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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묘 Feb 01. 2020

아기 상어의 역습 #1

초단편소설. 말하는 상어와의 만남, 그리고 고대의 법칙

응? 처음 보는 아저씨네. 거기 양동이에서 팔딱팔딱 뛰는 놈 하나 던져 보셔. 배고프니까.

- 캉~.

아우, 뭐 하는 거야, 양동이 바닥에 떨어졌잖아. 먹이들 다 튀어나갔네. 초짜가 이렇다니까.  

어, 그런데, 아저씨, 방금 내 말 알아들은 거야? 야, 이제야 말 통하는 인간 만났네. 아, 아저씨 반응을 보니 혹시 방금 각성한 건가? 그럼 이전에는 이런 경험 없었겠네. 신기하네. 어쩌다 각성한 거지?

아저씨, 너무 놀라지만 말고 거기 통통한 놈, 아니, 그놈 말고 등 정말 푸른 놈, 우리 고향 바다와 비슷한 색깔을 가진 저 놈, 저 놈 던져 봐. 맛있겠네.

와그작 와그작, 쩝쩝. 아저씨, 다른 데 가지 말고 여기 있어. 나 여태 좀 심심했거든. 당최 이 수족관의 물고기 새끼들은 말을 걸어도 아무 반응이 없어. 내가 육식이니까 무서워서 반응이 없는 거 아니냐고? 응, 아니야. 무서우면 벌벌 떨기라도 해야지. 나한테 와서 잡아먹지 말라고 알랑방귀를 끼든 지, 아니면 배식 나온다고 나를 살살 달래든지. 정 아니면 나랑 멀리 떨어지려고 해야 정상적인 반응 아냐? 근데 얘들은 살아서 헤엄은 치는데 눈은 다 죽어 있어. 그냥 매일매일 똑같이 헤엄치는 거야. 배고픈 상어 옆을 지나쳐도 잡아먹힐까 두려워하는 긴장감도 없어. 무슨 동네 아저씨 보듯이 스윽 지나가는데, 참 황당한 것 있지? 고향 바다에서는 이렇지 않거든. 내가 뜨면 다들 도망가기 바빴다고. 물론 우리 상어는 인간과 달라 배고플 때만 사냥하지만, 걔들이 겉으로 봐서는 뭘 알겠어. 내가 배고픈지, 아니면 이미 한 끼 했는지. 당연히 도망치는 게 맞지. 가끔 겁먹어도 잡아먹을 거냐고 먼저 물어오는 참치도 있지만 대체로는 그냥 후다닥 사라져 버린단 말이지. 참치 하고도 말을 하고 지내냐고? 당연하지. 소통자가 존재하는 종끼리는 대화하는 데 아무 문제없어.

응? 소통자라고 못 들어봤어? 하긴 다른 종이랑 말하는 법도 잊은 지 오래인데, 인간들 사이에서 소통자가 뭔지 전해져 내려왔을 리가 없지. 아저씨, 왜 인간이 다른 생물과 소통을 못 하는 줄 알아? 바로 인간 종 내에 소통자라는 존재가 그동안 각성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참 웃겨. 뭐가 웃기냐고? 생각해봐. 인간이 지금 지구의 주인인 척, 제일 잘난 생물인 척 하지만 정작 고대의 신비한 법칙은 전승이 끊겼거든. 어떻게 보면 지구에서 가장 근본 없는 존재가 인간이야. 그런 녀석들이 과학 좀 발전시켰다고 다른 종에게 갑질 하고 있지. 아저씨, 아까 말한 물고기 새끼들이 처음부터 그랬을 것 같아? 결국 인간이 그렇게 만든 거잖아. 이 좁은 데 가둬놓으면 걔들이 뭐를 꿈꿀 수 있겠어. 나쁜 인간 놈들, 이놈들은 지들이 하고 있는 짓이 얼마나 잔인한지 알지 못할 거야. 요즘 지들이 만들어낸 과학 때문에 오히려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얼마나 통쾌하던지! 자연의 신비와 섭리를 외면한 대가를 치르는 거지. 아주 쌤통이다!

말 많이 해서 아까보다 더 배고프다. 지금 등지느러미가 배에 달라붙을 정도야. 어이, 거기 왼쪽 옆에 있는 물고기나 하나 더 던져봐, 안 그러면 공격할 거야. 방금 얘기하다 인간 얘기 나오니까 지금 기분이 몹시 안 좋아졌거든. 내가 왜 이 좁은 곳에서 인간들의 구경거리가 되어야 하는 거야. 아저씨, 그 이유 아쇼? 모르면 빨리 던져. 콱 물어버리기 전에.

아저씨, 동작 그만.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지 마. 내가 허락하기 전에 가면 나 태업할 거야. 먹이도 안 먹고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죽어 버릴 거야. 어차피 여기서 더 나아질 거란 꿈도 희망도 없는데 문제 될 것도 없지. 하지만 아저씨는 곤란하잖아. 내 담당인데 내가 확 죽어 버리면 관리 부실로 잘리겠지? 아저씨, 몇 살이야? 38살? 음, 나이가 많은 건가? 가정은 있고? 아, 결혼한 여자가 있고 애가 둘이나 있다고? 아이고, 먹여 살려야 할 가족이 있네. 그러면 더더욱 내 말 잘 들어야겠지? 크크크. 이렇게 얘기하니 내가 악당 같잖아. 근데 아저씨, 어쩌다 여기 왔어? 나야 바다에서 놀다가 잡혀왔고, 그때 우리 가족 다 떼죽음 당했지……. 아, 또 열 오른다. 잠깐 머리 식히고 올게.


아저씨, 아까 보니까 물고기를 던져 주는 모습이 엄청 어색해. 진짜 초짜인 것 같은데, 그 인간들 표현대로라면 수습, 뭐 그런 건가? 그런 단어는 어디에서 들었냐고? 나이 들어 보이는 뱃놈들이 훨씬 어려 보이는 애한테 수습이 빠졌다고 배 위에서 이상한 동작을 많이 시키기도 하고, 여기저기 막 때리기도 하던데? 젊은 애는 아주 죽겠다고 머릿속으로 씨발 씨발 하면서 선배들 욕을 하면서도 참고 있고. 도대체 수습이 뭐고, 같은 인간끼리 왜 그렇게 못 잡아먹어 안달인 거야?


-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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