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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은경 Oct 25. 2024

날아라, 새들아!

세번째

5. 버드 세이버


나는 집에 와서 붉은머리오목눈이, 라는 새에 대해 알아보았다. 컴퓨터에 나온 사진을 보니까 생김새가 참새랑 아주 비슷했다. 붉은머리오목눈이라는 이름도 처음 들었다.

하지만 두 사진을 나란히 놓고 보니 참새랑 붉은머리오목눈이는 이름만큼이나 꽤 다르게 생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참새를 봤다가 붉은머리오목눈이를 봤다가 하면서 두 새의 생김새를 눈에 넣었다.

그런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담임 선생님이 나랑 준구를 불러 이렇게 물었다.

“너희, 새들이 왜 하늘을 날다가 떨어지는지 아니?”

뜬금없는 질문에 나는 어리벙벙 눈을 깜빡였고, 준구는 즉시 되물었다.

“새들이 하늘에서 떨어진다고요? 왜요?”

그런 말은 태어나서 처음 듣는다는 표정이고 말투였다.

“날개가 있잖아요? 새는 날개가 있는데 하늘에서 왜 떨어져요? 훨훨 잘만 날아다니는데요?”

준구는 양팔을 날개처럼 퍼덕거리는 시늉까지 해 보였다.

준구 말이 맞는다. 새들은 날개가 있어서 언제나 멋지게 하늘을 날아다닌다. 나도 날개가 있다면 하늘을 멋지게 날 거다.

“그렇지? 날개가 있어서 훨훨 자유롭게 날아다니지?”

선생님이 순순히 준구 말을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새처럼 하늘을 나는 내 모습을 그려 보았다. 하늘을 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내 가슴은 뛴다.

“그런데 말이다, 하늘을 훨훨 날아가는 새들도 종종 하늘에서 떨어진단다.”

선생님은 금세 또 딴말하셨다.

“에이, 선생님 새는 날개가 있는데 왜 자꾸 떨어진다고 그러세요?”

준구가 못 미덥게 선생님을 쳐다봤다.

“선생님이 방금 아니라고 그러셨잖아요?”

나는 자꾸 이랬다저랬다 하는 선생님이 이상했다.

“말도 안 돼요.”

“그렇지, 말도 안 되지?”

선생님이 싱겁게 물러나며 빙그레 웃었다.

“근데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어. 너희도 이미 봐서 다 알고 있고.”

“네?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저희도 다 알고 있다고요?”

“우리가 뭘 알지?”

준구와 나는 서로 물어보았다. 너 알아? 나 모르는데? 준구도 나도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붉은머리오목눈이 말이야.”

선생님이 말했다.

“저번에 운동장에서 발견한 그 참새인 줄 알았던 붉은머리오목눈이가.”

바로 하늘을 날아가다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유리창에 부딪혀서 말이야.”

“유리창에 부딪혀서 떨어졌다고요?”

선생님 말씀은 이해할 수 없는 거였다.

“거기 어디에 유리창이 있다고 부딪혀요? 그리고 유리창이 있으면 피해서 날아가면 되는데 왜 부딪혀요?”

내가 반문했다.

선생님이 두 손을 들어 오른손으로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다 왼 손바닥에 부딪히는 동작을 해 보였다.

“새들이 날아가다가 여기 유리창이 있는지도 모르고 이렇게 쾅! 하고 부딪히면서 바닥으로 쿵! 하고 떨어진 거지.”

순간 나도 모르게 후다닥 이마를 가렸다.

“유리가 투명해서 사람들도 종종 거기 유리가 있는지 잘 모르는데 새들은 더 그렇겠지? 유리는 사람들이 만든 거니까 유리라는 걸 더 모를 테고, 그래서 그냥 뻥 뚫린 하늘인 줄로만 알고 신나게 날아가다가 그렇게 부딪히는 거야.”

오, 이런 세상에! 나랑 똑같잖아?

저번에 유리 벽이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가려다 쾅! 부딪쳤던 게 생각났다. 새삼 이마가 욱신, 쑤셔 오는 것 같았다.

“그럼 그 붉은머리오목눈이도 유리 벽이 있는지 모르고 날아가다가 부딪힌 거예요?”

“그래, 체육관 유리창에 부딪혀서 떨어진 게 틀림없어.”

“아!”

그제야 선생님 말씀이 이해되었다.

“그래서 새들 부딪히지 말라고 유리창에 맹금류 스티커 같은 걸 붙인다는데, 그걸 영어로 버드 세이버라고 한대. 우리도 그 버드 세이버 붙이려고, bird saver.”

선생님이 마지막 단어를 미국 사람처럼 혀를 한껏 굴리며 말했다.

준구가 킥킥거렸다.

“맹금류가 뭐예요, 선생님?”

내가 물었다.

“맹금류란 독수리나 매처럼 육식하는 조류를 말해. 작은 동물이나 다른 새를 사냥하는 사나운 새들이지.”

“그럼 그 사나운 새 스티커를 보고 새들이 무서워서 다른 데로 날아가라고 그러는 거예요?”

“그렇지, 잘 이해했구나, 현승아.”

아빠랑 차 타고 가면서 고속도로 투명한 방음벽에 그려진 독수리 같은 새 그림 본 기억이 난다. 그게 버드 세이버였구나. 그냥 멋있으라고 붙여 놓은 건 줄 알았는데.

“어때? 선생님 좀 도와줄래?”

선생님은 우리 학교 유리창에 버드 세이버를 붙여서 다시는 새들이 유리에 부딪혀서 떨어지는 일이 없게 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 붉은머리오목눈이 말고도 이전에 종종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새를 발견한 적이 있었다고.

“새를 구하는 일이지.”

“네, 선생님, 저 할게요!”

나는 오른손을 번쩍 치켜들며 큰 소리로 외쳤다.

“저 꼭 하고 싶어요!”

“저도요, 선생님! 저도 하고 싶어요.”

준구도 나 못지않은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하면서 오른손을 치켜들었다.

선생님이 너무 큰 소리에 깜짝 놀랐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보다가 하하, 웃었다.          



6. 새 구하기 대작전     


선생님은 우리 임무를 ‘새 일병 구하기’라고 했다. 선생님이 좋아하는 영화 제목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했다.

“새 구하기 대작전 뭐 그런 뜻이지.”

“새 구하기 대작전이요?”

뭔가 그럴듯해 보였다. 나는 ‘새 구하기 대작전’이라는 말이 맘에 들었다.

선생님이 우리에게 첫 번째 임무를 주었다.

“너희는 우선 학교 건물 주위를 샅샅이 훑어봐 줘. 혹시 또 새가 떨어져 있지 않나? 특히 유리창 아래쪽을 꼼꼼히 살펴보도록.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나와 준구는 군인처럼 씩씩하게 손바닥을 쫙 펴서 눈썹 옆에 착! 갖다 붙였다. 선생님도 대장님처럼 거수경례해 주었다.

우리는 쉬는 시간마다 밖으로 나와 건물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쉬는 시간이 너무 짧아 조금 볼라치면 수업 종이 울려서 그만 들어가야 했다.

우리는 새로이 작전을 짰다.

다음 날 우리는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학교에 도착했다. 우리는 곧바로 붉은머리오목눈이를 발견했던 그 체육관으로 갔다.

체육관 앞에 서서 올려다보니 유리 창문에 그때처럼 하늘이 파랗게 비쳐 반짝이고 있었다.

준구랑 나는 이 체육관 유리창 아래쪽 땅바닥부터 훑기 시작했다.

“너희 거기서 뭐 하니?”

저쪽에서 경비실 아저씨가 소리쳤다. 아저씨는 우리 쪽으로 다가와 땅바닥을 두리번거렸다.

“여기서 뭐 잃어버렸어?”

아저씨는 우리가 잃어버린 어떤 물건을 찾는다고 생각했다.

“근데 너희 왜 오늘 학교 왔어? 일 학년은 오늘 콤퓨타 수업하는 날 아냐?”

아저씨가 우리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저희 일 학년 아니거든요!”

대뜸 발끈하며 소리친 건 나였다.

“삼 학년이거든요!”

나는 맨날 어른들이 날 보고 일 학년이라고 말하는 게 정말 불만이었다. 몇 학년인지 물어보지도 않고 키만 보고 일 학년이라고 단정해버린 아저씨가 정말 미웠다.

“맞아요, 저희 삼 학년이란 말이에요.”

준구도 볼멘소리를 쏟았다.

“맨날 우리한테 일 학년이래⋯⋯.”

준구도 일 학년이라는 소리를 제일 듣기 싫어했다. 그건 마치 놀리는 말처럼 들렸다.

“어어, 그래. 너, 너희 삼 학년이구나, 미안해.”

당황한 아저씨는 말을 더듬으며 우리에게 사과했다.

“근데 여기서 뭐 해? 뭐 찾아?”

“새요.”

“저희 임무 수행 중이거든요.”

“새? 임무 수행?”

아저씨가 되물었다.

“저희는 새 구하기 대작전 요원이거든요!”

준구가 삼 학년답게 멋지게 말했다.

“어? 뭔 요원?”

“아저씨 혹시 여기서 새 떨어진 거 보신 적 있어요?”

아저씨는 항상 우리보다 일찍 오고 늦게까지 학교에 있으니까 땅바닥에 떨어진 새를 본 적이 있을지도 몰랐다.

“우리는 새를 찾고 있거든요.”

“너희도 새를 찾아?”

아저씨가 알은척 반가워하며 3학년 1반 선생님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새를 발견하면 꼭 알려 달라 부탁했다고 우리에게 말해 주었다.

“아주 중요한 일이라면서 말이야.”

“저희 담임 선생님이에요!”

준구와 나는 동시에 합창했다.

우리는 담임 선생님이랑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서 아저씨에게 설명해 주었다.

“오호? 그래? 그렇구나, 선생님도 그렇고 너희도 아주 훌륭한 일을 하는구나.”

설명을 듣는 내내 감탄을 하던 아저씨가 새삼 대견하다는 듯이 준구와 나를 보았다.

준구와 나는 씩 웃으면서 어깨에 힘을 팍 주었다. 에헴!

아저씨는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며 얘기를 들려주었다.

“새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는데 어디선가 고양이가 나타나서 물고 가더라고.”

“고양이가 물고 갔다고요?”

준구가 놀라서 되물었다.

“그래, 바닥에 떨어진 새를 냉큼 물고 가더라니까.”

“으아, 고양이가 왜 새를 물고 가요?”

“글쎄다, 아마 먹.”

아저씨는 겁먹은 우리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흠흠,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눈에 띄는 족족 잽싸게 다 치웠어, 길고양이든 누구든 못 가져가게.”

“떨어져 있는 새가 그렇게 많았어요?”

“내가 본 것만 해도 한 서너 마리 되지, 아마.”

“붉은머리오목눈이였어요?”

준구가 톡 끼어들어 물었다.

“응? 붉은 뭐 눈이?”

“그 떨어져 있던 새가 붉은머리오목눈이였냐구요! 참새랑 비슷하게 생겼는데 참새가 아니라 붉은머리오목눈이라는 새거든요. 흔히 뱁새라고도 하죠. 그 왜 있잖아요, 뱁새가 황새가 쫓아간다는 말이요.”

준구가 아는 체 떠벌렸다.

아저씨가 멀뚱멀뚱 준구를 보았다.

“아저씨, 그 새들 다 어떻게 됐어요?”

이번에는 아저씨가 나를 멀뚱멀뚱 보았다.

“그 새들 죽었냐고요?”

나는 다시 또박또박 물었다.

아저씨는 어쩐지 미안해하는 웃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요?”

끄덕끄덕.

우리는 안타까이 탄식을 내뱉었다.

“묻어 주셨어요?”

또 내가 물었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그 새들 다 땅에다 묻어 주셨죠?”

“응? 그, 그럼. 무, 묻어 줬지.”

“어디에다가요?”

나는 집요하게 물었다.

“어디다 묻어 주셨어요?”

“으응, 그게 그러니까⋯⋯.”

“어디다 묻어 주셨는데요?”

아저씨는 황급히 두리번거리다 얼버무리듯 우리 학교 뒷산을 가리켰다.

“저기 저 산.”

얼마 전에 붉은머리오목눈이를 묻어 주었던 그 뒷산이었다. 그 가여운 붉은머리오목눈이 생각이 나서 또 코끝이 찡했다. 그러나 곧 괜찮아졌다. 아저씨가 묻어 준 새들이 붉은머리오목눈이의 친구가 됐을 테니까.

“근데 요샌 통 봤어, 정말이야.”

아저씨는 변명하듯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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