뚱한 준구.
준구가 슬금슬금 눈치를 보면서 나한테 바짝 붙어 섰다. 은서는 눈물을 글썽이며 죽은 새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3 대 3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온몸에 힘을 주었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땅바닥을 움켜쥘 듯이 열 발가락에 힘을 넣었다.
조금도 밀리고 싶지 않았다. 내 옆에는 준구가 있었고, 그리고 은서가 있었다. 친구들을 지켜야 했다.
나는 대현이를 뚫어져라 마주 보았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그냥 가자.”
대현이가 눈을 피하며 저쪽으로 몸을 돌렸다.
대현이의 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던 정모와 동권이가 “어?” “왜?” 하며 불만스레 쳐다보았지만, 이내 대현이 뒤를 졸졸 쫓아갔다. 얼마쯤 가다가 정모와 동권이는 뒤돌아 우리에게 빈주먹을 날렸다.
“아이씨, 까불고 있어.”
준구가 옆에서 작게 웅얼거렸다.
한 덩어리가 되어 멀어지는 대현이들을 나는 지켜보았다. 완전히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힘을 풀지 않고.
마침내 그 애들이 안 보이게 되자 맥이 탁 풀리며 다리가 휘청거렸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똑바로 섰다.
우리는 돌멩이랑 나뭇가지를 주워다 나무 아래에 땅을 팠다. 얼마큼 파지자 거기에 새를 묻고 흙과 돌멩이로 잘 덮어 주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12. 버드 세이버는 버드 세이버가 아니야!
나는 우리 학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학교에 갔더니 굉장한 일이 일어나 있었다.
“새가 유리창에 부딪혀 떨어져 죽었대.”
“새 부딪힌 자국이 유리창에 딱 찍혀 있더래.”
“그럼 저 독수리 스티커는 뭐야? 저거 붙이면 안 부딪힌다며?”
“근데 거기 피 묻은 깃털도 붙어 있대. 장난 아니지?”
“와, 우리도 보러 가자.”
그렇게 웅성대며 아이들이 몰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새벽에 경비실 아저씨가 땅바닥에 널브러진 새를 발견했고, 출근하는 우리 담임 선생님에게 갖다주었다. 담임 선생님은 곧 새가 부딪힌 유리창을 찾아냈다. 4층 6학년 1반 교실이었다.
등교하던 나도 웅성대는 아이들에 휩쓸려 그대로 4층으로 향했다.
교감 선생님과 6학년 선생님이 4층으로 향하는 길목과 계단을 지키고 있었다.
“너희 이렇게 몰려다니면 안 된다는 거 알지?”
“고대로 교실로 돌아가!”
선생님은 새를 쫓듯이 두 팔을 휘휘 내저으며 우리를 내몰았다.
4층을 보겠다고 벌떼처럼 모여든 아이들이 뒤로 물러나며 애원했다.
“에이, 선생님.”
“저희 이렇게 멀리 떨어져서 가면 되잖아요.”
아이들은 뒷걸음질 치고 서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서려고 했지만 몰려온 아이들이 많아서 잘 되지 않았다.
“안 돼. 그리고 너, 마스크 제대로 써야지?”
선생님은 엄한 얼굴로 고개를 젓고, 아이들을 일일이 가리키며 훈계를 늘어놓았다.
“선생님 전 6학년인데요?”
어떤 형이 말하자 선생님은 얼굴을 확인한 뒤에야 올려 보내 주었다.
아이들은 버티며 몇 번 더 졸랐다. 선생님은 끝내 허락해 주지 않았다. 아이들은 돌아가야 했다.
나도 교실로 왔다.
“어떻게 된 거야?”
준구가 나를 보자 물었다.
“우리가 그 형네 반에도 독수리 붙였잖아? 근데 새가 왜 부딪혀?”
내가 묻고 싶은 말이었다. 4층 6학년 1반 창문에 버드 세이버를 붙인 건 바로 나였으니까.
‘혹시 내가 잘못 붙인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버드 세이버가 붙은 창문에 새가 부딪힐 리는 없었다.
소식을 들은 반 아이들이 쑥덕거리며 나를 흘끔거렸다.
저번에 우리는 반 애들에게 큰소리 땅땅 쳤었다. 이제 우리 학교에서는 절대로 새들이 유리창에 부딪히지 않아. 우리가 독수리 스티커 다 붙였거든. 저거 붙이면 새를 살릴 수 있어!
그랬는데 새가 부딪혀 죽었다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새 죽은 게 내 탓 같았다.
나는 6학년 1반 교실 창문에 붙어 있다는 피 묻은 깃털을 끝내 보지 못했다. 선생님 몰래 쉬는 시간에 올라가 봤지만, 깃털은 이미 청소해서 없었다.
잔뜩 실망한 나에게 한 6학년 형이 사진을 찍어 뒀다며 보여주었다.
사진엔 정말로 깃털이 유리창에 붙어 있었다. 애들 말대로 피가 묻어 있지는 않았지만, 깃털만으로도 나한테는 충격이었다.
우리는 곧바로 선생님에게 갔다.
“선생님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독수리 머리 바로 옆에 새가 부딪힌 자국이 있고, 바로 거기에 깃털이 붙어 있었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독수리가 있는데 어떻게 새가 날아와요?”
“맞아요, 선생님이 버드 세이버 붙이면 새들이 무서워서 안 날아온다면서요.”
준구와 은서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따져 물었다.
“그게 말이다, 선생님도 이제야 알았는데⋯⋯.”
선생님이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새들이 버드 세이버를 무서워해서 피하는 게 아니라, 그냥 앞을 가로막는 하나의 장애물로 아는 거라는구나.”
우리는 선생님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선생님은 어색하게 목을 가다듬었다.
“그러니까 새들이 독수리나 매 같은 맹금류 스티커를 진짜 살아 있는 독수리나 매로 알아보는 게 아니라, 그냥 앞에 뭐가 있으니까 피해서 다른 데로 날아가는 거라는구나. 하긴 유리창에 딱 붙어서 움직이지 않으니까 아무리 새라도 속지 않겠지⋯⋯.”
“네에?”
우리는 모두 놀랐다.
“그래서 버드 세이버가 안 붙은 사이로 새들이 지나가려고 날아든다는 거야, 거참.”
“말도 안 돼!”
어이가 없었다. 왜 내가 붙인 독수리의 매서운 눈매 옆에 새의 깃털이 붙어 있는지 그제야 이해가 갔지만, 이건 말도 안 되었다.
“그럼 저희가 붙인 그 버드 세이버 다 소용없는 거란 말이에요?”
우리가 그때 얼마나 힘들게 교실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버드 세이버를 붙였는데, 또 다 붙인 다음에는 교실 창문에서 힘차게 나는 독수리를 보며 얼마나 뿌듯해했는데, 그런데 그게 다 쓸데없는 짓이었다니.
“너무해요.”
나는 너무 속상해 눈물이 다 났다.
“그런데 왜 저희한테 그거 붙이라고 하셨어요?”
“새들한테 하나도 도움도 안 되는데요?”
“우리는 새들을 구하는 건 줄 알았단 말이에요.”
준구도 은서도 완전히 속았다며 원망 섞인 푸념을 쏟아 놓았다.
‘선생님, 순 엉터리.’
나는 속으로 선생님을 욕했다.
선생님은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미안해, 얘들아, 솔직히 선생님도 새들에 대해 잘 몰랐어.”
선생님은 좀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음이 너무 앞서서⋯⋯. 그래서 선생님은 앞으로 새에 관한 공부를 제대로 할 거야. 근데 혹시 너희 새를 구하자는 마음까지 다 사라져버린 건 아니지?”
선생님이 그럼 안 된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우리를 보았다.
우리는 화나고 속상한 마음 가득하여 원망스레 선생님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