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번째
7. 새 구하기 대작전 새 요원 조은서
“나도 끼워 주면 안 돼?”
학교 건물 주변을 둘러보고 다닌 지 며칠쯤 됐을 때였다. 우리 반 여자애 하나가 주뼛주뼛 다가오더니 이렇게 물었다.
“나도 새들 도와주고 싶은데.”
준구랑 내가 ‘새 구하기 대작전’을 펼치는 걸 봤다면서 자기도 끼워 달라는 얘기였다.
“어, 조은서 네가?”
나는 조은서를 낯설게 쳐다봤다.
나는 조은서랑 별로 안 친했다. 은서는 한 번도 먼저 알은체한 적 없고, 뭐라고 말을 걸면 겁이라도 먹은 것처럼 주뼛주뼛 뒤로 내빼곤 했다. 하도 말이 없고 조용한 아이여서 우리 반에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모를 정도였다.
나는 말똥말똥 눈을 빛내며 쳐다보는 은서에게 어쩌면 좋을지 몰랐다.
“그래, 좋아!”
우물쭈물하는 나 대신 준구가 톡 나서서 대답했다.
“조은서, 너도 같이하자.”
준구는 왠지 신이 나서 말했다.
조은서의 눈이 기쁨으로 가득 찼고, 얼굴엔 싱글벙글 웃음이 흘러넘쳤다. 신기하게도 은서가 짓는 미소는 마스크를 뚫고 나와서 내 눈에 다 보였다.
“고마워!”
은서가 두 손을 수줍게 흔들며 말했다. 은서가 그렇게 크고 명랑하게 말하는 목소리는 처음 들었다.
“은서야말로 우리 ‘새 일병 구하기’에 제격인 요원이지.”
선생님은 조은서가 우리와 함께 새 구하기 요원이 된 걸 아주 잘했다며 칭찬해 주었다.
“조은서 양, 우리 새 일병 구하기 요원이 된 걸 환영하네.”
선생님이 영화에 나오는 비밀 첩보원 대장님처럼 말했고, 나와 준구는 키득키득 웃으며 손뼉을 쳤다. 짝짝짝!
은서가 부끄러운 듯 배시시 웃으며 좋아했다.
“마침 딱 맞춰 택배도 왔지 뭐냐.”
선생님은 택배 상자를 가지고 와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짜잔!”
상자 안에는 독수리 스티커가 한가득 들어 있었다. 양 날개를 활짝 펼친 독수리 스티커는 스케치북만큼 컸다.
“와, 이거예요?”
“독수리 대따 크다.”
“그래, 이게 바로 버드 세이버란다. 버드 세이버.”
선생님이 하나씩 꺼내 보여주면서 또 미국 사람처럼 말했다.
선생님은 우리와 함께 붙이겠다며 이 버드 세이버를 주문했었다.
나는 처음 보는 ‘버드 세이버’를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커다란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가는 독수리, 금방이라도 병아리를 낚아챌 것처럼 날카로운 발톱을 내밀고 있는 독수리, 매서운 눈빛으로 양 날개를 위로 치켜든 독수리⋯⋯.
“진짜 독수리 같아.”
“정말 새들이 이거 보면 무서워서 도망가겠다.”
나는 이 버드 세이버가 아주 맘에 들었다. 독수리는 정말 멋졌다.
준구는 스티커를 껴안고 행복에 겨운 표정으로 냄새를 맡다가 슬쩍 마스크를 내려 혀를 대고 맛을 보았다.
“어, 좋아.”
나도 스티커를 코에 대 보았다. 새로 산 장난감 상자를 뜯었을 때처럼 기분 좋은 냄새가 났다.
은서는 이게 다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몰라 멀뚱멀뚱 보고 있었다.
나는 은서에게 독수리 스티커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맹금류⋯⋯ 맹금류란 독수리나 매 같은 어쩌고저쩌고⋯⋯ 이 스티커가 버드 세이버인데, 버드 세이버란 새를 구하는 어쩌고저쩌고, 버드 세이버는 영어야, bird saver.
마지막 두 단어는 나도 미국 사람처럼 혀를 한껏 굴리며 말했다.
내 설명을 귀담아듣는 은서의 눈은 점점 커다래지며 반짝거리고 있었다.
“와!”
이윽고 마스크를 뚫고 탄성이 뿜어져 나왔다.
은서가 대단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은서의 그 까맣게 반짝이는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별안간 내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더워지면서 머리에서 땀이 나고, 어쩐지 숨쉬기도 좀 힘들어지고, 그리고 또 어지러운 느낌도 막 들고⋯⋯.
나는 허둥지둥 눈길을 피했다.
선생님이 나를 보고 픽 웃었다. 마스크에 가려져 안 보였지만, 선생님은 분명히 나를 보고 웃었다.
준구는 여전히 이 스티커, 저 스티커를 껴안으며 킁킁 정신없이 냄새를 맡고 있었다.
8. 버드 세이버를 붙이는 가장 좋은 장소
우리는 선생님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여기서 이 문 좀 봐 볼래?”
선생님은 급식실 앞에 멈춰 서서 출입문을 가리켰다.
“저 건너편 너머가 보이니?”
선생님이 가리키는 손길을 따라 우리는 투명한 급식실 유리문 안을 들여다보았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식탁 위에 뒤집어엎어 놓은 의자들만 보였다.
“아무도 안 보이는데요?”
“청소했나 봐요.”
“어?”
저쪽 맞은편이 투명한 유리로 돼 있고, 그 너머가 그대로 보여서 내가 말했다.
“선생님, 저기 뒤에 있는 산이 다 보이는데요?”
“그렇지?”
“어디 어디.”
준구가 나를 따라 목을 빼고 유리문 너머를 보았다. 은서는 깡충깡충 발돋움했다.
“아, 보인다.”
“나도 보이는데?”
우리 셋은 저쪽 유리문 너머로 무럭무럭 자라 있는 초록 나무들을 보았다. 투명 건물처럼 저쪽이 다 보인다는 게 새삼 신기했다.
“근데 왜요?”
“저 나무가 왜요?”
우리는 멀뚱멀뚱 선생님을 보았다.
선생님이 양손 엄지를 서로 엇갈려 걸고 새 모양을 만들었다. 꼭 그림자놀이 할 때처럼. 그리고 목소리를 꾸며 말했다.
“어, 저기 내가 좋아하는 나무들이 많이 있네? 저쪽으로 날아가서 앉아야지.”
그러면서 겹친 두 손을 날개처럼 펄럭여 유리문까지 날아갔다.
“쿵!”
그러나 새는 유리문에 부딪혀 그대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아!”
우리 셋은 똑같이 안타까워 소리쳤다.
은서가 심각한 표정으로 선생님에게 뛰어갔다.
“선생님, 괜찮아요?”
은서는 정말로 새가 부딪히기라도 한 양 선생님 손을 살펴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괜찮아, 은서야.”
선생님은 다시 새 모양을 만들어 새가 무사히 하늘로 날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저번에 선생님이 여기서 새를 발견했었거든.”
하늘 저 너머를 올려다보고 있던 우리는 선생님이 가리키는 땅바닥을 일제히 내려다보았다.
“아마 여기서 저 산으로 날아가려다 부딪혔을 거야.”
우리는 또 한꺼번에 유리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유리가 있는지도 모르고 여기로 지나가려고 했던 거지.”
“아이참.”
은서가 속상해하며 발을 탁 굴렀다.
“그 새도 붉은머리오목눈이였어요?”
준구가 아는 체 물었다.
“아니, 멧종다리라는 새였어.”
“멧종다리요?”
“어떻게 생겼는데요?”
선생님이 휴대전화로 멧종다리 사진을 보여주었다.
“와, 귀엽다.”
“참새 같애.”
“참새보다 더 예쁜데?”
“근데 얜 어떻게 됐어요?”
그 물음엔 대답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양쪽이 다 유리창으로 돼 있어서 새들이 착각하기 딱 좋은 곳에다 버드 세이버를 붙일 거야.”
선생님은 버드 세이버 하나를 급식실 유리문 위쪽에 갖다 대 보였다.
“여기는 바로 여기쯤 붙일 거고.”
“선생님! 그거 제가 붙이면 안 돼요?”
불쑥 소리친 아이는 나였다.
“그거 제가 붙이고 싶어요.”
나는 오른손을 번쩍 치켜든 채 성큼성큼 나아가 선생님이 유리문에 대고 있는 버드 세이버에 그대로 갖다 대 보았다.
“보세요, 저 손 이렇게 닿잖아요!”
나는 버드 세이버에 닿은 내 손을 자랑스레 쳐다보며 말했다.
“응? 현승이 네가 붙이고 싶다고?”
선생님은 까치발을 하고 한껏 손을 뻗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네 선생님, 저 꼭 붙이고 싶어요. 제가 붙이게 해 주세요!”
나는 내가 직접 버드 세이버를 붙이고 싶었다. 내가 붙인 버드 세이버로 새를 살리고 싶었다.
준구도 손을 번쩍 들고 다가왔다.
“선생님 저도요.”
준구가 내 옆에 딱 붙어 서서 발돋움하며 위로 손을 뻗었다.
“저도 손 닿아요, 선생님.”
“선생님! 저도 붙이고 싶어요.”
은서마저도 우리 옆에 나란히 서서 위로 손을 뻗었다.
선생님이 우리 셋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올망졸망 유리문에 달라붙어서 낑낑대며 발뒤꿈치를 세우고 오른손은 위로 한껏 뻗은 채 “제발요” 하면서 애원하는 우리를.
“원 녀석들도, 알겠다.”
선생님이 웃으며 어깨로 급식실 문을 밀었다. 그런데 문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손잡이를 잡고 흔들어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이런 잠겼잖아?”
급식실에서 의자를 가져오려고 했던 선생님은 난감하게 웃었다. 우리가 까치발을 해서 손이 닿기야 하지만, 그렇게 해서 스티커를 붙이기란 힘들었다.
“어떡하지?”
선생님이 고개를 흔들자 은서가 대뜸 말했다.
“선생님이 안아서 올려 주시면 안 돼요?”
선생님은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올려다보고 있는 은서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나와 준구를 차례대로 보았다. 눈에서 미소가 사라지고 있었다.
우리 반에서 키도 덩치도 제일 작은 나와 은서. 준구는 그다음으로 크지만 몸무게는 쫌, 아니 쫌이 아니라 아마도 제일 많이⋯⋯.
준구가 거북이처럼 목을 옴츠리며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전 안 붙여도 돼요.”
잘못한 아이처럼 뒷걸음질 치면서는 이렇게 말하는 준구.
“아니, 안 붙일래요.”
⋯⋯선생님이 돌연 짝짝! 손뼉을 쳤다.
“자자, 얘들아!”
크게 헛기침하더니 허둥지둥 덧붙였다.
“흠흠! 너희도 알다시피 코로나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마스크도 쓰고 또 거리두기도 해야 하잖아? 그래서 선생님이 너희를 안아서 올려 주고 싶어도 그러지를 못해요. 이눔의 코로나만 아니었어도 선생님이 너희 셋은 한꺼번에 으랏차차! 들어 올릴 수 있는데 말이야.”
선생님은 매우 아쉽다는 듯 두 손을 들어 올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미안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안 되겠구나.”
한 번 더 강조하며 고개를 가로젓는 선생님이었다.
실망한 우리는 선생님이 버드 세이버를 붙이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이쪽 문에 다 붙인 선생님을 따라 건물을 빙 돌아 반대편 유리문으로 갔다.
방금 저쪽 유리문에 붙인 독수리가 이쪽에서도 훤히 잘 보였다. 선생님은 또 한 마리의 독수리를 이쪽 유리문에 붙였다. 서로 어긋나 보이게 옆에다. 그랬더니 두 마리의 독수리가 날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다음 선생님을 따라 교실로 올라갔을 때 우리는 하마터면 괴성을 지를 뻔했다. 우리가 직접 버드 세이버를 붙일 수 있게 됐으니까.
나는 아까부터 내가 붙이고 싶었던 독수리를 들고 선생님이 알려 준 창문으로 다가갔다. 책상 위에 올려 준 의자 위로 올라가자, 선생님이 넘어지지 않게 의자와 내 다리를 잡아 주었다. 나는 높은 곳에 우뚝 서서 당당하게 버드 세이버를 붙였다.
준구와 은서도 직접 고른 독수리를 정성껏 붙였다. 우리는 교실마다 다니며 버드 세이버를 붙여 나갔다. 손으로 꾹꾹 눌러 가며 조금도 삐뚤어지지 않게 잘 붙였다. 선생님이 조수처럼 옆에서 우리를 도와주었다.
버드 세이버를 다 붙이고 우리는 운동장으로 나왔다.
“와 멋지다.”
운동장에서 올려다보는 우리 학교는 굉장히 멋졌다. 군데군데 창문에서 날개를 활짝 편 독수리가 힘차게 날고 있었다.
“우리 학교 독수리 학교 같아.”
독수리가 지켜 주는 우리 학교. 이제 새들은 우리 학교에서는 안심이었다.
나는 우리가 해낸 일이 뿌듯해서 가슴이 쫙 펴졌다.
준구와 은서의 얼굴에도 자랑스러움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