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친동생의 결혼식, 삶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계속되어야 한다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기운이 많이 빠져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내일이 37살이 된 둘째 아들의 결혼식이었다.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결혼식을 준비하셨을 텐데, 재벌이나 연예인처럼 떠들썩한 자리는 아니더라도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결혼식에서 누릴 기쁨과 뿌듯함을 기대하셨을 것이다. 축하해 주는 많은 손님을 모시고 풍성한 잔치를 열고 싶은 것은 부모로서 모두 인지상정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암초를 만났다. 잠잠해질 것 같던 코로나 19가 갑자기 이번 주에 폭발적으로 확산하고 있었다.
금요일 오후 어머니와 전화 통화하면서 어머니의 맥 빠진 목소리에 내 마음조차 가라앉았고 안타까웠다. 어머니나 동생에게 아무래도 결혼식 참석이 어려울 것 같다는 전화가 많이 갔던 모양이었다. 일주일 전만 해도 동생은 예약했던 식수보다 하객이 더 많이 오면 어쩌나 걱정하기도 하고, 결혼식 때 주례 없이 이렇게 저렇게 잘할 것이라고 조금은 들뜬상태로 어머니와 통화했었는데……. 난 데 없이 신천지로 인해 국내 코로나 확진자가 이렇게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많은 사람이 자신도 코로나에 감염될까 봐 몸을 사리니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하는 사람도 당연지사 줄어들 수밖에 없으리라.
잔칫집에 손님 없이 다소 썰렁하게 대사를 치를지라도, 가족과 의미 있는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결혼식이 될 거라 생각하며, 결혼식을 하는 토요일 아침을 맞았다. 필요한 조치는 현명한 아내가 다 해놓았다. 아이 셋을 외부로 장시간 데려가기에는 부담이었다.(코로나도 그렇고, 애들이 밖에서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 발광할 것이 눈에 선하다) 그래서 셋째를 돌봐주던 돌보미 선생님께 토요일 하루 동안 세 명의 아이들을 맡아 주십사 요청을 드렸고, 감사하게도 흔쾌히 받아주셨다. 덕분에 조금은 마음 편하게 아내와 나, 둘이서만 오랜만에 장거리 외출을 하게 되었다. 강릉에서 출발할 때 날씨는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중간쯤 춘천과 남양주 쪽을 지날 때 엄청난 눈보라를 마주했다. 결혼식을 위해 눈과 바람, 코로나를 무릎 쓰고 달려가면서, ‘아, 오늘은 참 여러 의미로 힘든 하루를 보낼 수도 있겠구나.’하는 예감이 들었다.(기후도 그렇고, 코로나로 인해 결혼식 분위기도 그렇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예감은 틀렸다. 다행이었다.
강한 바람에 차체가 여러 번 흔들리기도 했지만 열심히 달려 결혼식장에 늦지 않게 도착했다. 아내가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는 동안 나는 신랑 측 축의금 담당자로서 노트북을 켜놓고 작은아버지가 건네주는 봉투를 확인하여 엑셀에 열심히 입력했다. 전날 어머니의 엄청 속상해하는 목소리 때문에 하객 인원이 그렇게 많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웬걸, 생각보다 많이 와 주셔서 축의금 정리하느라 계속 정신이 없었다. 바빠서 기분이 좋았다. 잠시 한가해진 틈을 타 로비 구경을 했다. 어지간하면 마스크는 다들 쓰고 있었다. 평상시와는 다른 모습들이지만 그럼에도 서로 눈으로 웃어주면서, 악수를 못 하니 팔꿈치로 인사하며 안부를 주고받고 있었다. 코로나의 여파로 다른 결혼식보다는 확실히 사람이 좀 적어 보였지만, 그렇다고 결혼식 장 내의 분위기가 우울하게 가라앉은 것은 아니었다. 다들 지킬 것을 지키면서도 그 안에서 서로 따스한 정을 나누고 있었다. 뭔가 사람 냄새가 나는 풍경이었다.
모든 일정을 잘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 자꾸 로비의 풍경이 떠올랐다. 코로나가 무서운 기세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아직은 확실한 치료법도 없는 그 전염병이 많은 사람을 불안하게 한다. 그렇다고 사람의 삶이 자동으로 정지되는 것은 아니다. 그 단순한 진리를 오늘 그 로비에 모인 사람들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당연히 코로나는 조심, 또 조심해서 예방해야 한다. 위생 지침을 철저하게 지키며 정부의 대책에 협조해야 한다. 자신을 위해서, 또 남을 위해서 그렇게 해야만 한다. 그러나 코로나와 상관없이 우리의 시간은 끊임없이 어디론가 흘러간다. 코로나가 아닌 다른 배경 요인에도 그렇다. 이번 총선에서 어떤 결과가 나와 어떤 영향을 끼치든 간에 내 시간은 밀물처럼 밀려와 썰물처럼 내 뒤로 물러날 것이다. 북한과 전쟁이 나도, 내가 죽지 않는 이상 내 삶은 지속될 것이다. 단순하면서도 뭔가 중요한 것을 깨달은 느낌이었다.(글로 더 자세히 표현하고 싶은데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
코로나는 종식의 길로 가야 하고 생은 이어져야 하며,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어떤 배경이 펼쳐지더라도 삶의 자세는 일관되어야 한다. 그러니 내 삶을 화석처럼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어떤 혼란스러운 시국이 닥쳐올지 모르겠지만 인간 내음도 포기하지 않겠다. 그것을 다시 한번 깨달은 것만으로도 오늘은 충분하다.
<후기>
1. 이 시기에 결혼하는 모든 신혼부부님들, 힘내세요. 경제적으로도, 심정적으로도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결혼으로서 하나 되는 그날은 여전히 당신들이 주인공입니다. 코로나도 그렇고 하객의 많고 적음도 그렇고, 어떤 다른 요인도 여러분이 결혼하는 그 순간의 가치를 절대 훼손할 수 없음은 분명합니다. 그러니 웃고 즐거워하며 기뻐합시다. 여러분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순간 중 하나이니까요. 그렇게 삶은 아름답게 계속되어야 합니다.
2. 다시 한번 코로나 19 예방 수칙