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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은경 Oct 21. 2024

날아라, 새들아!

첫번째

1. 유리창은 위험해     


갑자기 이마에 뭔가가 세게 부딪혀 오더니 눈에서 불이 번쩍했다.

“아얏!”

나는 비명을 내지르며 비틀거렸다.

“어머, 현승아!”

엄마가 번개처럼 내 이름을 부르며 달려와 나를 덥석 잡아 주었다.

“너, 괜찮아?”

엄마의 억센 손아귀 힘에 꽉 잡힌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으.”

이마가 깨질 듯 아팠다.

“아이참, 이를 어째?”

내 얼굴을 살피던 엄마가 눈썹을 찡그렸다.

“어, 엄마⋯⋯.”

저런 눈빛을 했다는 건 분명히 큰일 났다는 표시다. 마스크를 끼고 있어도 엄마의 표정은 다 보였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마에서 시뻘건 피가 줄줄 흘러내리는 장면이 저절로 그려졌다.

“현승아, 너 왜 여기다 박치기를, 아이구 저런.”

곧바로 다가온 아빠마저도 장난스럽게 말을 걸려다 내 이마를 보곤 금세 걱정 어린 눈빛을 하였다.

그렇다면 틀림없었다.

“나 죽어?”

이렇게 이마가 깨져서 피를 철철 흘리다간 죽을지도 몰랐다. 왈칵 눈물이 치솟고, 울음이 목구멍을 비집고 올라오려 했다. 나 이제 열 살밖에 안 됐는데⋯⋯.

“많이 아프겠다, 괜찮아?”

엄마가 마스크를 내리더니 조심조심 내 이마에 입김을 불어 주었다.

“어이구야, 이렇게 금세 부풀어 오르네?”

아빠는 손부채질로 연신 내 이마에 바람을 일으켜 주었다.

“꼭 무슨 밤톨 같네.”

“어떻게 저렇게 금방 커지지?”

“피⋯⋯ 피 많이 나? 정말 나 죽어?”

겁에 질린 내 목소리는 그러나 마스크 안에서만 애처로이 맴돌았다.

엄마 아빠는 혹이 어쩌고, 뿔이 저쩌고, 연신 무서운 얘기를 늘어놓았다. 내 타들어 가는 마음은 알지도 못하고.

죽을힘을 다해 손을 이마로 가져가 보았다. 덜덜 떨리는 손끝에 불룩 솟은 뭔가가 만져졌다.

얼른 손가락을 봤다. 다시 이마를 만지고 손가락을 확인하고, 킁킁 냄새도 맡아 보았다. 또 이마를 확인하고 냄새 맡고⋯⋯.

후유, 다행이다. 나 안 죽는다.

“다쳤을 땐 이게 특효약인데.”

아빠가 내 이마에 침을 못 발라 줘서 아쉽다는 시늉을 했다.

나는 엄마 품에서 빠져나왔다.

여기에 이런 게 있을 줄이야.

내 앞을 떡하니 가로막고 서 있는 투명한 유리창을 그제야 발견하고 나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건?”

내 이마 자국이었다. 거기 투명한 유리 벽에 방금 내가 부딪힌 이마 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괜찮니?”

사람들이 나를 힐끔거리며 지나갔다.

“다행히 이마는 안 깨졌네?”

“조심 좀 하지.”

사람들 눈빛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마가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무엇보다 유리창에 “꽝!” 박치기를 한 것이 더 창피했다. 사나이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여기에 유리창이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바깥이 훤하게 잘 보여서 그냥 지나가려고 했던 건데⋯⋯.

또 부딪힐까 무서워 조심조심 한 손으로 이마를 가리고 다른 손을 내밀어 봤다. 유리가 어찌나 투명한지 덜커덕 손이 가로막힌다는 게 너무나 이상했다.

“뭐 이렇게 만들어 놨어?”

일부러 골탕 먹이려고 만들어 놓은 것 같아서 짜증이 확 났다.

그동안 코로나19 때문에 밖에도 잘 못 나가고 거의 매일 집 안에서만 지내다가 모처럼 엄마 아빠랑 외식하러 나온 참이었다. 우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갈비를 실컷 뜯고 시원한 냉면까지 배불리 먹었다. 엄마 아빠는 나온 김에 공원에도 들러 마스크 벗고 신선한 공기 좀 실컷 들이켜자고 하여 신이 난 나는 겅중대며 뛰어갔고, 아뿔싸 그만 투명한 유리창을 보지 못하고 바보같이 들이받고 말았으니⋯⋯.

엄마 아빠가 병원이냐, 공원이냐를 두고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마음이 부루퉁해진 나는 이도 저도 다 싫다고 뿌리치고 그냥 집으로 돌아와버렸다.

집에 오니까 본격적으로 이마가 쑤시기 시작했다. 거울을 보니 엄마 아빠 말대로 이마에 혹이 불룩, 솟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혹은 더욱 쑤셔 왔다. 처음엔 이마만 아프더니 점점 머리 꼭대기, 뒤통수, 눈두덩과 뺨 그리고 턱으로까지 통증이 뻗쳐 갔다. 머리 전체가 불타오르듯 아팠고, 빙빙 머릿속도 어지러웠다. 온몸이 다 쑤시는 것 같았다.

“병원 안 가도 괜찮겠어?”

이불을 뒤집어쓰고 드러누운 나를 보고 엄마가 걱정스레 물었다.

나는 엄마에게 괜한 심술을 부리며 벽을 보고 돌아누웠다.

“우리 아들 이 잘생긴 얼굴에 뿔나면 안 되는데.”

엄마가 살살 내 고개를 돌려 가며 이마에 연고를 발라 주었다. 부드러운 연고의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나는 입술을 삐죽이며 못 이기는 척 가만히 있었다.

“오늘은 일찍 자, 엄마가 옆에서 지켜 줄게.”

엄마가 다정한 목소리로 이불을 덮어 주며 내 마음을 토닥거려 주었다.

기분이 쪼끔 나아졌다.

새벽녘 잠결에 엄마가 또 내 이마에 연고를 발라 주는 것 같았고, 나는 푹 잘 잤다.          



2. 우리 반 대현이      


교실에 들어서면 내 눈은 자동으로 이대현을 찾는다. 우리 반 이대현은 주먹 대장, 키 대장이다. 나는 이대현이 좋다.

“대현아, 안녕.”

나는 대현이가 앉아 있는 자리로 가서 수줍게 아침 인사를 건넸다. 이렇게 다시 대현이를 볼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대현은 늘 그랬듯이 내 인사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저렇게 안 들리는 척 무시하는 태도도 맘에 든다. 정말 사나이답고 멋지지 않은가.

“근데 그건 뭐냐?”

별안간 대현이가 물었다.

“어?”

대현이가 내 이마를 흥미롭게 쳐다보고 있었다.

“아, 이 이거 아무것도 아냐.”

난 허둥지둥 이마를 가리고 내 자리로 왔다.

‘대현이가 나한테 말을 걸었어.’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나를 알은체했어.’

“현승아, 안녕? 어, 근데 너 이마가 왜 그래?”

이번엔 옆자리 박준구가 내 이마에 관심을 보인다.

준구랑은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가, 3학년에 다시 만나서 엄청 친해지게 됐다. 작년 2학년 때는 코로나로 거의 학교에 못 와서 반 친구들이랑 얼마 만나지도 못했다. 3학년 되고 다시 학교에 오는 날이 많아졌다.

“이마에 왜 밴드 붙였어?”

“우리 엄마가 붙여 줬어.”

“왜? 왜 붙였는데?”

준구의 목소리는 턱없이 컸다.

“조용히 좀 해.”

“그거 왜 붙였냐니까?”

“아이참 조용히 좀 하라니까.”

대현이가 들을까 봐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준구가 엉거주춤 일어나더니 내 이마로 손을 뻗었다.

“야, 너 만지지 마!”

나는 움찔 피하며 준구 손을 탁! 소리 나게 밀어 냈다.

“우리 엄마가 약 발라 줬단 말이야.”

“약? 무슨 약?”

준구가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고, 나는 대현이를 돌아보았다.

두 눈 버젓이 뜨고 유리창을 들이받았다는 걸 대현이가 알면 얼마나 한심해할까. 대현이가 알아차릴세라 나는 고개를 반대쪽으로 홱 돌려버렸다.

준구는 눈이 커다래져선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너 다쳤어?”

그러면서 또 내 이마를 만지려고 했다.

“어떡하다 그랬는데?”

“만지지 말라고, 아프단 말이야!”

그만 나도 모르게 소리 지르고 말았다.

아차차! 어깨를 움츠리고 얼른 대현이 눈치를 봤다.

“앗, 미안.”

준구는 금세 사과하고, 곧바로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많이 아파? 얼마나 아픈데? 병원엔 갔다 왔어? 의사 선생님이 뭐래? 근데 왜 다쳤어? 어떡하다 그랬는데? 아이, 말 좀 해 보라니까 왜⋯⋯.”

어찌나 집요하고 지겹게 물어대는지. 난 그냥 눈을 꼭 감고 두 귀를 막아버렸다.

“왜 ㄷㅊㄴ니까?”

귀를 꼭 틀어막은 두 손등으로도 준구의 목소리는 왕왕 들렸다.

나는 한쪽 눈을 슬쩍 뜨고 이대현을 훔쳐보았다.

대현이는 여전히 나 같은 애한테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는 얼굴로 한동권이랑 임정모랑 무슨 얘긴가를 낄낄대며 하고 있었다.

‘쟤네 저렇게 모여 있으면 안 되는데⋯⋯.’

나는 한동권이랑 임정모가 부러웠다. 나도 저기에 끼고 싶었다. 이대현이랑 친해져서 대현이 어깨를 툭툭 쳐 가며 센 척 강한 척 떠벌리고 싶었다. 야, 대현아! 있잖아, 내가 말이야! 응? 한 방에, 응? 그랬거든! 진짜? 현승이 너 진짜 대단하다! 내가 아는 또래 ‘싸나이’ 중에 제일가는 ‘싸나이’ 대현이랑 친구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준구가 내 쪽으로 손을 내밀고 입을 뻐끔거렸다.

‘이, 거, 먹, 어.’

마스크를 턱에 걸친 채 뭔가를 오물거리는 준구 손에는 조그만 초콜릿 하나가 들려 있었다. 나는 초콜릿을 보고 준구를 보았다. 준구가 쑥스러운 듯 웃었다.

웬일이야? 이건 준구가 제일 좋아하는 초콜릿이다. 저번엔 그렇게 달라고 해도 안 주더니.

나는 마스크 아래로 날름 초콜릿을 먹었다. 오물오물 몰래 먹는 초콜릿보다 더 맛있는 게 있을까.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까 내가 뭘 먹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준구랑 나는 서로 쳐다보며 키득거렸다.

수업이 끝나고 우리는 교실에서 점심을 먹었다. 원래는 급식실에 가서 먹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우리 학년은 교실에서 먹는 거로 바뀌었다.

오늘 메뉴는 알록달록 여러 가지 나물을 얹은 비빔밥이었다. 준구는 이마를 찡그리며 당근과 시금치를 골라내고 참기름을 더 넣어 비벼 먹었다. 나는 준구와는 달리 고추장을 넣어 비벼 먹었다. 내 참기름이랑 바꾼 준구 고추장까지 쭉쭉 짜서 넣었다.

“너 그럼 매워서 못 먹어.”

준구는 벌써 매운 고추장을 한입 가득 먹은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나 매운 거 엄청 잘 먹거든!”

일부러 큰 소리로 말하고 이대현이 있는 쪽을 보았다.

동권이, 정모와도 떨어져 앉은 채 밥을 먹던 대현이랑 눈이 마주쳤다.

“자, 잘 봐!”

나는 책상 사이사이마다 세워져 있는 투명 가림막 위로 벌건 고추장 비빔밥 한 술 가득 퍼 올려 보여주고 여봐란듯이 입에 넣었다. 대현아, 잘 보라고. 일회용 고추장 두 개나 짜 넣었다고.

준구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대현이도 좀 놀란 눈치였다.

준구가 물었다.

“안 매워?”

“스읍, 맵긴 뭐가 맵다 그래, 하나도 안 매워, 스읍.”

눈물이 찔끔 나올 만큼 매웠지만 억지로 참았다.

“이야, 현승이 너 진짜 대단하다.”

준구는 놀라 입을 헤벌렸다.

“매운 거 잘 먹으면 어른 된 거라고 우리 엄마가 그랬는데.”

“이까짓 거는 아무것도 아냐, 스읍. 우리 기훈이 형은 엄청 매운 불짬뽕도 세 그릇이나 먹어. 그런데 하나도 안 맵대, 스읍.”

혀가 아리고 아프기까지 해서 말이 잘 안 나왔다. 물을 마셔도 매운 기가 가시지 않았다.

“기훈이 형? 너 형아, 있었어?”

준구는 참기름 고소한 냄새를 퐁퐁 풍기는 비빔밥을 맛있게 먹으며 물었다.

“사촌 형.”

내 목소리는 기어들어 갔다.

기훈이 형이 내 진짜 형이면 얼마나 좋아? 기훈이 형은 중학생인데 벌써 우리 아빠보다 키가 크고 태권도도 3단이나 된다. 우리 엄마도 형 좀 낳아 주지.

나는 또 매운 밥 한 숟갈을 먹고 대현이를 보았다. 대현이가 보니까 매운 걸 참아 낼 수 있었다. 확실히 대현이도 매운 건 잘 못 먹었다. 대현이도 이젠 날 다시 보겠지?

매운 비빔밥 한 그릇을 싹싹 비우고 왠지 으쓱해진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날 저녁에 그만 배탈이 나고 말았다. 화장실을 세 번이나 들락거리니까 기운이 다 빠졌다. 엄마가 고약한 한약 냄새가 나는 약을 줘서 먹었더니 그제야 괜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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