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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묘 Feb 11. 2020

키득키득 열매가 열렸습니다

일상. 사소한 실수가 주는 즐거움에 관하여

#1 약 한 달 전, 강릉 모루 도서관에서


아내 : 대출이요. (책과 함께 도서관 대출이 가능한 회원 카드를 꺼내 내민다.)
직원 : (대출 작업을 진행하는데 잘 안 된다. 확인해 보고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감돈다.) 음, 잘못 주셨는데요. 이건 도서관 복사 카드입니다.
아내 : ?!!!!!! 
나 : (나중에 전해 듣고 키득키득)


작은 실수지만 어찌나 시트콤 같은 상황인지, 특히 직원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좀 웃기다. 생각 없이 받아 기계에 갖다 댔을 텐데, 어, 이게 왜 안 되지, 이상하네, 어라 뭐가 문제지, 이런 의문이 먼저 들지는 않았을까. 도서관 복사 카드를 줬을 줄 직원도 어찌 알았겠는가. 본인도 몰랐는데 말이다. 

영어로 위에 카피 앤 프린팅이라고 적혀 있었건만 도서관 사진과 이름만 확인하여 착각해 버렸다. 역시 디테일이 중요하다.



#2 몇 년 전에 아내랑 연애하던 시절, 어떤 데이트 중에


아내 : 요새 걔네 노래가 엄청 인기 많던데? 카페에 가면 ‘벚꽃 엔딩’인가? 그 노래만 계속 나오더라, 오빠. 걔네 이름이……, 버커스 버커스던가?
나 : (이상한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채로) 맞아, 요새 걔네가 대세야. 이번 슈스케에서도 우승은 못 했는데 오히려 우승한 팀보다 훨씬 잘 나가지. 그 노래가 안 나오는 카페가 없어. 온 사방 천지가 ‘벚꽃 엔딩’이야. (얘기하면서 생각해 보니 뭔가 이상했다.) 근데 걔네 이름이 뭐라고?
아내 : 오빠, 아까 내가 얘기했잖아. 버커스 버커스!
나 : ……. (속으로 키득키득)


궁금해서 구글에 버커스 버커스를 검색해 봤다. 오! 버커스 버커스가 아닌 버스커 버스커가 나왔다. 신기한 것은 구글 검색 시 오타가 나면 ‘수정된 검색어에 대한 결과: OOO(파란색)’처럼 검색창 밑에 문구가 뜨는데 이건 그런 수정된 검색어 결과도 뜨지 않는다. 왜 그런 걸까? 우리 아내뿐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도 버커스 버커스로 검색한 걸까? 그래서 그 많은 검색 기록이 빅 데이터로 누적되어 결국에는 ‘버스커 버스커’와 ‘버커스 버커스’가 일종의 유의 관계로 데이터 상 정립된 것일까? 그렇다면 구글에서 인정했듯이 웹 상에서는 버스커 버스커를 버커스 버커스라고 불러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한 번 해본다. 지시하는 대상과 지시하는 언어가 절대적으로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는 자의성을 떠올려볼 때 충분히 가능한 얘기일지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버커스 버커스야......



#3 이번 설 명절, 어머니와 대화 중


어머니 : 애들 어린이집 잘 다니니?
나 : 네, 어린이집 가는 거 참 좋아해요. 친구들과 선생님하고도 잘 지내고요. 집에서와 달리 어린이집에서는 모범생이라고 하는 거 있죠?
어머니 : 다행이네. 어린이집 이름이 뭐라 그랬지? 하늘나라?
나 : ……, 하늘아이요. 애들을 벌써부터 하늘나라로 보내시면 어떡해요, 어머니.(대놓고 키득키득)


음, 그런데 하늘나라나 하늘아이나 생각해 보니 거기서 거긴 것 같긴 하다. 하늘아이도 하늘에 있는 아이면 이미 하늘나라로 보내 버린 게 깔려 있는 것이 아닐까? 엄니가 틀린 얘기한 건 아니었네.



#4 얼마 전 시사 뉴스를 보고 아내와 대화하면서


아내 : 최근에 가O세O 연구소인가? 걔네들은 왜 그렇게 연예인을 공격한대?
나 : 그게 자기들의 사명인가 보지, 뭐.
아내 : 공격하는 것을 보면 정말 피라미 같아.
나 : 피라미? 피라미는 저기, 저 얕은 개울가에 사는 송사리 비슷한 애들 아녀? 걔들이 뭘 공격해?
아내 : 아, 피라미 말고, 그 피 빨아먹는 거 있잖아.
나 : 피라니아? 혹시 피라니아 말하는 거야?
아내 : 아니, 피라니아 말고, 사람 몸에 붙어서 피 빨아먹는 거…….
나 : 거머리?
아내 : 맞다! 거머리!
나 : …… 아니, 도대체 어떻게 하면 거머리가 피라미가 될 수 있는 걸까.(흘겨보든 아랑곳하지 않고 키득키득)
(좌) 피라냐 (우) 피라미, 거머리는 비호감이라 생략. 생긴 것부터가 이렇게 다른 데 말이다.....


민물에서는 천적밖에 없는 피라미가 누구를 공격하겠는가. 알을 낳을 때는 무방비 상태라 그때 많이 잡아먹힌다고 하는데. 생긴 것부터 호감 하고는 거리가 먼 거머리 같은 사람도 되기 싫지만 너무나 무방비한 피라미 같은 사람도 되기 싫다. 그럼 피라니아는 어떨까?


영화나 다큐멘터리에서 피라니아의 위험성은 많이 과장된 편이다. 미디어의 영향으로 피라니아 하면 무지 공격적이고 피 냄새만 맡으면 인정사정없이 몰려들어 물어뜯는 최악의 포식자 같은 모습이 연상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보통은 작은 물고기, 부상 입은 동물, 또는 다른 짐승들이 사냥하고 남은 시체를 먹는다. 배부르면 옆에서 사람이 물장구를 쳐도 심드렁하게 지나간다.(디스커버리 채널에서 피라니아 떼 사이를 유유히 수영해서 지나가는 장면을 촬영하여 이 사실을 증명하였다) 


몇몇 피라니아 계열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혼자 있으면 상당히 겁이 많은 물고기로 변한다. 고독한 늑대처럼 혼자서도 야성을 간직하고 있는 존재는 아닌 것이다. 떼로 몰려다니는 이유도 결국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처음에는 사람으로 따지면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고 무리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리는 소인배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볼수록 그렇게만 볼 것은 아니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개인의 약점을 서로 연대함으로써 험난한 아마존 강물에서 생을 이어가는 것이 대단하지 않은가. 약자로서 어떻게든 살기 위해 집단으로 투쟁하는 피라니아에게 겁쟁이라고 마냥 비웃을 수도 없겠다. 그것이야말로 민중의 삶이니까.




어쩌다 피라니아 얘기가 마침내 민중까지 연결된 것일까.(태생부터 진지했던 것일까나, 후천적인 것일까) 그래서 간간히 일상 속에 키득키득 열매가 열려 참 다행이다. 진지진지 열매만 먹으면 분명 영양 불량 걸려 사는 데 고생할 게 뻔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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