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 적 살던 동네에는 연탄공장이 있었다. 우리 집과 공장은 버스로 세 정류장 이상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어머니는 빨래를 널 때마다 걱정 어린 푸념을 늘어놓곤 하셨다.
“연탄가루 날려 오면 안 되는데.”
겨울이 되면 어머니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김장과 연탄 들여놓기였다. 연탄을 들여놓는 날은 또한 마당 청소하는 날이기도 했다. 신문지며 박스 따위를 깔아놓아도 시커먼 연탄은 마당을 온통 더럽히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한 겨울에 마당을 물청소하면 금세 물이 얼어버린다. 그래서 어머니는 뜨거운 물을 연신 부어가며 빗자루 질을 해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물로 씻겨가는 시커먼 연탄 물. 광에 그득한 수백 장의 연탄과 깨끗이 물청소된 마당.
“에구구구.”
허리를 펴면서 살얼음 낀 마당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얼굴은 더없이 만족스럽다는 표정이었다. 내 어릴 적의 겨울은 그렇게 왔다. 김장을 하고 연탄을 들여놓는 모습을 보고 “아, 또 겨울이 왔구나.” “이 겨울이 지나면 나는 또 한 살을 먹는구나.” 알 수 있었다.
그런데 해마다 겨울이 되면 치르곤 하던 그 요란한 월동준비 행사가 언젠가부터 사라졌다. 요즘엔 거의 가스 혹은 기름보일러를 사용하기 때문에 연탄을 들여놓을 필요도 없고, 김치 또한 사 먹는 집이 많아졌거나 다른 먹거리가 늘어났기 때문에 예전처럼 수백 포기씩 김장을 하는 집은 거의 없다.
일기 예보를 보면 올 겨울은 무척 추울 거라고 한다. 그에 걸맞게 요 며칠 추위가 매섭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꽁꽁 싸매고 나가도 시린 바람은 어느틈이든 비집고 들어온다. 동장군 기세가 대단하다.
그런데 아직도 연탄을 난방연료로 쓰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주변이 온통 아파트 천지라 그런 줄 몰랐는데, TV 뉴스를 보면 연탄을 사용하는 비율이 아직도 상당하다. 화면에 비친 연탄.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연탄이었다.
연탄은 내 어릴 적의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일종의 타임캡슐과도 같은 기억창고 역할을 한다. 연탄을 때는 뜨끈뜨끈한 아랫목은 으레 장판이 타서 누렇고 시커멓게 변해 있기 마련이었다. 외출했다 돌아오면 가장 먼저 찾는 곳은 아랫목이었다.
이불속으로 발을 쑥 집어넣으면 따뜻하게 녹여주는 아랫목. 발끝에 살짝 닿는 따끈한 밥사발의 추억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가슴에 남아 따스하게 기억된다.
긴 겨울밤, 아랫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군고구마와 살얼음 살짝 낀 동치미 국물을 먹던 생각도 난다. 그 환상적인 맛이란, 생각만으로도 군침이 돈다.
연탄이 주는 낭만은 또 있다. 등교하자마자 난로에 도시락을 얹으면 수업시간에 솔솔 풍기던 구수한 밥 눋는 냄새. 양은 도시락 바닥에 잘 눌어붙은 누룽지를 떼먹고 있으면 반찬이 화려하지 않아도 우리는 배가 불렀다.
가스 불보다는 연탄불에 음식을 해 먹으면 이상하게도 맛이 더 좋은 것 같다. 추억이 양념 노릇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연탄불에 그 고전적인 석쇠를 올려놓고 고기를 구워 먹게 하는 고기 집에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사실 연탄은 귀찮고 위험한 난방연료이다. 시간 맞춰 갈아줘야 하고, 때로 유독가스가 새어 나와 우리의 목숨을 위협하곤 했으니까. 가족들 모두 단잠에 빠져 있는 새벽에도 어머니는 연탄불을 갈기 위해 잠자리를 떨치고 일어나야 했다.
밤새도록 따뜻한 구들장에 몸을 덥히며 달콤한 꿈나라를 편안하게 여행할 수 있었던 건 모두 어머니가 때를 놓치지 않고 밤잠을 설쳐가며 갈아주신 연탄불 덕분이었다. 나도 연탄불을 갈아보았는데, 그 구멍 맞추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 스물두 개의 구멍을 맞추노라면 가스 때문에 기침을 콜록콜록 해대야 했다. 한 번은 가볍게 연탄가스에 중독된 적도 있었다. 그때 어머니가 차가운 동치미 국물을 가져다주셨다. 그걸 마시면 괜찮다는 것이다. 나는 살얼음 낀 동치미 국물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살아났다(?).
어쩐지 연탄불과 어머니는 닮아 있다는 느낌이다. 작고 저렴하고 새까매서 볼품없는 연탄이지만 우리를 매서운 겨울 한파로부터 지켜주는 그 든든함이, 늘 말없이 우리를 사랑으로 지켜주고 계신 어머니의 은은한 사랑과 같게 느껴지는 것이다.
한겨울 추위를 연탄 한 장으로 견디게 해주는 일뿐만이 아니다. 밤새 온몸을 태워 하얗게 산화한 뒤에는 눈이 내려 빙판이 된 길을 연탄재로 잘 다독여 그 길을 걷게 해주는 그 완전한 희생은 정말 어머니와 꼭 닮아 있다. 그래서 안도현의 저 유명한 시가 태어나지 않았던가.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정말 나는 누군가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던 적이 있나?
이제는 잊힌 존재가 돼버리고만 연탄. 점점 각박해져 가는 도시인의 삶은 어쩌면 우리가 연탄의 존재를 잊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저를 다 태워버리고도 온몸을 부숴 빙판을 덮어주는 연탄재를 잊었기 때문에, 우리가 타인에게 뜨겁고 또한 배려하는 법을 잊은 건지도 모르니까.
나 어릴 적, 눈사람을 만들 때면 으레 연탄재를 굴려 눈으로 살을 붙이곤 했다. 함박눈 내리는 날 골목길을 천하대장군처럼 지켜주고 서 있는 눈사람은 누구나 다 연탄재를 가슴에 품고 있었다.
이제는 어른이 되어서 눈사람을 만들지 않지만 내 어린 시절의 눈사람처럼 우리도 마음속 한 곳에 연탄재를 품고 살아간다면 추운 겨울이라도 우리는 따뜻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무척 추울 거라는 올 겨울, 서로가 서로에게 뜨거운 연탄이 돼주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