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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r Pang May 21. 2021

)곰팡이 리뷰)발효의 시간

발효는 움직임이다! PaAp LaB MaT 1st 워크숍의 기록

보이지 않는 것을 생각한다. 움직이는 것을 생각한다. 변하는 것을 생각한다, 몸. 나를 담고 있는 것이자 나와 밖을 연결하는 것이며 나 그 자체인 것. 우리는 몸을 통해 나 자신 그리고 세상과 연결된다. 


PaAp Tempeh의 새로운 사무실이자 실험실인 PaAp LaB에서 첫 워크숍을 열였다. 제주도와 서울을 오가며 ‘움직임 워크숍'을 진행하는 무용가 듀오 바리나모와 함께. 아, PaAp Tempeh가 뭐냐면 ‘템페'라고 불리는 식품을 생산하는 회사다. 템페는 인도네시아 전통음식으로 청국장, 낫또와 더불에 세계 3대 발효식품으로 꼽힌다. 현지에서는 ‘뗌뻬'라고 발음한다는 이 음식은 콩으로 만든다. 청국장, 낫또와 달리 단단하고 다양한 형태와 재료로 만들 수 있어 여러 요리의 식재료로 사용하기 적합하다. 


PaAp LaB의 불 꺼진 간판

식품회사, 실험실, 움직임, 워크숍… 이게 다 무슨 이야기고 어떤 연결인가 싶겠지만 PaAp는 Part all All part - 부분과 전체, 전체와 부분이라는 의미를 담아 건강에 좋은 음식을 환경적으로 생산한다는 목표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미래와 활동을 꿈꾸는 회사다. PaAp LaB 이들이 상상하는 미래의 모습을 작은 단위로 실험하는 공간이다. 

먹는 것, 움직이는 것, 에너지, 공동체의 감각을 고민하고 체험하는 실천의 장소인 셈. 실험실, 이곳에서 발효를 매개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더 깊은 고민을 나누기 위해 ‘MaT’라는 워크숍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움직이고 구르기 좋도록 바닥에 거대하고 하얀 매트(MaT)를 깔고 이곳을 기꺼이 찾아줄 사람들을 기다린다. 


'발효는 움직임이다.' PaAp LaB에서 시도할 프로그램들의 주제다. 우리는 발효를 이렇게 이해한다. 움직이는 것, 이동하는 것, 변화하는 것, 변화시키는 것, 그러므로 '움직이는 것'. 몸 또한 고정된 물체가 아닌 끊임없이 변화 중인 시공간이다. 몸은 수많은 미생물과 균이 공존하는 공생의 숲이며, 몸은 원자들의 운동과 형태와 배열과 성질이 바뀌는 변신의 연속체다. 바리나모의 워크숍 <변화의 몸>은 바로 이런 ‘상태'로서의 몸. 생명들의 축제가 벌어지는 장소로서 몸을 생각한다. 


방법을 설명하는 가이드 나모

움직임 워크숍은 가이드가 제시하는 주제와 방법에 따라 참여자들이 몸을 움직이고 경험하는 시간이다. 무용가 듀오 바리나모는 <변화하는 몸>을 주제로 컨택, 페어링, 즉흥, 소리 내기, 토론, 해부학 등을 방법으로 가져와 나 자신 그리고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움직임의 세계로 안내한다. 말로 하자니 어렵지만, 그저 편한 옷을 입고 가이드의 친절한 목소리에 의지하여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면 된다. 


낯설 것이다. 모르는 사람들과 새로운 공간에서 움직이고, 움직여지는 몸을 마주한다는 것은. 몸의 바깥은 끝없이 외부를 의식할 것이고, 몸의 안쪽에는 '이렇게 하는 게 맞나? 내 모습 지금 추한 거 아닌가?'하고 자아와 싸우는 내가 있다. 타인과 나의 경계가 사라지고, 나와 나의 경계가 사라지기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손을 비벼서 따뜻하게 한 후에,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자신의 집이자 많은 것들이 공생하는 숲이 몸을 손끝, 손바닥 손등, 손가락 사이로 만나보세요. 다른 굴곡, 촉각, 온도, 단단함, 다름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가이드 바리님은 자신의 속도대로 마치 산책하듯이, 여러 굴곡과 길과 높낮이가 있는 몸을 따라 걸으라고 말한다. 열다섯 명의 참여자가 각자 자신의 몸을 산책하기 시작했다. 자기의 몸을 처음 만지는 것은 처음이라는 듯이 서툴게도 걷는다. 힐끔힐끔 실눈을 뜨고 다른 사람들을 살피기도 하면서. 

하나의 프로그램을 끝내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명상 중인 참여자들


"온몸에 호기심이 가득합니다. 경험하고자 하는 마음, 만나고자 하는 마음이 온몸에 가득 차있어요. 호기심이 몸 전체를 도와주고 있어요." 


이처럼 때론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도... 그래도 2시간 남짓, 때론 고요하게 때론 격렬하게, 때론 조심스럽게 때론 대범하게 자신과 타인의 몸을 만나는 동안 땀이 흐르고, 머리가 헝클어진다. 좋은 숨이 나온다. 그리고 이어지는 건, 꼬르륵 소리...


워크숍은 이틀에 걸쳐 열렸는데, 각각 한 번의 식사시간과 티타임이 있다. 식사 메뉴는 '템페'를 활용한 요리, 첫날은 템페 피타였고 둘째 날은 템페 김밥이었다. 티타임에는 PaAp에서 직접 발효한 콤부차와 템페 과자인 템페칩을 마시고 먹었다. 

첫날의 상차림 '템페 피타'

템페 피타는 납작한 빵에 템페, 각종 채소, 양배추 절임, 후무스, 페스토 등의 소스를 넣어 싸 먹는 음식이었는데 '맛있다'를 연발하며 준비한 모든 음식을 싹 다 비워냈다. 더 먹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템페를 먹어보지 않았던 분들도 꼭 템페를 사 먹겠다는 다짐 아닌 다짐까지. 템페 김밥으로는 마치 제육볶음을 연상시키는 양념된 템페소로 만들어진 한 줄, 간장에 마리네이드 된 템페와 생오이가 함께 들어간 한 줄이 나왔다. 익숙하면서도 신선한 맛이었다. 현미로 지어진 밥에 더해져 가득한 건강함이 느껴진다. 콤부차는 시큼하면서도 달콤함이 감도는 음료였다. 건강과 미용에 효과가 있어 최근 편의점 음료 등으로 출시되곤 하지만 비교할 수 없는 맛과 향이다. 


"나는 하나의 통일된 몸이 아니라 세포와 세포들의 공동체입니다."


한 사람, 하나의 몸은 고정된 하나의 물체가 아니라 세포들의 모임이라는 의미다. 자신의 세포를 섬세하게 움직이면 세포들의 경험이 불러일으켜진다. 경계 없이 이동하고 소통하고 변화하는 몸을 느껴본다. 짝을 이루어보기도 하고, 다시 혼자가 되기도 하면서, 구르고 뛰고 걷고 호흡하고. 

발 - 몸의 시작이자 끝

"아기 때 했었기 때문에 지금도 할 수 있어요!"

몸을 낮추어 점점 바닥을 향하다가, 전신의 앞면을 바닥으로 미는, 일명 배밀기를 하면서 앞쪽으로 바닥을 밀어내고 있는데 가이드 나모님이 말했다. 배밀기 동작, 바닥을 기어 다니는 동작은 직립 보행하며 땅을 그저 발바닥으로만 딛고 사는 어른이 된 우리들에게 생소하겠지만, 아기 때는 우리의 주 이동 방식이었고, 주된 움직임이었단 뜻이다. 아기 때 했으니까 지금도, 지금은 더 잘할 수 있다는 말 한마디로 어린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시 만나 연결된다. 밀고, 기고, 일어서 걸으면서 확장되어가기만 했던 나의 세계가 다시금 작고, 조용하고, 혼자에 집중하던 때로 이동한다. 

보이지 않는 것으로 연결된 손과 발

너의 몸, 나의 몸, 우리의 몸은 모두 다르고 모두 아름답다. 몸과 몸이 섞이고 비벼지면서 타자와 공간, 나 자신과 연결되는 경험을 보여준 <변화의 몸> 워크숍. 손을 잡거나, 타인과 접촉하거나, 눈을 바라보는 행위는 우리 일상 속에서 의식 없이 수도 없이 일어난다. 그러나 가이드의 언어, 가이드가 제시하는 방법에 따르자 완전히 새로운 감각으로 경험되는 움직임의 세계가 열린다. 몸 내부의 기관, 장기들의 형태와 움직임을 상상하면서 그로 인해 다시 외부의 몸을 움직여보는 과정은 특히나 흥미로웠다. 몸안의 셀 수 없는 세포와 미생물들의 움직임을 인식하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참여자들의 몸은 전혀 다른 형태가 되어간다. 나의 내부와 외부는 때때로 하나이며 거대하기도 하고 섬세하기도 한 공간이 된다. 무엇보다 몸은 음식 즉, 먹는 것을 통해 다시 한번 열리고 연결된다. 

열심히 움직이는 사람들
움직임의 원리들

식품회사라더니 별걸 다 하네!

이런 걸 해서 돈이 되나?


PaAp가 구상하고 벌이는 일들은 종종 이런 질문을 부른다. 움직임 워크숍도, PaAp LaB도, 곰팡이 디자인도.... 하지만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진행해 나갈 때마다 우리의 방향성이 맞다는 확신을 얻게 된다. 발효를 매개로 다양한 매체와 연결하고 확장하는 PaAp만의 방식을 좀 더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설명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겨서 다행이다. 그 공간의 시작을 함께 열어준 바리나모와 열다섯 명의 참여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템페칩과 명이페스토

움직임 워크숍은 다가오는 5월 새로운 안무가와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약하며 4월 18일 일요일 오후가 되어 끝이났다. 한 공간에서 몸과 정신을 발효시킨 사람들은 한동안 떠나지 못하고, 서성이거나 망설이거나 자축했다. 


발효는 단순히 하나의 조리법이 아니다. 발효는 이동하고, 변화하고 변화시키며, 움직이는 활동을 말한다. 움직임이란 확장이고, 연결이고, 변화이며, 고정되지 않는 영원히 가능성을 남기는 상태다. PaAp LaB에서의 어리숙하고, 얼토당토 않은 실험과 시도라는 이름의 '우기기들'이 친구를 만날 수 있기를. 응원과 함께 함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지지자들을 발견하기를. 미생물과 균과 환경을 생각함으로써  더 나은 삶으로 움직이는 가능성이 되기를 바라며, 우리의 첫 움직임을 기록한다. 

***

PaAp LaB MaT

움직임 워크숍 <변화의 몸>

2021. 4. 17. 토 - 4. 18. 일 

with 바리나모 그리고 열 다섯 명의 참여자

서울시 성동구 아차산로5길 41(PaAp L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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