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스물셋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fe B Apr 17. 2022

흔들리는 벚꽃 속에서

스물셋 에세이 [EP4]

©stageout / https://www.instagram.com/stageout



요즘따라 시간이 정말 빠르다. 잠을 자고 일어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책을 읽다가도 드문드문 빠르게만 흘러가는 나날들에 대한 생각을 갑자기 하게 된다. 길게만 느껴졌던 겨울이 지나가서일까 봄은 내게 잠깐 왔다가는 손님처럼 그저 용건만 보고 헤어지길 원하는 것만 같다.



어느새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모습을 보았다가도 다음 주면 떨어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내 마음은 아직 겨울에서 벗어나는 중인데 봄은 왜 벌써 왔다 가려는 것일까.



이 시간을 잡아두고 싶어서 기를 써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그저 바라만, 바라만 보는 것. 조금이라도 내 눈에, 기억 속에 담을 수 있도록 바라보고 마음속에 남기는 것 정도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은 환영의 계절이다.



봄은 새로운 한 해가 이제야 시작됐다며 지나간 힘들었던 기억들을 털어버리고 희망찬 앞날을 우리에게 약속한다. 고생했다고, 겨울을 버티느라 수고했다고.



그래서 봄은 정말 아쉽지만 살짝 웃는 얼굴로 미련 없이 헤어질 수 있는 계절이다. 짧지만 아름다운 풍경과 분위기로 남김없이 모두에게 기쁨을 주고 떠나가니까.



특히 벚꽃은 봄의 절정을 알리는 상징이자 우리 모두가 봄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이다.



벚꽃을 즐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난 주로 벚꽃이 바람에 흔들리는, 그러다가 꽃잎이 하나둘씩 떨어지는 풍경을 정말 좋아한다. 사소하지만 내가 봄을 함께하고 있다는, 가슴 한편이 설레면서도 따뜻한 감정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나는 벚꽃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작은 것에도 쉽게 감동하는 편이다.



그저 마음에 드는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도



좋아하는 책의 구절을 되짚어 보는 여유도



가족과 안부를 묻는 전화 한 통도



사색에 잠길 수 있는 자유까지



내겐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하다.



『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의 저자 에릭 와이너는 세이 쇼나곤의『 배겟머리 서책 』을 인용하며, 알고 보니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졌던 쇼나곤의 삶에 태도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쇼나곤은 삶이 수만 가지 작은 기쁨의 총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았다. 2 ~ 3일쯤 만개했다가 떨어지는 벚꽃처럼 '아름다움은 덧없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라며 순식간에 사라지는 삶의 작은 기쁨들을 즐기려면 느슨하게 쥐어야 한다고 말한다. 너무 세게 붙잡으면 부서져버리기에 그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관심을 기울인다. 그렇다. 우리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못 본 사이, 사라지기 전에 작은 기쁨들을 하나하나 모아 나가야 한다. 지나간 기쁨들과 앞으로 겪을 기쁨들은 순간순간 너무나 짧아 감사함과 소중함을 느낄 겨를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아끼고자 하는 모든 것에,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에 지금 잠시 멈춰 서서 눈길을 주어야 한다. 



피었다 지는 벚꽃처럼 아름다울수록, 사랑스러울수록 함께하는 시간은 지나고 보면 짧게만 느껴지니까.



이별이, 마지막이 있다는 것을 애써 외면해봐도 마음속으로는 끝이 있다는 것을 이미 아니까.



그래서, 오히려  찬란하게 빛난다는 것을 아니까.



겨울 지나 봄이 왔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


그러나, 이내 꽃은 져버렸다.


꽃은 졌지만 분명한 건 그 자리에 무언가 남아있다는 것


단지 스쳐가는 봄의 향만을 살짝 맡게 해 준


환영의 춤을 선사한 흩날리는 꽃잎들


겨울 지나 봄을 알려준 벚꽃처럼


어둠 속에 홀로 빛나는 달빛처럼


닿을 수 없기에 만질 수 없기에


덧없이 사라지는 모든 것들이


가장 아름답고 찬란하지 않을까


- Life B


cherry blossoms and half moon


Fly me to the moon
Let me play amoung the stars
Let me see what spring is like on
A Jupiter and Mars



You are all I long for
All I worship and adore
In other words, please be true
In other words, I love you

- Bart Howard 『 Fly me to the moon 』
매거진의 이전글 소거법으로 바라본 세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