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ear Pang May 20. 2021

발효라는 이상한 여행을 시작하며

발효하는 시간, PaAp Tempeh와 PaAp LaB의 기록들

안녕하세요. 곰팡이(Bear Pang)입니다. 저는 발효식품 '템페'를 생산하는 회사 파아프 템페(PaAp Tempeh)의 팀원입니다. 파아프템페는 실험실이면서, 스튜디오인 파아프랩(PaAp LaB)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저는 이곳의 기획자랍니다. 


혹시 템페를 아시나요? 템페는 인도네시아 전통식품인데요. 청국장, 낫또와 함께 세계의 3대 발효식품으로 꼽힙니다. 하지만 앞선 두 식품이랑은 조금 달라요. 템페는 '장' 종류가 아닌 고체형 음식이어서 굽고, 볶고, 찌고, 끓이고.. 다양한 방법, 다양한 형태로 조리할 수 있거든요. 


어떻게 생겼는지 살짝 보여드리면, 아래 같은 느낌? 사진은 저희가 생산한 '파아프 템페'고, 귀여운 패키징도 동시에 자랑해봅니다. 상상한 것과 비슷하세요? 콩과 발효균 딱 두 가지의 원료가 들어가고요. 나머지는 하늘, 바람, 땅, 불, 물... 의 도움으로 완성되는 영양식품입니다.  

하얀 속살은 국내산 콩 100%로 이루어져 있지요. 

국내에서 템페는 정말 낯선 식재료였고, 사실 아직도 그렇습니다. 제가 처음 템페를 알게 되고, 맛보게 된 건 현재 파아프템페 장홍석 대표의 소개를 통해서였어요. (우리는 각자 알파벳으로 이메일 주소를 만들었는데요. 그걸 따라서 앞으로 편의상 a라고 부를게요!) 


a는 간혹 인터뷰에서 알려진 대로 무용을 전공한 무용수이자 안무가라서, 해외 공연의 기회가 잦았고 그때 처음 만나게 된 템페가 궁금했죠. 사람마다 성향과 기질이라는 게 있잖아요? 궁금한 것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종류의 사람인 a는 '덕질'을 통해 템페를 직접 생산하고, 일본의 템페 장인을 만나 그 기술을 전수받는 데까지 이릅니다. 글로 적으니까 무척 짧은 것 같지만, 실제로 이 과정은 2-3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a의 친구인 저는 당시 a가 살고 있던 동빙고동의 집에 놀러 갑니다. 때는 바야흐로 2017년 겨울. "뭔가 특이한 냄새가 나는데요?" 원래 요리를 잘하고, 한때 요리사로 일했던 경험도 있는 a가 씩 웃으며 방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는 하얀 덩어리 물체를 쓰윽 내밀죠. "템페라는 건데요." 

느닷없는 동빙고동의 지도

첫인상은 단단한 두부 또는 치즈를 같았습니다. 깍둑깍둑 썰어서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소금을 춉춉 뿌려 먹어보았습니다. "우와, 처음 느껴보는 맛이에요." 처음 먹어본 템페는 고소하고 풍미가 있었습니다. 곡물 같기도 하면서 단백질이 풍부하게 느껴졌어요. 그날 얻어온 두 덩이의 템페로 파스타를 만들어보고, 카레에 넣어보았습니다. 저는 요리를 못 하거든요. 그래서 더 창의적인 요리를 만들진 못했지만, 이 새로운 식재료의 놀라운 가능성은 충분히 예감할 수 있었어요. 

큐브 모양으로 잘라서 기름에 튀겨냈어요.

그땐 파아프라는 이름도 없었고, 식품으로 만들어서 판매를 할 생각은 더더욱 없었어요. 그저 콩만으로 발효를 통해 새로운 식재료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고, 처음 경험하는 음식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이 있었을 따름이었죠. 그런데 말입니다. 4년 뒤인 오늘, 우리는 성수동의 한 공간에 PaAp LaB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콩, 퀴노아, 콤부차를 발효하고, 템페를 이용한 요리를 개발하고요, '발효란 뭘까?'를 개념적으로 고민하면서 이상한 실험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10명의 팀원과 2명의 TF 팀원이 함께요. 


파아프템페를 통해 아주 조오오오금이지만, 템페를 알게 된 분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식재료로써 템페를 구하는 것도 어렵지 않고요. 템페를 맛본 분들은 자기만의 조리법으로 만든 템페 레시피를 공유해주기도 하고, 파아프 템페에서 벌이는 요상한 활동들 - 바로 이 파아프랩에서 이뤄지는 '움직임 워크숍'이라던지, '밴드 공연'. '요가 수업' 같은 - 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솔직히 봐도 잘 모르겠지만 발효의 과정

발효는 참 신기합니다. 넓은 의미로는 미생물이나 균류 등을 이용해서 육종하는 과정을 말하고, 좁은 의미로는 산소 없이 당을 분해해서 에너지를 얻는 대사 과정을 말하는데요. 발효의 과정을 통해서 유기산, 가스, 알코올 등을 생산해요. 발효를 거치면서 원재료는 형태와 질감, 영양상태가 바뀌게 됩니다. 발효식품을 만들면서 발효란 끝없이 변화하는 동적인 움직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적당한 발효는 유익하지만, 과발효는 곧 부패라는 균형의 교훈도 얻었습니다. 앞으로 오랫동안 발효 생각하게 될 거라는 예감도요. 



'발효라는 이상한 여행을 시작하며' 

이 글은 템페를 홍보하거나, 회사 자랑을 하기 위한 글이 아니에요. 혹시 그렇게 느껴지셨다면 사과할게요, 미안합니다. 브런치를 통해 파아프와 파아프랩에서 벌어진 그리고 벌여나갈 일들을 먹거리, 환경, 문화, 예술을 키워드로 기록하고 이야기 나눠보려고 해요. 여러분과의 여행을 시작하기 위한, 최소한의 정보 공유를 위한 안내였다고, 오늘 이 첫인사를 이해해주시겠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