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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묘 Jan 10. 2020

따스한 겨울,
바람이 전해주고 싶던 말

일상. 모루 도서관에서 바람, 햇빛, 그리고 아내랑

따스한 겨울, 앞쪽에서 오는 바람이 내 귀에 무언가를 속삭이고 지나간다.

- 뭐지?

의미를 알 수 없는 청아한 목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조용히 눈 감아 바람이 건넨 한 마디를 떠올려 본다.

스치듯 지나간 인연인지라 붙잡을 수가 없구나.

다음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눈을 떴다.

또 다른 바람이 귀밑을 쓰다듬었다.

너의 궁금한 마음을 내가 그 아이에게 전해줄게.

그녀는 나를 위로하며 아까 지나간 바람을 따라잡으러 갔다.

마음이 놓였다. 안도하며 한 걸음 힘차게 내디뎠다.

어라, 즈려 밟힌 풀잎이 아프다고 낑낑댄다.

깜짝 놀라 발을 들었다.

미안함에 우씨 하는 목소리를 뒤로하고 아내를 뒤쫓아 종종걸음 한다.

장난기 많은 오후의 햇살이 당황한 나의 뺨을 살짝 간지럽히고 도망간다.

- 도망가야 별 수 있나? 다시 올 거잖아. 이리 와. 안 오면 혼난다.

내 말을 듣고 도망가기를 포기한 햇살.

시무룩한 표정으로 다가오더니 어느새 내 눈앞에서는 사뭇 천진난만하게 두 손을 뺨에 갖다 댄다.

작정했나 보다.

연신 간지럽히니 오히려 내가 당해낼 재간이 없다.

- 항복!

그제야 녀석은 의기양양하게 물러난다.

곧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이번에는 도서관 화단에 심어진 푸른 솔이에게 뛰어간다.

큰 솔이라도 움직일 수 없으니 피할 방법이 없다.

간지럼에 몸을 비튼다.

사뿐사뿐 녀석의 머리카락이 한 올 한 올 바닥에 떨어진다.

솔이의 머리카락은 대지를 따스하게 덮는다.

- 개미야, 이불이 생겼구나.

개미가 내 목소리에 빠금 고개를 내민다.

곧 관심 없다는 듯 다시 집으로 들어간다.

냉담한 개미가 서운하다. 개미, 너 혼나 볼래?

발에 힘을 실어 개미집 위에서 쿵쿵 뛴다.

팔짝팔짝 솟구친다.

하늘까지 닿을 것 같다.

- 아, 잡티 하나 없는 파란 하늘이 참 예쁘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하늘처럼 파랗게 웃는구나.

나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태평양 같은 이마가 하늘에 물들여 파랗게 변했다.

도서관 정문으로 씩씩하게 앞서가던 아내가 나를 보고 웃는다.

그녀의 웃음도 파랗게 눈부시다.


남편, 우리 노부부 같지 않아? 참 좋네.

아, 그랬구나.

바람이 이 마음을 나에게 전해 주려고 했던 거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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