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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묘 Feb 03. 2020

오직 사랑으로 산다는 것은 #1

톨스토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A.J.크로닌, <천국의 열쇠>

1. 주말에만 여는 책방

  

  그는 주말에만 책방을 연다. 그가 이 동네에 책방을 연지 이제 한 달 정도 되었다. 그동안 동네 사람들에게 그의 책방은 신비롭거나 괴기스러운 소문의 온상지였다. 그의 양쪽 뺨은 홀쭉해 유난히 광대뼈가 도드라져 보인다. 머리 색깔은 얼마나 새까만지 계속 보고 있으면 별 하나 없는 밤하늘을 마주하고 있는 것만 같다. 금테로 둘러싸인 우묵한 눈매를 기준으로 위로는 더부룩한 머리카락들이 정글처럼 자리 잡고 있으며 아래로는 새하얀 피부색과 꽉 다문 불그스름한 입술이 묘한 대비를 이룬다. 유약해 보이면서도 강단 있어 보이는 그가 셔터를 열 때마다 일주일 간 쌓였던 먼지가 자연히 흩날리는 광경은 이 동네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아무 말 없이, 매주 같은 시간에 동일한 모습으로 책방 문을 여니 당연히 여러 이야기가 발 없는 말처럼 하늘 끝까지 달려갔다. 돈을 벌기 위해 책을 파는 것이 아니라면 책방을 운영하는 목적은 뭘까, 돈이 목적이 아니라 그저 소일거리로 하는 것이라면 왜 주말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에만 문을 여는 것일까, 들어가 보니 손님이 오는 것은 신경도 쓰지 않고 구비해 놓은  책도 많지 않던데 주인장은 책방을 운영할 의욕은 있는 걸까 등 다양한 의혹이 주민들의 입에서 오르락내리락했다. 약간은 어두컴컴한 내부 분위기와 남자의 범상치 않은 외모의 조화가 동네 초등학생들에게는 괴상했나 보다. 아이들은 낮에는 책방 안에 있다가 밤에는 신선한 피를 찾아 돌아다니는 괴담의 주인공으로 그를 지목하기도 했다. 주말만 되면 아이들이 동네에서 놀 때 십자가를 착용하는 것은 일종의 규칙이 되었다. 어떤 사람은 민주화 운동 때 심한 고문으로 그런 기이한 꼴이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며 불쌍히 여기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주말에만 문을 여는 것을 보면 일상적인 생활공간은 아니고, 마약 조직의 접선 장소와 같이 은밀한 범죄 행위와 연관된 곳이 틀림없을 것이라고 확신하기도 했다. 


  물론 그는 이런저런 얘기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사람들이 쇼윈도를 지나가면서 내부를 들여다보고 수군거리면 기분 나쁠 법 한데 그런 기색 없이 그는 늘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상념에 빠져있거나 무언가를 집중해서 읽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한 달 동안 손님이라 할 만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단골은 당연히 없고 가끔 어떤 책이 있는지 궁금해서 오는 동네 독서가 몇 명(특이한 책이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실망하고 돌아갔다), 책방의 주인장이 몹시 궁금해서 오는 사람 몇 명(처음에는 나름 특이한 외모였지만 계속 보니 색다른 것도 없어서 실망하고 돌아갔다), 기이한 이유로 동네 명소가 되어 버렸기에 사진 촬영하러 오는 무례한 사람 몇 명(역시나 그는 자기만 찍지 않으면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기 할 것만 했으며 그 사람들도 이내 흥미를 잃고 점차 찾아오지 않게 되었다) 정도가 이 책방을 찾은 사람들의 대부분이었다. 동네 주민들에게는 다행일지 불행일지 모르겠지만 한 달이 지나면서 입방아에 오를 만한 행적이 없자 그는 대다수의 관심사에서 점차 멀어지게 되었다. 결국 나름 책방 문을 두드리던 사람들도 이제는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줄어들었다.


  자신의 책방을 둘러싼 잡다한 외부 사정과 상관없이 그는 여전한 모습으로 오늘 토요일 오전에도 책방 문을 열었다. 셔터가 올라가는 소리와 함께 책방은 오랜만에 주인을 맞았다. 그는 먼지가 심하게 쌓여 있는 곳을 골라 문 옆에 있던 걸레로 대충 닦은 뒤, 책방 안으로 들어섰다. 사람의 온기가 없었던 시간만큼 서늘한 기운으로 가득 차있었다. 그는 그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혹시 내부에 문제가 있는지 살폈다. 이미 별 것도 없다는 소문이 퍼진 마당에 좀도둑이 침입할 리 없음에도 그는 혹시라도 낯선 흔적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꼼꼼하게 살폈다. 작은 책방 안에는 사무용 책상과 의자가 정면의 벽에 붙어 있었고 그 맞은편 창가 쪽에는 가죽 소파가 원목 테이블을 중심으로 양쪽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책상 앞과 뒤쪽의 벽으로는 원목 책장이 놓여 있었는데 몇몇 책들이 듬성듬성 꽂혀 있었다. 책이 꽂혀 있지 않는 자리에는 여러 장식물이 놓여 있었다. 십자가, 목탁, 벽조목 부채, 돌하르방, 미니 장승 등 일관성 없이 대충 놓여 있었다. 특이한 것은 책방 내에 물건 대부분이 검은색이었다. 천장 위에 달린 주백색의 따스한 조명이 아니었다면 책방은 무언가를 집어삼키려는 블랙홀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는 시선이 닿는 곳을 한 번씩 훑어본 후, 마지막으로 책상 뒤쪽의 책장을 뚫어지게 쳐다보았고 이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지난주 문을 닫았던 그 모습 그대로임을 확인한 그는 달콤하면서도 알싸한 신맛이 나는 케냐 풍의 커피를 내렸다. 이내 소파에 앉아 커피 맛을 느끼며 테이블 위에 있던 책을 들고 읽기 시작했다. 그는 오늘은 제대로 된 손님이 올 것을 기대했다.



2. 제대로 된 손님


  “저기요, 아저씨…….”

  문 앞에서 들리는 소리에 그는 고개를 들었다. 아직 점심 먹기 전,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검은 머리의 소년이 문을 살짝 열고 머리만 내밀고 있었다. 쭈뼛거리는 소년에게 그가 먼저 친절하게 말을 건넸다.

  “뭐.”

  그의 말에 소년은 더 안절부절못했다. 자신의 말이 부족했음을 느끼고 그는 다시 한 마디 덧붙였다.

  “뭐지?”

  소년은 친절한 남자의 반응에 우물쭈물하다 뭔가 결심한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아, 아저씨……, 죄송한데 부, 부탁 하나만……, 들어주실 수 있어요?”

  그는 소년을 빤히 바라보았다. 자신을 낱낱이 파헤치는 느낌에 소년은 오싹했다. 속으로 친구들을 욕하면서 이곳에 온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다. 

  “일단 들어와서 얘기하자.”

  그는 소년을 소파에 앉혔다. 소년은 잔뜩 긴장한 채로 앉아 주위를 둘러보다가 자신을 응시하는 그와 눈을 마주치자 고개를 팍 숙였다.

  “커피 마실래?”

  “아, 아니오……, 그냥 물 한 잔…… 흐극, 아니, 커피 주세요!”

  그는 소년의 변덕에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아까 타놓은 커피 한 잔을 소년 앞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맞은편에 앉아 소년에게 물었다.

  “그래서, 무슨 부탁?”

  그의 목소리는 낮지만 의외로 부드럽게 울렸다. 괴상한 외모와 책방 분위기를 보았을 때에는 음산하고 거친 목소리를 소년은 예상했었다. 얼핏 고상하게까지 들리는 중저음에 소년은 신기하게도 떨렸던 마음이 차츰 진정되었다. 커피 잔만 양손으로 연신 매만지던 소년은 이윽고 조심스럽게 외투 호주머니 속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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