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번째
9. 우리 집에 날아온 비둘기
나는 집으로 돌아오자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우리도 버드 세이버 붙이자.”
“버드 세이버? 그게 뭔데?”
엄마는 잘 몰랐다. 그래서 내가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오마나 그런 일이 다 있다니? 세상에 참 별일이 다 있구나.”
“그러니까 우리 베란다에도 버드 세이버 붙여야 해.”
나는 우리 집 거실 통유리를 바라보았다. 저렇게 넓고 투명한 유리문이라면 새들이 착각하기 딱 좋았다.
“아서라, 너 태어나기 전부터 이 집에서 살았는데, 여태껏 그런 일 한 번도 없었어.”
“하지만 새들이 날아왔다가 저 유리창에 꽝! 하고 부딪히면 어떡해?”
“날아오긴 뭐가 날아와? 참, 내가 물을 줬든가?”
엄마는 깜빡했다는 듯 베란다로 쪼르르 달려가 화분에 물을 주었다. 베란다에는 엄마가 애지중지 키우는 화분들이 열 개도 넘게 있다.
“아이 엄마, 우리도 버드 세이버 붙여야 한다고.”
“아니 그러니까 우리가 이 집에서 십몇 년을 살아도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다니까.”
“엄마가 여기다 이렇게 화분을 많이 키우니까 새들이 날아올 수도 있다고.”
“아이참, 얘가 오늘 왜 이래?”
“엄마, 제발 부탁이야. 응? 내 소원 좀 들어줘.”
“아이고 얘도 참, 그렇게 붙이고 싶으면 네 방 창문에나 붙이던가.”
엄마는 성화에 못 이기겠다며 내 방 창문에만 붙여야 한다는 약속을 받아 내고 버드 세이버를 인터넷으로 주문해 주었다. 오예!
그렇게 내 방 창문에도 멋진 버드 세이버를 붙일 수 있었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참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내 말이 맞는다는 듯이 진짜로 우리 집에 새가 날아온 것이다!
집에서 컴퓨터 수업하는 날이었다. 줌 수업이 막 끝났을 때 베란다에서 무슨 소리가 나서 가 봤더니 맙소사! 새가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엄마, 여기 좀 봐.”
나는 놀라 엄마를 불렀다.
“어머나! 웬 새야?”
“쉿!”
엄마도 새를 보고 놀라서는 눈이 휘둥그레져 내 옆으로 다가왔다.
“세상에 이게 웬일이래니?”
엄마는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진짜로 새가 날아왔네.”
“엄마, 비둘기야.”
“그러네, 비둘기네.”
“구구구.”
비둘기는 외줄 타기라도 하듯 베란다 안전대 위를 뒤뚱거리며 걸었다.
“어맛!”
엄마랑 난 똑같이 입을 막으며 한쪽 벽 뒤로 몸을 숨겼다. 비둘기 한 마리가 또 날아온 것이다.
“엄마 비둘기가 두 마리야.”
“그러네, 비둘기가 두 마리네.”
엄마는 또 나만 따라 말했다.
“쟤네 둘이 친군가 봐.”
“요 위로 날아가려다 힘들어서 쉬는가 보다, 얘.”
우리 집은 14층이고, 15층이 꼭대기이다.
“처음이구나, 여기 살면서 비둘기 우리 집으로 날아온 거.”
“거봐, 엄마 내가 뭐랬어? 우리 집에도 새가 날아올 수 있다고 그랬잖아?”
나는 내 방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 새들이 여기 베란다로 날아온 게 버드 세이버를 붙이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내가 버드 세이버 붙여야 한다고 그랬잖아!”
“그렇지만 유리창에 부딪히지는 않았잖니?”
엄마는 날아온 비둘기를 신기해하면서도 버드 세이버 붙이는 건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쳇.”
나는 뒤뚱뒤뚱 위험하게 베란다 안전대 위를 왔다 갔다 하는 비둘기를 안타까이 쳐다보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비둘기가 우리 베란다 유리창에 부딪히면 다 엄마 탓이야.’
10. 유리 없는 건물을 찾아라
선생님이 우리 새 구하기 대작전 요원들에게 그다음 임무를 주셨다.
“우리 마을에 유리 없는 건물이 있는지 한번 찾아볼 것.”
“유리 없는 건물이요?”
“그래, 유리 없는 건물이 있는지 한번 찾아보렴.”
우리는 선생님이 너무 쉬운 임무를 주신다고 생각했다. 세상천지 맨 건물투성이인데, 유리 없는 건물 하나 못 찾을까?
“식은 죽 먹기예요.”
“땅 짚고 헤엄치기죠.”
“누워서 떡 먹기도 있어.”
우리는 얼마 전 배운 속담을 떠벌리며 자신만만해했다.
“과연 그럴까.”
선생님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살랑거렸다.
“손바닥 뒤집기라니까요!”
“좋았어! 그럼 너희가 유리 없는 건물을 찾아내면 선생님이 맛있는 거 사 주마.”
“정말이요?”
“유리 없는 건물이 있는지 없는지 선생님도 궁금하거든. 아, 옛날에 지은 궁궐이나 뭐 그런 목조 건물은 빼고 말이다.”
선생님이 재빨리 덧붙였다.
우리는 학교 끝나고 바로 유리 없는 건물을 찾기 시작했다.
먼저 우리 학교를 둘러봤다. 그러나 다 둘러보나 마나 교실엔 다닥다닥 유리창이 즐비했다.
교문을 나와서 본격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이쪽을 봤다 저쪽을 봤다, 오른쪽을 봤다 왼쪽을 봤다, 쉴 새 없이 두리번거리며 건물들을 훑었다.
“와, 유리 진짜 많다.”
그동안 수없이 지나치던 건물들을 관심 있게 쳐다보다 보니까 왜 이렇게 유리들이 많은지, 완전히 새로워 보였다.
“그러게, 맨 유리투성이야. 여기도 유리, 저기도 유리⋯⋯.”
둘러보는 건물들에는 모두 유리가 있었다. 유리창, 유리문. 유리문, 유리창⋯⋯ 문이랑 창문은 으레 유리로 돼 있었고, 어떤 데는 벽 전체가 유리였다.
“와, 저기는 다 유리야.”
우리는 반짝반짝 검게 빛나며 우뚝 서 있는 유리빌딩을 신기하게 올려다보았다. 지금까지 본 건물들과는 달리 이 건물은 네 벽면 전체가 검은 유리로 돼 있었다. 이 유리로 된 건물도 분명히 전에 봤고, 또 이 앞을 오백 번도 더 넘게 지나다녔을 텐데, 어쩐지 오늘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얘들아, 여기 좀 봐 봐.”
나는 한 가게의 투명한 유리 벽에 붙어 서서 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여기 안이 다 들여다보여.”
준구와 은서가 나를 따라 두 손을 둥글게 말아 망원경처럼 눈에 대고 가게 안을 들여다봤다.
“정말 다 보이네.”
이 가게 역시 오천 번도 더 넘게 들락거린 곳이었다. 이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 과자랑 아이스크림을 얼마나 많이 사 먹었는데⋯⋯.
“이상해.”
“유리 없는 데가 없어.”
가게마다 유리가 있는 것이 신기했고, 또 유리 없는 가게가 없는 것도 신기했다.
“우리 동넨 없나 봐.”
한참을 찾았지만 우리는 유리 없는 건물을 하나도 찾지 못했다. 금방 찾아낼 거라고 자신만만했던 조금 전 생각이 틀렸나 싶었다.
“혹시 우리 동네에만 없는 거 아닐까?”
나는 선생님이 했던 말을 기억해 내며 말해 보았다.
“아까 선생님이 우리 마을에서 찾아보라고 그랬잖아.”
내 말에 준구가 눈을 끔뻑이며 나를 보았다.
“맞아, 선생님이 그러셨어!”
은서는 맞장구를 쳐 주었다.
은서를 돌아보다가 그만 눈길을 붙들리고 말았다. 웃음 짓는 은서의 눈 모양에 내 마음이 북소리를 내며 나를 어디 다른 데로 둥둥 싣고 가는 느낌이었다.
“그럼 우리 동네엔 없고, 다른 동네엔 있다는 거야?”
준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 왔다.
나는 재빨리 준구를 앞장세워 곧바로 옆 동네로 향했다. 은서가 내 뒤에서 따라왔다.
나는 눈을 부릅뜨고 옆 동네로 가는 거리의 건물들 하나하나를 샅샅이 훑어보았다. 건물이 높거나 낮거나, 가게가 크거나 작거나, 살펴보고, 뜯어보고, 들여다보고, 째려보고, 쏘아보고,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보고 또 보았다. 편의점, 빵집, 김밥집, 미용실, 치킨집, 핸드폰 가게, 오락실, 은행, 약국, 어린이집, 학원 그리고 아파트 건물들, 건물들⋯⋯. 꼭 찾아야 했다.
“여기도 없는데?”
그러나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유리 없는 건물은 없었다.
“어떻게 된 거야?”
준구가 물어 왔다.
나는 좀 당황했지만 얼버무리고 조금만 더 찾아보자고 말했다.
준구와 은서가 나를 따라 또 한참을 찾았다.
하지만 이 동네에서도 우리는 유리 없는 건물을 찾지 못했다.
“왜 없지?”
나는 슬쩍 은서를 살피고 중얼거렸다.
난 이 동네에는 있을 줄 알았다. 아니, 이 동네엔 있어야 했다.
“건물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유리 없는 건물이 하나도 없다니.”
“다리가 너무 아파.”
힘없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은서였다.
“더는 못 걷겠어.”
은서는 한눈에 봐도 잔뜩 지쳐 있었다.
“나는 목마르고 배고파.”
준구는 강아지처럼 혀를 쭉 내밀고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괜히 여기까지 오자고 했나?
친구들에게 미안했다. 유리 없는 건물을 하나도 못 찾아서 더 힘들었다.
“우리 저기 가서 좀 쉬자.”
나는 조 앞에 보이는 공원 쪽으로 빠르게 발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