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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묘 Feb 05. 2020

아기 상어의 역습 #2

초단편소설. 소통자, 변화의 기회, 파국

아하, 그런 거야?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아? 우리 상어들은 사냥 잘 못하는 아이라도 자기가 잡은 몫만큼 배불리 먹을 수 있는데, 많이 못 잡으면 엄마, 아빠나 다른 가족이 부족한 것을 채워주기도 하거든. 그런데 아저씨는 같은 시간을 일하는데 돈은 왜 적게 받아? 잘 모르니까 서투른 것은 당연한 거 아냐? 엄마 상어랑 아이 상어가 같이 나가 같은 시간 동안 사냥하는데 아이 상어에게 넌 사냥을 잘 못하니 먹이도 조금만 먹어라 하면 아이 상어들은 다 굶어 죽을걸? 아저씨는 지금 아저씨가 처한 상황이 옳다고 생각해? 뭐, 그렇게 생각하면 나도 더 할 말은 없지만.

그런 거 보면 인간은 참 자기중심적이야. 안 그래? 봐봐~. 이 아쿠아리움도 지들 좋자고 다른 생물들의 동의도 없이 만들어 놓은 거잖아. 언젠가 거북이에게 들은 적이 있는데 동물원이란 것도 있다며? 육지 생물들은 또 무슨 죄야. 신기한 게, 다른 종의 생물은 자연환경에 자신을 맞추는데 인간은 정반대야. 자연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해. 다른 종에게만 그런 게 아니라 같은 인간끼리도 그러잖아. 아저씨, 다른 사람이랑 같은 시간 일해도 돈을 똑같이 받지 못하는 것은 원래 받아야 할 몫을 다른 놈이 처먹는 거 아냐? 어떤 놈이 자기 욕심부리고 있는 거지. 우리 상어 세계에서는 도저히 용납 못할 만행이야. 아저씨, 왜 그렇게 풀이 죽어 있어? 같은 인간인데 왜 변명 하나 못해? 아저씨도 내 말에 동의하는 거야?

아니라고? 그래도 인간이라고 인간 편을 드네. 너무 낙관적인 거 아냐? 아저씨, 깊게 생각해 봐. 어떤 사회가 더 합리적인지. 아저씨처럼 박하게 대우받는 사람이 많아지고 반대로 자기 욕심에 남의 것까지 탐하는 사람이 더욱 늘어난다면 그 사회가 제대로 돌아갈 것 같아? 개체의 최대 목표인 생존을 그런 사회가 보장해 줄 수 있겠냐고. 상어 기준으로 볼 때 인간 사회는 낙제점이야. 빵점!

아저씨, 각 종마다 소통자가 있는 이유가 뭔지 알아? 소통자의 존재는 조화의 상징이야. 아까도 말했지만 소통자가 있다는 것은 전 지구적으로 각 생물이 서로 의사와 감정을 나누며 조화롭게 지내며 살 수 있다는 것이지. 특성은 다르지만 이 세계를 이루는 일부로서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고대의 법칙. 그런데 인간이 자기들만의 문명을 맹신하기 시작하면서, 그렇게 자신을 제외한 모든 자연을 물건처럼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그 고대의 신비한 법칙은 힘을 잃고 말았지. 그래서 여태 인간들에게는 소통자가 각성하지 않았던 거고. 인간은 다른 종과 대화하는 법을 잊었지. 그러니 우리도 인간과 선뜻 이야기하려는 시도를 할 수가 없는 거야. 말해 봤자 못 알아먹거든. 입만 아프지. 결국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야.


- 아기 상어 뚜루루 뚜루 귀여운 뚜루루 뚜루 바닷속 뚜루루 뚜루 아기 상어 뚜루루 뚜루


아저씨, 난 저 노래가 싫어. 저 노래만 들으면 내 등지느러미가 분노로 바짝 선단 말이야. 모든 것을 잊고 이 수족관 생활에 적응하려고 해도 이 노래만 흘러나오면 도저히 인간을 용서할 수가 없어. 저거야말로 인간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인지를 보여주는 증거지. 아기 상어가 귀엽다고? 인간이 말하는 귀여움의 잣대를 상어에게 들이대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우리는 아무리 어린 상어라도 바다의 폭군이야. 최상위 포식자라고! 귀여움의 대상이 아니란 말이다! 우리를 거스를 종은 바다에서 아무도 없어! 이런 우리의 본질을 감히 자기들 돈벌이 때문에 왜곡하려 드는 게 인간이야!


- 우리는 뚜루루 뚜루 바다의 뚜루루 뚜루 사냥꾼 뚜루루 뚜루 상어 가족!

  상어다 뚜루루 뚜루 도망쳐 뚜루루 뚜루 도망쳐 뚜루루 뚜루 숨자! 으악!


아저씨. 나 결심했어.

처음 여기에 왔을 때는 그럭저럭 적응해서 살려고 했는데 마음이 바뀌었어.

인간이 너무 밉다. 바다에서 가족과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나를 이곳으로 납치해 온 인간이 밉다. 내 가족을 모두 죽이고 나를 잡아온 인간이 밉다. 바다의 지배자였던 나를 구경거리로 만들어 돈을 버는 인간이 밉다. 빌어먹을 아기 상어라는 괴이한 노래를 만들어서 우리를 격하시키는 인간들이 밉다.

아저씨에게는 개인적으로 미안해. 어쩌면 아저씨 같은 소통자가 지금이라도 인간 사이에서 각성한 것은 새로운 희망일 수도 있어. 아저씨가 각성했으니 아마 지금쯤 몇몇 인간은 동물의 말을 알아듣기 시작했을 거야. 어쩌면 이것을 계기로 지구가 조화로운 세계로 한층 나아갈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증오하는 인간에게 더 나은 삶의 기회를 주고 싶지 않아. 인간이 고대의 법칙을 회복하여 더 나은 존재가 되는 것도, 아니면 욕심 많은 몇몇 인간이 이 법칙을 또 다른 돈벌이로 이용하는 것도, 그 어느 것도 달갑지 않아. 나에게서 희망을 앗아 간 인간이 이대로, 지금 이대로 계속 시궁창 속에 있어야만 해. 그 끝이 파멸인 것도 모르고 그렇게 자기들끼리 자화자찬하며 살게끔 내버려 두고 싶어. 내 손으로 직접 인간이 변화될 수 있는 기회를 없애버릴 거야. 아기 상어가 귀여움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내가 보여 줄 거야.

나는 바다의 난폭한 상어이니까!


- 꽈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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